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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추수할 때가 이르러 [추수감사주일]
마태복음마태복음 9:35-38

추수할 때가 이르러 [추수감사주일]

예수님은 태어나실 곳도 없이 오셨고,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한 형벌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이 예언한 대로 초림이 성취되었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재림도 반드시 일어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지금, 추수감사절에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지보다 먼저 우리 심령이 옥토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감사헌금이나 봉사, 열심을 냈다는 뿌듯함만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밭의 곡식은 이미 희어져 추수할 때가 지났는데 일꾼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 채 그 위에 헌신을 쌓기 때문에 참된 일꾼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금 즉시 자신을 버리고 부르심에 응답하여, 마지막 때 하나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1.17
분열된 나라의 두 왕
열왕기상 15강열왕기상 12:15-20

분열된 나라의 두 왕

암몬 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그에게 받은 호의를 갚으려 아들 하눈에게 조문단을 보냅니다. 하눈은 신하들의 말에 흔들려 사절단을 모욕하고, 두려움에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다 큰 희생을 치릅니다.

훗날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도, 백성들이 과도한 세금과 노역을 덜어 달라 요청하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르호보암은 늙은 신하의 충언을 버리고 젊은 신하의 말을 따라 백성을 더 가혹하게 다스리겠다 선언했고, 그 결과 나라가 둘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에게 주신 왕위도, 다윗과 같은 약속을 받았음에도 그는 백성의 마음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쏠릴 것이 두려워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의 길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돌이키면 피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르호보암도 여로보암도 두려움과 자격지심으로 그 기회를 놓쳤고, 여로보암의 나라는 24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 다윗처럼 기억되는 길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1.3
하나님의 택하심을 위하여
열왕기상 14강열왕기상 11:9-13

하나님의 택하심을 위하여

솔로몬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얻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는 지혜를 받아 나라를 번성시켰지만, 왕이 지켜야 할 규례들 — 이방인을 왕위에 세우지 말 것, 말을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재물을 쌓지 말 것 — 을 하나씩 어겨 갔습니다.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은 결국 그의 마음을 돌려 예루살렘 성전 앞에 산당을 짓고 온 백성을 우상숭배로 이끌게 했습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온 실수가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저지른 배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으시고, 나라를 다 빼앗지 않으신 채 다윗을 위해 한 지파를 남겨 두셨습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돌이켰습니다. 그 남겨진 한 지파를 통해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사람의 신앙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언약은 끝까지 신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0.20
영광 가운데 드리워진 그림자
열왕기상 13강열왕기상 10:4-10

영광 가운데 드리워진 그림자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소문으로만 듣고 먼 길을 찾아옵니다. 직접 만나 보니 소문이 오히려 과소평가된 것이었고, 그녀는 크게 감동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많은 예물을 드립니다.

솔로몬의 명성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도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이방인에게 넘기고, 진멸하라 하신 족속을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며, 이방과의 교역으로 우상숭배 문화를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영광 뒤에 이미 순종하지 않는 균열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악한 마음을 당장 막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실 때가 있습니다.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성공과 번영에 취해 하나님을 놓치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받은 은혜를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자리로 삼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0.6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전도서 17강전도서 9:1-10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다

세상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고, 사람은 그것을 잠시 맡은 청지기일 뿐입니다. 주인의 뜻을 몰라 재산을 움켜쥐고 가난한 이를 외면했던 청지기가 있었고, 주인의 마음을 깨닫고서야 나누어 주기 시작한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솔로몬도 자신이 누린 왕의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서 잠시 맡기신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나누지 않고 자기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시간이 죄였다는 것을, 죽음의 다리 앞에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어둠 속 동굴에서는 재물의 많고 적음으로 자신을 특별하다 여기지만, 그리스도의 빛으로 나오면 그 모든 자랑이 부끄러운 것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왕의 권세로 호령하던 시간은 죽은 사자처럼 아무 의미가 없었고, 핍박받던 하나님의 백성은 날마다 돌이킬 수 있는 살아있는 개처럼 귀한 인생이었습니다. 날마다 자신의 의를 죽이고 하나님의 의에 의지해야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주인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기를 전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9.29
심판을 말씀하시는 사랑
열왕기상 12강열왕기상 9:1-9

심판을 말씀하시는 사랑

성전과 왕궁을 모두 지은 솔로몬 앞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기도를 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축복만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처럼 마음을 온전히 하고 법도를 지키라는 당부였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성전도 이스라엘도 쫓겨나고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가 함께 주어집니다.

솔로몬은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 기도하면서도, 정작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언약궤 곁에 둔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축복과 저주가 함께 놓인 법칙이어서, 순종하면 복이 대를 이어 임하고 불순종하면 심판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결국 그 기도는 응답되었고, 훗날 나라는 갈라지고 성전은 파괴되어 이스라엘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심판의 경고는 사람을 두렵게 하려는 말씀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빨리 돌이키라는 사랑의 말씀입니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며, 그때 교만이 감사를 덮습니다. 그러므로 넘어질까 조심하며, 남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9.8
참 소망을 가진 바울과 실라 (설립 21주년)
사도행전사도행전 16:16-40

참 소망을 가진 바울과 실라 (설립 21주년)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는 귀신 들린 여종을 자유롭게 해 준 일로 매를 맞고 갇힙니다. 한밤중에 기도하고 찬송하는데 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다 풀립니다. 도망칠 수 있었지만 바울은 도망치지 않고 자결하려던 간수를 붙잡아 세웁니다.

풀려날 기회가 왔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그 사람의 믿음을 드러냅니다. 지진은 죄수에게나 간수에게나 똑같이 닥쳤지만, 거듭난 사람만이 그 순간에도 정직하고 거룩한 결정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수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자신이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들은 간수와 온 가족은 그 밤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복음을 전한 것은 바울이지만 그 사람을 믿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전하는 사람은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면 됩니다.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 나와 다시 루디아의 집, 곧 교회로 돌아가 형제들을 만나 위로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9.1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
열왕기상 11강열왕기상 8:27-30, 56-61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

솔로몬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모신 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며 백성을 위해 중보하고 축복합니다. 그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로도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하나님이 성전을 향해 눈을 두시고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간구합니다.

성전이 귀한 이유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곳이 하나님의 자비와 백성의 기도가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행하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신다는 고백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드렸던 순종과 같은 무게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죄와 회개, 이방인의 기도까지 모두 품는 솔로몬의 중보는, 하나님이 한 민족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보여줍니다.

이제 참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가 곧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내미시는 은혜의 손을 날마다 마주 잡을 때,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함께 모일 때뿐 아니라 흩어진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8.25
하나님이 계시는 곳
열왕기상 10강열왕기상 8:12-21

하나님이 계시는 곳

성전을 봉헌하는 자리에서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빛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시내산에서도, 지성소에서도 흑암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이 흑암은 악함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큰 빛을 비추어도 무한한 공간을 다 밝힐 수 없듯이,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오히려 자신의 무지함이 더 커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성전에 이름을 두시고, 낮은 자리에 스스로를 가두시며 함께하기를 택하셨습니다.

성전은 사람이 하나님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의 자리였고, 그 임재는 언약에 대한 순종에 달려 있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언약을 저버리자 성전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알수록 모름의 경계도 함께 커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커질수록 그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8.18
하나님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는 지혜자
전도서 16강전도서 8:9-17

하나님의 위대함을 깨닫지 못하는 지혜자

악인이 벌을 받지 않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의인이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니 악인들은 더 담대하게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살아도 사람은 결국 죽고, 몸은 흙으로 혼은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집니다.

즉각 심판하지 않으심은 하나님의 무관심이 아니라 스스로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인내입니다. 세상에서 오래 사는 것과 풍요를 누리는 것은 진짜 복이 아니며, 진정한 장수는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솔로몬 자신도 권세와 재물을 다 가지고도 밤잠을 설칠 만큼 외롭고 허탈했고, 뒤늦게야 하나님을 떠난 시간이 헛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불공평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붙들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든 분별하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게 죄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돌이킬 기회는 숨 쉬고 있는 지금뿐입니다. 자신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인간의 연약함과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비로소 깊이 깨닫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8.11
영원한 속죄와 은혜의 자리
열왕기상 9강열왕기상 8:1-11

영원한 속죄와 은혜의 자리

솔로몬은 성전에 들일 기물을 모두 새로 만들었지만, 언약궤만은 성막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궤를 지성소 그룹의 날개 아래로 메어 들였고, 운반용 채는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채를 빼지 않은 것은 채를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궤 안에는 만나 항아리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없이 두 돌판만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관심이 오직 언약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부터 한결같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변함없이 지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기적도, 성도가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헛될 뿐입니다. 언약궤가 마침내 성전 지성소에 안치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 가득 찼고, 제사장들은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언약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8.4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2024년 여름수련회)
요한계시록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2024년 여름수련회)

천년이라는 기간을 성경이 여섯 번 언급합니다. 이 기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재림과 휴거, 대환란의 순서가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됩니다. 정통 교단 안에서도 이 순서를 두고 서로 다른 학설들이 오래도록 갈려 있습니다.

재림이 먼저냐, 천년왕국이 먼저냐, 아니면 천년을 상징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학자들의 주장이 갈립니다. 전천년설 안에서도 성도가 고난을 함께 겪는다는 입장과, 고난 전에 교회가 먼저 들려 올라간다는 입장이 나뉩니다. 각 입장은 저마다 근거로 삼는 구절이 있고, 어느 쪽도 틀렸다고 단정할 수 없기에 서로 이단시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순서를 정확히 못박아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학설이 맞는지가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있는지입니다. 그 믿음만 있으면 언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