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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악한 왕의 탄생
열왕기상 21강열왕기상 16:29-34

악한 왕의 탄생

북이스라엘 왕들이 잇달아 무너집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집을 멸했지만 똑같은 길을 따라가다 아들 대에서 왕조가 끊겼고, 시므리는 칠 일 만에, 오므리를 거쳐 마침내 아합이 등장합니다. 아합은 이방 신 바알을 섬기며 이전 어느 왕보다 하나님을 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신 그대로, 여호수아가 오래전 선포한 저주의 말씀도 여리고 성을 다시 쌓은 사람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이든 저주든 한 글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두운 역사 한가운데, 선지자 하나니와 그 아들 예후는 대를 이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악해집니다. 그러나 그 흐름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믿음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 그것이 성도가 서야 할 자리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2.9
성도들이 만나는 죄의 문제
열왕기상 20강열왕기상 15:16-24

성도들이 만나는 죄의 문제

아사왕은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구스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남유다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년에는 북이스라엘 침략 앞에서 하나님이 아닌 아람 왕에게 재물을 바쳐 도움을 청했고, 발에 병이 들었을 때도 하나님이 아닌 의원들을 의지했습니다.

성경은 그런 아사를 여전히 "그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에서 나온 연약함의 죄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작은 죄를 반복하다 마음이 굳어져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자리까지 갔지만,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어도 두려움에서 나온 연약함이었기에 회개하고 회복되어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죄에는 돌이킬 기회가 있는 죄와, 하나님을 부정하는 패륜과 같아 회복될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가 작다고 여겨 가벼이 여기면 그 마음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끕니다. 은혜를 두려움으로 누리며 죄가 드러난 즉시 철저히 돌이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2.2
진정한 개혁
열왕기상 19강열왕기상 15:9-15

진정한 개혁

아사가 왕이 되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우상과 산당과 아세라상을 없애고, 유다 백성에게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명령합니다. 구스 사람이 백만 대군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아사는 절반도 안 되는 군사를 이끌고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치셨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사는 안주하지 않고 다시 언약을 갱신하며 우상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인 태후 마아가마저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우상숭배를 간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폐위시켰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남의 죄가 아니라 내 곁의, 내 안의 죄부터 도려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정말 위한다면 그 관계를 끊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먼저 내 믿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사랑하는 영혼도 건질 힘이 생깁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26
선택의 결과
열왕기상 18강열왕기상 14:21-31

선택의 결과

르호보암은 다윗과 솔로몬이 이룬 강하고 안정된 나라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견고해지자 교만해져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고, 온 백성이 그를 따라 우상숭배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즉위 5년 만에 애굽왕 시삭의 침략을 받아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겼습니다.

같은 좌를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 겸비하며 회개했던 르호보암과 백성들은 완전한 멸망은 면했지만, 시삭의 종이 되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세상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끝내 굳게 하지 않았기에, 그는 악한 왕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다윗 성에 장사되었는데, 이는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이 자손들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실하게 지켜졌음을 보여줍니다.

할아버지 다윗과 아버지 솔로몬, 초기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도움, 시삭의 침략과 선지자 스마야의 책망까지, 르호보암에게는 하나님께 돌아설 기회가 거듭 주어졌습니다. 악한 길로 간 것은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를 얻고도 믿음의 길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어진 기회 앞에서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을 구하는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19
스스로 담을 허는 어리석은 자
전도서 20강전도서 10:1-11

스스로 담을 허는 어리석은 자

앗수르 군대가 하룻밤에 무너지고, 히스기야는 죽을 병에서 살아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15년을 더 살게 된 그가 낳은 아들은, 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됩니다.

병 나은 것을 자기 경건 덕이라 여기며 히스기야의 판단력은 흐려졌고, 바벨론 사자들에게 성전과 보물창고를 다 열어 보여주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온전한 믿음을 물려받지 못한 아들은 아버지가 지킨 은혜의 담을 스스로 헐어, 백성들이 뱀에게 물리고 안전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죄는 처음 지을 때는 두렵지만 반복되면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을, 이 부자의 삶이 보여줍니다.

고난 중에는 하나님만 붙들다가도, 평안이 오면 그 은혜를 잊고 자기 의를 내세우기 쉽습니다. 그러나 담을 허는 자는 뱀에게 물리고 함정을 파는 자는 자기가 그 함정에 빠집니다. 응답받은 후에 더 조심하며 늘 감사와 겸손으로 살아야, 성령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할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12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신년감사예배)
에베소서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신년감사예배)

2025년 첫 예배를 앞두고, 지난 한 해를 잘 보냈든 그렇지 못했든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주어졌습니다. 이 교회 역시 22년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지금 모습으로 자라왔고, 그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난 일은 없었습니다.

같은 시간을 지나도 성도마다 자란 정도가 다릅니다. 문제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무릎 꿇은 사람은 믿음이 자랐고,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며 불평한 사람은 그만큼 자라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둔 옥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합당하게 행하라고 여러 교회에 편지를 남겼습니다. 합당함이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이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도 끝까지 그 백성을 위해 중보했던 모습이 그 온유의 실례로 제시되었습니다.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자라 서로 협력할 때, 교회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집니다. 화가 나고 억울한 순간에도 한 번만 참아보는 훈련이 그 시작이며, 그 한 번이 쌓여 세상의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만들어 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5
복을 선택하는 성도들의 지혜 (송구영신 예배)
신명기신명기 4:1-9

복을 선택하는 성도들의 지혜 (송구영신 예배)

한 해가 저물고, 많은 성도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까지 세우려 애써온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애태우며 실망하고 아파하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열심히 가르치고 섬긴다고 해서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겸손히 나오는 사람에게는 복을, 판단하며 교만한 사람에게는 책망을, 멀리 떠난 사람에게는 심판을 내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목사가 기도하고 헌신하는 것도, 부모가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도 당연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는지 감사하는지에 따라 하나님이 대신 복과 책망을 내리십니다. 그러니 감정을 섞지 말고, 안타까움과 책망을 내려놓고, 이름을 불러 가며 기도로 맡기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극히 희귀한 혈액암 진단을 받고도 도리어 평안함을 느꼈다는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내일 불러가도 축복이고 더 살게 하셔도 축복이니 두려워 말고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라 하셨고, 그 말씀 앞에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새해를 맞기를 전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12.29
겸손의 왕 (성탄감사예배)
빌립보서

겸손의 왕 (성탄감사예배)

아기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마구간, 말구유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 태어나셨습니다. 첫사람 아담의 죄로 어둠에 갇힌 인간을 건지시려고, 죄 없는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셔야 했습니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기에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품으실 수 있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이제 빛의 자녀가 되어 각자 받은 그 생명의 빛을 등경 위에 두어야 하지만, 사람이 가진 빛은 자기 주위만 비출 수 있기에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힘의 논리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것은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의 로마도, 지금 이 세상도 다르지 않지만, 다니엘이 전한 신상의 꿈처럼 그 모든 나라는 무너지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영원히 설 것입니다.

성탄절은 그 죄 사함과 생명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리에서 가족과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고, 어두워지는 세상 가운데 생명의 빛을 높이 드는 성숙한 성도로 자라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2.22
고난과 축복의 경계
열왕기상 17강열왕기상 14:7-16

고난과 축복의 경계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완악함에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선했던 아들이었지만, 그 병은 아버지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를 찾아가게 했지만, 아이는 예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자녀의 죽을 병은 세상 눈에는 불행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로보암에게 주신 마지막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아비야에게는, 가문 전체가 멸망당할 심판이 임하기 전에 그 생명을 먼저 거두어 가신 은혜였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야말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강권적 역사입니다.

고난과 축복을 가르는 기준은 세상과 하나님이 서로 다릅니다. 여로보암은 끝내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 기회를 놓쳤지만, 아비야는 짧은 육의 고통 뒤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을 원망하기보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기회를 볼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2.15
사탄을 지배하시는 하나님
전도서 19강전도서 9:13-18

사탄을 지배하시는 하나님

세상은 상식과 도덕의 기준을 잃어가고, 가정과 교회의 법이 무너지자 사람들이 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골리앗이 40일 동안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조롱해도 아무도 나서지 못하던 그때, 어린 다윗이 홀로 나가 그와 맞섭니다.

다윗은 상을 받으려고 나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욕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싸움은 다윗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 되었고, 양을 지키며 사자와 곰과 싸웠던 훈련의 경험이 골리앗 앞에서 용기와 지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가난하고 힘없는 지혜자를 세워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지만, 세상은 그 지혜자의 말을 듣지 않고 쉽게 잊습니다.

전쟁과 구원은 칼과 창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했습니다.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진리를 전하는 가난한 지혜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믿음의 경험이 세상을 이기는 용기이며 무기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12.8
순탄할 때 만나는 유혹
열왕기상 16강열왕기상 13:15-24

순탄할 때 만나는 유혹

유다에서 온 한 선지자가 벧엘에 이르러 왕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단이 갈라지고 왕의 손이 마르는 심판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선지자는 왕의 식사 초대도 단호히 거절한 채 명령받은 대로 다른 길로 돌아섭니다.

그러나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거짓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그를 다시 불러 세우자, 조금 전까지 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너무 쉽게 넘어갑니다. 큰 일을 마친 뒤의 안도감과, 같은 선지자라는 사람의 권위에 자기 생각으로 말씀을 희석시킨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쉽게 무너지는 순간은 두려운 자리가 아니라, 일을 잘 해냈다고 여기는 그 순탄한 자리입니다.

결국 그는 돌아가던 길에 사자에게 목숨을 잃습니다. 그가 전한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정작 그 자신은 끝까지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지식이나 연륜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지로 신앙이 판가름 나며, 어떤 유혹과 고난 앞에서도 가던 길을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2.1
푯대가 되어 주신 예수그리스도
전도서 18강전도서 9:11-12

푯대가 되어 주신 예수그리스도

솔로몬은 빠른 자가 선착하지 않고 강한 용사가 늘 이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혜와 권력과 재물을 다 가졌던 그가 결국 자신의 인생을 헛되다고 고백했습니다.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은 좌우를 살피지 못해 소중한 것을 잃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세운 목표는 뿌리가 썩은 나무와 같아서, 아무리 큰 힘과 권력을 쥐어도 참된 승리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처럼 뒤에 있는 것을 잊고 그리스도라는 푯대를 향해 달려갈 때만 곧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 왕도 꿈으로 미래를 미리 들었지만 회개하지 않았고, 결국 왕위에서 쫓겨나 짐승처럼 칠 년을 살고 나서야 하나님을 전능자로 고백했습니다. 인생의 시기는 사람이 알 수 없기에, 고난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돌이켜 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오늘 전한 말씀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