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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출애굽 사건, 역사인가 신화인가?

출애굽 사건, 역사인가 신화인가?

모세가 백성에게 이집트에서 나온 그날을 기념하라고 명합니다. 성경은 이 일을 하나님의 권능이 이룬 사건이라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신화나 문학적 상상으로 취급하려 합니다.

학자들이 근거로 삼는 것은 라암셋 성 건축 기록입니다. 그래서 라암셋 2세 시대를 출애굽 시기로 못 박아 놓고, 그 시대에 맞는 증거가 없다고 성경을 신화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실제 고고학 증거들 — 이방인 정착촌, 요셉의 무덤으로 보이는 유적, 노예 명단에 남은 샘족 이름들, 급하게 버려진 도시와 매장 흔적, 이집트 현자의 기록, 이스라엘 석비 — 은 모두 라암셋 시대보다 앞선 중왕국 시대를 가리킵니다. 시대를 잘못 짚어 놓고 증거가 없다고 말해온 것입니다.

증거들을 시대에 맞게 놓고 보면 성경의 기록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출애굽을 역사가 아니라 비유와 교훈으로만 받아들이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을 뿐, 성경의 역사적 근거를 없애면 그 위에 세워진 신학적 진리도 함께 무너집니다. 출애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에서부터 계획된 역사적 사실이며,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기초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7.27
홍해의 기적과 진짜 시내산의 위치

홍해의 기적과 진짜 시내산의 위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걸어간 길은 열하루 거리였지만, 그 흔적을 40년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홍해와 시내산의 위치는 성경 본문과 여러 군데 어긋납니다. 수에즈만은 얕고 좁아 급히 떠난 백성이 건넜다고 보기 어렵고, 시나이 반도의 산은 로마 교황청이 6세기에 추정으로 지정한 곳일 뿐입니다.

성경은 얌수프를 크고 깊고 넓은 물, 좌우로 벽처럼 선 물이라 기록합니다. 아카바만의 누에이바 앞바다는 그 폭과 수심, 완만한 경사, 발견된 병거 바퀴의 흔적까지 그 기록과 맞아떨어집니다. 그 건너편에 있는 라오즈산 역시 불에 그을린 정상, 열두 지파의 돌기둥, 아론이 세운 금송아지 제단의 흔적, 흐르는 시내와 동굴까지 시내산에 있어야 할 것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3500년 전의 일이라 무엇 하나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흔적들은 하나님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일하신 증거이지, 종이 위의 비유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이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신 것처럼, 결국 믿음은 증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7.27
선하신 왕의 명령을 지키는 성도들
전도서 15강전도서 8:1-8

선하신 왕의 명령을 지키는 성도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천사처럼 평안한 얼굴을 보였습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어 백성을 강퍅하게 다스리다가, 세월 앞에 무너지는 자신을 보고서야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이 참된 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오바댜는 아합 왕의 신하로 있으면서도 목숨을 걸고 여호와의 선지자 백 명을 굴에 숨겨 살렸습니다.

얼굴은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교만할 때는 사납던 솔로몬의 얼굴이 회개한 뒤에는 온유하고 광채가 나는 얼굴로 바뀌었습니다. 왕 되신 하나님의 명령은 하고 싶을 때만 지키는 것이 아니며, 사람은 장래 일도 죽는 날도 스스로 정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에 그 생명의 주인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때와 판단을 분별할 수 있어 불행에 빠지지 않습니다. 순종은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서 스스로 하는 헌신이어야 합니다.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성도는 종말을 두려워할 필요 없이, 지금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혜롭게 살아가면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21
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인간의 무지
전도서 14강전도서 7:19-29

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인간의 무지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백성을 다스리고 명판결을 내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커지자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고 아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의 지혜는 교만과 정욕의 냄새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는 은혜를 자기 의로 착각한 결과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마음에 두는 순간 은혜는 밀려나고,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는 분별력 대신 욕심과 우상이 들어찹니다. 솔로몬 자신도 훗날 그 시절이 헛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악한 것을 피할 수 있지만, 지혜를 버린 자는 스스로 올무에 붙잡힙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전, 말씀을 들은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14
여러분은 지혜자인가 우매자인가-
전도서 13강전도서 7:8-18

여러분은 지혜자인가 우매자인가-

공부를 오래도록 성실히 해온 아이와 벼락공부로 성적만 맞추는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가 있고, 정직하게 산 사람이 오히려 더 낙심할 수 있습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았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과거만 회상하는 신앙은 그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형통과 고난을 사람이 헤아릴 수 없게 하신 것은, 인생이 결국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지나치게 의롭다 여기거나 지나치게 지혜롭다 여기는 것도, 지나치게 악하거나 우매한 것도 다 스스로를 패망으로 이끕니다. 구원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7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
열왕기상 8강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뒤이어 왕궁을 지었습니다. 왕궁이 성전보다 두 배나 크고 짓는 데 두 배나 걸렸지만, 성경은 그 왕궁 이야기를 성전 건축 기사 사이에 단 열두 절로만 끼워 넣었습니다.

규모나 기간으로 보면 왕궁이 더 큰 사건이지만, 성경이 붙잡은 중심은 왕궁이 아니라 성전입니다. 성전 기구를 만든 이는 유대인 어머니와 두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 없이 자란 히람이었는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그런 그를 성전 건축의 총책임자로 세우셨습니다. 성전 입구에 세운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세워졌다는 뜻을 담고 있고, 놋바다와 물두멍은 정결하게 씻은 뒤에야 금으로 채워진 성소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전도 궁전도 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도구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심이 궁전이 아니라 성전이어야 했듯이, 우리 인생의 중심도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둘 때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고 채우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6.30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빌립보서 9강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며 두려워합니다. 바로왕과 싸워 이겨야 했고, 자기 혼자였다면 견딜 수 있었을 시험도 백성의 믿음까지 책임져야 하니 훨씬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지나온 백성들은 그 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는, 물 한 모금을 놓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큰 은혜를 받은 다음이 가장 위험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 무언가를 더 달라고 찔러보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그 백성을 마음 밖에 내놓지 못해서 화를 내고, 그 서운함에 넘어져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고통과 복음 전하는 사명을 섞지 않고, 고통은 마음 밖에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넘어지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면 모든 일에 실패합니다. 겸손한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평강을 주시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28
성취하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7강

성취하시는 하나님

솔로몬은 왕이 된 지 4년 만에 성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을 두고, 출애굽한 지 480년째 되는 해라는 사실을 함께 밝힙니다. 광야를 떠돌던 성막이 이제 한곳에 자리 잡은 성전이 되기까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약속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막이든 성전이든 그 건물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겠다고 정하신 자리일 뿐, 사람이 정성을 쏟는다고 그 안에 하나님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도 같습니다. 건물이 아니라 법도를 지키는 순종이 중요하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결코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한 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성막에서 성전으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고 성도인 우리 자신으로 이어지는 것도 같은 임재의 약속입니다. 지금 곤고하고 연약해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끝까지 빛나는 믿음의 길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6.16
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전도서 12강전도서 7:1-7

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여호수아가 순종하여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그의 이름은 열방에 알려집니다. 함성을 지르기 전까지 그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그 순종 뒤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이름을 높이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과 살아온 시간을 담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지만, 사람의 칭찬을 얻으려는 헌신은 겉으로는 화려해도 열매가 없습니다. 값비싼 향유의 향기가 잠깐이듯, 사람을 높이는 헛된 이름도 금방 사라집니다.

탐욕과 뇌물은 아무리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도 무너뜨립니다. 자신의 이름을 세우려던 교만은 결국 재로 남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산 사람은 그 곁에서 함께 불리는 이름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이름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선하게 쓰라는 말씀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9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8강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도 십자가 앞에서 두려움에 배신했습니다. 훗날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생명책을 직접 보고 나서야, 자신의 죄와 그날 다하지 못한 믿음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히지 않고, 믿음이 자랄수록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다툰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각자 자기 판단과 자존심을 앞세우며 "이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 말했지만, 그 속에는 자기 뜻을 굽히기 싫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지식과 자기주장으로 풀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하고, 성령께 맡기고 잠잠히 참으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해결하십니다. 그렇게 관용하며 산 삶이 그대로 보좌 앞 책에 기록되고, 하나님은 그 삶을 보고 계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2
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전도서 11강전도서 6:1-12

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하나님을 경외했고, 전쟁에서 승리하며 나라를 크게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지자 그는 서서히 변질되어, 자신의 지혜와 전략으로 이룬 성공이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분향을 자신이 하겠다며 성전에 들어갔고, 제사장 아사랴가 간곡히 말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교만은 한순간에 오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과 권력, 사람들의 칭찬이 하나님께 감사하던 마음을 서서히 가리고,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이미 마음이 사탄에게 넘어갔다는 증거입니다. 웃시야는 이마에 문둥병이 생기는 심판을 받아 죽는 날까지 별채에 갇혀, 왕의 권세도 누리지 못하고 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아무리 커도 감사를 잊고 교만해지면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빼앗깁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웃시야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 관계를 해친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빚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사람이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5.26
서로를 위함 섬김의 예배

서로를 위함 섬김의 예배

산에 나뭇잎이 돋는 것을 본 지 두 달, 어느새 나무와 꽃이 무성하게 피었습니다. 그 계절 가운데 성도들이 함께 모여 야외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절하며 드리는 경배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향한 섬김과 봉사입니다.

구약의 화목제와 신약의 주의 만찬에는 이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만이 아니라 성도끼리 나누는 식사와 교제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삶 전체를 뜻합니다.

성도는 자기 명예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기에 자기 뜻을 내려놓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미 받은 구원이 삶에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오늘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