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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1강말라기 1:1-3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지만 100년이 지나도록 기대했던 영광이 오지 않자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온전히 드리지 않았고, 제사장들도 함께 타락하여 이혼과 이방 여인과의 혼인이 이어졌습니다.

풍요를 주지 않는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이 아니었기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하나님이 갑자기 변덕을 부린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를 통해 오래전부터 경고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릴 만큼 은혜를 가볍게 여겼기에 복을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경고하십니다. 그 경고는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려는 사랑입니다. 지금 형편이 풍요롭지 않다고 불평하지 말고, 고난조차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 회개하고 감사하면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로 바뀝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18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열왕기상 26강열왕기상 21:25-29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이 탐나 값을 치르려 했지만 나봇은 조상의 유업을 팔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아합이 자리에 누워 곡기를 끊자 아내 이세벨이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아합은 그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아합의 욕심이 죄의 시작이지만, 곁에서 그 욕심을 부추긴 이세벨 없이는 그 죄가 이렇게까지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죄는 혼자 역사하지 않고 사람의 욕심과 주변의 부추김이 만나 결실을 맺습니다. 심판의 말씀을 들은 아합이 옷을 찢고 금식하며 겸비하자 하나님은 그 재앙을 다음 세대로 미루십니다.

그러나 아합은 나봇의 명예를 회복시키거나 포도원을 돌려주는 등,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죄는 자녀의 세대까지 이어졌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은 그대로 임했습니다. 잘못을 깨달은 즉시 온전히 돌이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5.11
형제를 미워한 에돔이 받은 심판
오바댜

형제를 미워한 에돔이 받은 심판

에돔은 험준한 산악 지형에 자리 잡아 어떤 강한 적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침공당하던 날, 에돔은 형제 나라를 돕기는커녕 약탈에 가담하고 도망치는 사람을 잡아 넘겼습니다.

에돔이 심판받은 이유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에돔을 형제라 부르시며 보호해 주셨지만, 잘 살게 되자 그들은 교만해졌고 힘 있는 쪽에 붙어 형제를 버렸습니다. 결국 그들이 유다에게 행한 그대로, 동맹국에게도 바벨론에게도 배신을 당했습니다.

에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야곱의 후손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수백 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방관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며, 그 심판은 훗날 온 세상을 향한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4
스스로 결정한 결과
열왕기상 25강열왕기상 20:35-42

스스로 결정한 결과

벤하닷이 군사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에워쌉니다. 아합은 처음엔 그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려 했지만, 요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갈수록 무리해집니다. 하나님은 초라한 이스라엘 군대에게 두 번이나 큰 승리를 안겨 주시지만, 아합은 승리 뒤에 곧바로 벤하닷과 화친하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합니다.

악한 자의 요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작은 타협의 틈으로 들어온 죄는 자라나 결국 마음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은 아합의 순종이 아니라 스스로 교만과 대적하셔서 이스라엘을 살리셨고, 그 은혜 앞에서도 아합은 회개 없이 근심만 하다 궁으로 돌아갑니다.

선지자는 변장하고 나아가 아합 스스로 "네가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리라"는 말을 하게 만들고, 그 말 그대로 심판을 선고합니다. 구원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던 우리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셨듯, 아합에게도 끝까지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그 기회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주어지며, 그 자리에서 근심만 하지 말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4.27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 [부활절]
마태복음마태복음 11:26-30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 [부활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부활의 자리에서 열병을 앓던 여인과 과부가 은혜를 입었던 것처럼, 죽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너진 것은 죽음이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협박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계획된 뜻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성전에서 함께 떡을 나누고도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가 있었고, 죽어도 따르겠다 맹세했다가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약함까지 아시는 그리스도는 끝까지 그들을 붙드셨고, 부활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4.20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마가복음마가복음 11:1-10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 앞에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칩니다. 이 말은 찬양구가 아니라 "제발 구원해주세요"라는 간청입니다. 그러나 불과 닷새 뒤 그 같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무리로 돌변합니다.

그들이 바란 구원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세상의 힘이었지만, 예수님이 주고자 하신 구원은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의 회복이었습니다. 에덴에서 인간이 불순종으로 쫓겨난 그 순간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예수님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자신들의 기대와 예수님의 행보가 어긋나자 곧바로 돌아선 그 무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역사가 내 기대와 다를 때 얼마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형통을 구원보다 더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입니다. 감사와 삶이 따로 놀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 슬그머니 내 공로를 끼워 넣지 않도록 날마다 시선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미 받은 구원은 우리의 헌신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이며, 그 은혜 안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쁨으로 살아내면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4.13
잘 박힌 못 같은 말씀
전도서 23강전도서 12:1-14

잘 박힌 못 같은 말씀

솔로몬은 젊은 날 하나님을 떠나 권력과 쾌락을 좇았습니다. 노인이 되어서야 그 시간이 헛되었음을 깨닫고 후회했습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자리에서 그는 후손들에게 자신의 부끄러움을 그대로 드러내며 경고합니다.

교회를 취미처럼, 하나쯤 있으면 괜찮은 종교처럼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교회에 다니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다고 말합니다. 배가 물 위와 물속에 반씩 있어야 나아가듯, 몸은 세상에 있어도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야 신앙이 살아 있습니다.

사람은 늙으면 손발이 떨리고 허리가 굽고 귀가 어두워지다가 결국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 순간 누구든 심판주를 만나며, 하나님께서 주신 세월을 어떻게 썼는지 스스로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잘 박힌 못과 같아서, 그 말씀을 붙들고 있으면 결코 어둠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4.6
물위에 던진 떡
전도서 22강전도서 11:1-10

물위에 던진 떡

어머니 뱃속의 아기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자랍니다. 어떤 환경에 태어났든 그것은 축복이고 기적이지만, 태어난 순간부터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가는 죄인입니다. 그 죄를 탕감할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은 먼저 부름받은 성도의 책임입니다.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말씀은, 가진 재물을 나누라는 뜻이기 이전에 진리를 세상에 부지런히 전하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음녀가 다스리지만 그리스도만이 사탄을 이기고 영생을 주실 수 있으니, 복음을 전할 때는 자신의 지식이 아니라 진리를 전하는 것이므로 담대해도 됩니다. 노아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심판을 전하고 방주를 지었던 것처럼, 구원은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씨를 뿌리면 됩니다.

두 가지 중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고 묻는 이들이 있지만, 선택은 진리 안에서 스스로 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 선택을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지금 구원의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아침에 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않는 마음으로 복음의 떡을 계속 던지시기 바랍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3.30
하나님의 위로
열왕기상 24강열왕기상 19:11-18

하나님의 위로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내려 850명의 우상 선지자를 물리친 엘리야는 이세벨의 협박 한마디에 무너져 로뎀 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떡과 물을 주시며 어루만지십니다.

큰 믿음을 가진 사람도 세상의 힘이 두려워 주저앉는 순간이 옵니다. 하나님을 놓치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초라함과 상대의 크기였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고, 사람이 바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적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한 엘리야를 끝까지 붙드시고 새로운 사명과 함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남아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노아를 기다려 주셨듯, 지치고 두려운 이들의 손목을 끝까지 붙잡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걸음을 떼기를 전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3.23
지혜자와 우매자
전도서 21강전도서 10:12-20

지혜자와 우매자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는 순간, 손을 대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부자는 날마다 자색 옷을 입고 잔치를 벌였고, 그 대문 앞에는 헌데투성이 나사로가 버려져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순종하든 불순종하든 하나님은 이삭 대신 죽을 숫양을 이미 준비해 두셨습니다. 순종은 그 은혜를 축복으로 받아 누리는 것이고, 불순종은 같은 은혜를 저주로 바꾸는 것입니다.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으로 믿음을 자랑했지만 실은 형제를 구제하지 않은 우매자였고, 가난했던 나사로는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잘 살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게 하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심중의 불평과 침실에서 몰래 하는 말까지 다 듣고 계시니, 게으르지 않고 감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3.16
최후의 승리자
열왕기상 23강열왕기상 18:36-40

최후의 승리자

아합은 온 나라가 겪는 가뭄을 엘리야 탓으로 돌리며 그를 잡으러 다니지만,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가뭄을 부른 것은 아합 자신의 우상숭배였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둘 다 섬기려 하고, 엘리야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바알은 물질적 풍요와 개인의 영달을 약속하는 신이지만, 생육과 번성과 충만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복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두 주인을 함께 섬기려는 불신앙입니다.

엘리야가 물 부은 제단 위에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도록,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사랑의 순서를 바로잡을 때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3.9
사르밧 과부의 순종과 믿음
열왕기상 22강열왕기상 17:15-24

사르밧 과부의 순종과 믿음

엘리야는 가뭄을 선포한 뒤 그릿 시냇가로 숨었지만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은 그를 시돈 땅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로 보내십니다. 그 여인은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으로 아들과 함께 한 끼를 먹고 죽으려던 참이었는데, 엘리야의 청에 순종하여 먼저 떡을 만들어 드립니다.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으로 살 소망이 생긴 여인에게, 얼마 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는 재앙이 닥칩니다. 여인은 이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며 엘리야를 원망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누리는 풍요에 만족하는 신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시려는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에는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엘리야의 부르짖음에 아들이 다시 살아난 뒤에야 여인은 비로소 엘리야가 참 선지자임을,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볼품없던 이방 여인을 택하여 이런 믿음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우리도 택하여 세우고자 하십니다. 사람과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참된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