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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홍해의 기적과 진짜 시내산의 위치

홍해의 기적과 진짜 시내산의 위치

이 본문은 출애굽의 경로와 관련해 전통적으로 알려진 시나이 반도와 스에즈만 설이 지닌 지리적, 성경적 모순을 지적합니다. 홍해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와 성경이 묘사하는 바다의 규모를 고려할 때, 나일강 삼각주의 얕은 호수나 전통적인 시나이 반도 경로보다는 아카바만이 더 적합하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또한 아카바만의 누에이바 해안 지형이 성경의 기록과 놀랍게 일치하며, 고고학적 단서들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설명합니다.

신해산의 위치 역시 전통적인 시나이 산이 아닌, 아라비아 반도 내의 라오즈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제시합니다. 이 산은 성경이 요구하는 산의 경계, 제단 흔적, 흐르는 물, 그리고 동굴 등 여러 조건을 충족시키며, 이름의 의미와 지형적 특징이 출애굽 사건과 연결된다고 봅니다. 이러한 지리적 재검토는 단순한 위치 찾기를 넘어, 하나님이 역사하신 현장의 실체를 확인하려는 시도입니다.

설교는 수많은 고고학적 증거와 지리적 분석을 제시하면서도, 결국 인간의 지식과 논리가 믿음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들이 우리를 믿음으로 이끄는지, 아니면 오히려 우리의 자아를 드러내는지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자들이 복되시다는 말씀 아래, 우리는 어떤 태도로 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이지현 목사님 · 2024.7.27
선하신 왕의 명령을 지키는 성도들
전도서 15강전도서 8:1-8

선하신 왕의 명령을 지키는 성도들

이 본문은 솔로몬 왕의 삶과 지혜를 통해 성도가 세상의 권세와 하나님의 명령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솔로몬이 교만으로 인해 백성들을 억압하던 시절과,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선한 왕으로 돌아선 후의 모습을 대비하여 보여줍니다. 또한 이세벨의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숨겨 구한 오바댜의 충성과, 스데반이 순교하면서도 평안을 지킨 모습을 통해 신앙인의 태도를 조명합니다.

설교는 성도가 세상의 도덕적 법을 지키고 권세에 굴복해야 하는 이유가 복음 전파를 위한 전략적 선택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생존 전략이 아니라,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자로서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순종이어야 함을 지적합니다. 특히 성도의 얼굴이 말씀에 순종할 때 빛나고, 말씀에서 벗어날 때 어두워진다는 점을 통해 내면의 영적 상태를 점검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강압이 아닌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성도로 하여금 스스로 헌신하도록 기다리시는 은혜를 이해해야 함을 이야기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이 장래 일을 알 수 없고 자신의 생명이나 죽음의 시기를掌控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상기시킵니다. 이러한 한계를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지혜자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선하신 명령을 지키는 것이 결국 성도를 구원하는 길임을 깨닫게 합니다. 독자는 자신의 삶이 세상의 칭찬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종의 삶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21
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인간의 무지
전도서 14강전도서 7:19-29

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인간의 무지

이 본문은 솔로몬이 초기에 누렸던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점차 자신의 교만과 정욕으로 인해 사라지고 말았는지 그 과정을 조명합니다. 처음에는 성읍의 열 유사보다 더 뛰어난 지혜로 백성을 다스리며 거룩한 향기를 풍겼던 그가, 사람들의 칭찬에 취해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의 의로 착각하며 타락해 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지혜를 잃은 자리는 교만과 음란함으로 채워졌고, 결국 그는 사탄의 올무에 걸려 헛된 인생을 살았음을 후회하게 됩니다.

설교는 이러한 솔로몬의 실패를 통해 성도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 묻습니다. 인간의 의를 버리지 않고 자신의 판단을 옳다고 고집할 때, 그것은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던 것과 같은 어리석은 결단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말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타인의 비방에 마음을 빼앗겨 신앙의根基을 흔들리는 상황을 지적하며,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성도는 세상의 유혹과 인간의 의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어야 합니다. 설교는 독자에게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지키고 있는지, 아니면 사탄의 꾀에 빠져 올무에 걸려 있는지 성찰해 보라고 질문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14
여러분은 지혜자인가 우매자인가-
전도서 13강전도서 7:8-18

여러분은 지혜자인가 우매자인가-

이 본문은 성도가 지혜자인지 우매자인지를 가르는 기준을 제시하며,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거나 현재의 고난에 불평하는 태도가 어리석음임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게 하셔서 사람이 장래 일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셨으며, 이는 인생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도는 자신의 의나 지혜를 자랑하기보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에 순종해야 하며, 지나치게 의롭거나 지혜자처럼 행동하는 교만을 경계합니다.

설교는 인간의 의가 결국 패망을 부른다고 경고하며, 세상의 잣대로 자신을 높이는 것이 하나님을 낮추는 행위임을 밝힙니다. 성도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정직한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죄의 싹을 자르고 사탄의 공격을 막아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기한 전에 죽을 수 있는 우매자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그리스도의 지혜로 신중하게 판단하며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설교는 성도가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지, 아니면 세상의 문제를 하나님의 지혜로 판단하며 헌신하는지 묻습니다. 만약 인간의 의로움으로 주님의 의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버려야 할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성도는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이 환경을 주신 이유를 판단하고, 인간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7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
열왕기상 8강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

이 본문은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 사이에 그의 왕궁 건축 기록이 짧게 등장하는 ‘샌드위치 기법’을 통해, 하나님의 일과 세상 일 중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지를 다룹니다. 성전보다 더 크고 오래 걸린 왕궁의 기록이 성경에서 상대적으로 간결하게 처리된 것은 인간의 치적이 아닌 하나님의 구속사가 중심이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방인 장인 히람이 만든 놋기둥과 놋바다 등 성전 기구들의 의미와 쓰임을 통해, 성도가 어떻게 정결함과 희생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지 설명합니다. 성전 입구에 세워진 기둥들은 인간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워짐을 고백하게 하며, 물로 씻는 정결 의식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인 성전으로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지어가고 가꾸어 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장구한 역사 가운데 우리의 작은 인생이 끼어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기록되기를 원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4.6.30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빌립보서 9강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이 본문은 모세가 이집트 바로와 대결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는 과정과,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전하는 교훈을 다룹니다. 모세는 절대 권력을 가진 바로와 싸우는 외적 시험을 넘겼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을 당연시하며 불평하는 동족의 욕심과 감사하지 않는 태도라는 내적 시험에서 넘어집니다. 특히 백성들을 향한 사랑과 책임감이 오히려 모세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여, 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설교는 이러한 모세의 실패를 통해 지도자와 부모가 겪는 깊은 시험을 짚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후 가장 위험한 시기는 자존감이 높아지고 상대의 연약함에 감정이 흔들릴 때임을 경고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형편에 상관없이 자족하며 복음 전파에 집중하는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는 성도들의 분쟁으로 인해 고통받았지만,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오직 그들의 회복과 하나님의 뜻을 위해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물질적 도움을 넘어 첫사랑과 순종의 마음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이는 진정한 성숙이 감정과 믿음을 하나로 통합할 때 가능함을 보여줍니다.

설교는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타인의 연약함 앞에서 감정을 통제하며 순종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또한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평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28
성취하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7강

성취하시는 하나님

이 본문은 솔로몬이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는 역사적 장면을 다룹니다. 성막에서 성전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임재 공간의 변화는 단순한 건물의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장장 5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묵묵히 언약을 성취해 가신 신실하심을 보여줍니다.

성전의 구조와 건축 과정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설계와 식양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으며, 이는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성전 건물 자체보다 그 안에서 행하는 순종과 법도를 지키는 태도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며, 성전이 화평과 정숙을 유지하는 장소임을 드러냅니다. 이러한 성전의 참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며, 결국 성도 자신이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임을 상기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 긴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결코 배반되지 않고 반드시 성취됨을 확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평화와 임재의 중심을 어떻게 지켜가며, 끝까지 변치 않는 순종으로 응답할 수 있을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4.6.16
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전도서 12강전도서 7:1-7

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이 본문은 여호수아의 순종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는 원리를 설명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순종할 때 세상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되며, 이때 성도는 겸손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그 사람의 신앙, 인격, 그리고 지나온 시간을 대변하는 중요한 지표가 됩니다.

또한 잔칫집보다 초상집이 낫다는 말씀은 죽음이라는 끝을 통해 인생의 유한함과 진실을 깨닫게 한다고 전합니다. 세상적인 즐거움은 잠시일 뿐이지만, 죽음을 대비하며 자기 반성하는 삶은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성도는 고난과 슬픔 속에서도 세상의 헛됨을 분별하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애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탐욕과 뇌물은 지혜자를 우매하게 만들어 명철을 망치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이 평생 쌓은 믿음을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판단하실지 깊이 생각하며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명예보다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이 진정한 영화로움을 가져온다는 이 설교는, 독자가 자신의 이름이 어떻게 기록될지 성찰하게 만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9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8강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이 본문은 사도 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생명책을 직접 목격한 경험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실재함을 강조합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막연히 믿을 뿐, 재림과 심판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었으나, 보좌의 영광을 마주하며 자신의 죄와 무지함을 통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말과 행위를 기록된 책에 낱낱이 기록하시며, 이를 기준으로 심판하실 것을 선포합니다.

설교는 빌립보 교회의 유오디아와 순두개가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고 다투는 상황을 지적하며, 교회의 분쟁이 인간의 자존심과 하나님의 권위 간 충돌에서 비롯됨을 밝힙니다. 성도는 자신의 의견과 방법을 고집하기보다,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고 서로 관용과 양보를 베풀어야 합니다. 교회 내 다툼은 영혼을 실족하게 하며 교회를 분열시키는 죄이므로, 성도들은 혈기를 누르고 성령께 모든 근심을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결같은 신앙과 공의로운 삶을 사시는 성도를 기뻐하시며, 그들의 삶을 세상의 삶과 동일하게 감찰하십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지혜를 갖추고 정직하게 살되, 교회 안에서는 겸손히 낮은 자리를 택하여 화합을 도모해야 합니다. 설교는 성도가 보좌 앞에 서게 될 그 날을 기억하며, 지금의 작은 다툼이 영원한 상실을 초래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성도는 서로 용서하고 세워줌으로써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

조춘숙 목사님 · 2024.6.2
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전도서 11강전도서 6:1-12

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이 본문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웃시야 왕에게 부귀와 권세를 주셨으나, 그가 교만으로 변질되어 제사장의 권면을 무시하고 직접 분향하려다 문둥병에 걸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건을 다룹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으로 인해 관계가 깨지고 모든 축복을 빼앗기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설교는 어려움이 해결되면 곧바로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약점을 지적합니다. 심령이 가난하지 못해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자랑할 때, 그것은 사탄의 종이 된 증거이며 결국 패망의 길로 이어집니다. 성도는 세상의 인정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설교는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마음을 빼앗긴 인생이 결국 헛된 것으로 끝남을 경고합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천국 백성으로 준비하는 삶이 진정한 지혜인지, 아니면 세상의 성공에 매몰되어 영혼을 잃는 어리석음을 선택할지 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5.26
서로를 위함 섬김의 예배

서로를 위함 섬김의 예배

이 설교는 야외 예배의 자연스러운 풍경과 계절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감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예배의 본질이 단순히 절하는 행위가 아니라 섬김과 봉사를 포함하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는 점을 헬라어 어원을 통해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성도 간에 서로 섬기는 것이 분리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어야 참된 예배가 됨을 강조합니다.

구약의 화목제와 신약의 성만찬을 비교하며, 이 둘이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과 성도 간의 교제를 동시에 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성만찬이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고 재림을 기다리며, 성도들이 서로 나누는 희생의 공동체임을 지적합니다. 교회 내 분쟁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성도는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고 서로 협력해야 하는 존재임을 권면합니다.

섬김에는 반드시 희생이 따르며, 이 과정에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만약 봉사가 상급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난 것인지를 돌아보게 하며, 이웃을 향한 사랑이 구원의 결과임을 분명히 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이웃을 향한 섬김이 하나로 어우러진 삶이 바로 살아 있는 예배임을 제시합니다. 성도가 자신의 전 인격을 드리는 희생의 예배를 통해 이 땅의 삶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그리고 서로를 위해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5.19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성도들
전도서 10강전도서 5:10-20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성도들

이 본문은 솔로몬이 재물과 권력을 모두 누려본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탐심이 결국 헛된 것으로 돌아옴을 경고합니다. 금덩이를 발견한 형제가 서로의 관계를 해칠 수 있는 욕심의 근원을 과감히 버림으로써 화목을 지킨 동화를 통해, 물질 자체보다 그로 인해 변하는 인간의 마음이 더 큰 위험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는 진실을 상기하며, 사후세계를 위해 현재 세상의 불의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설교는 성령의 역사에 감사하다가도 시간이 지나 마음을 돌려 불평하는 것이 성령을 훼방하는 중대한 죄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평생 교회 생활을 하며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것을 더 의지하거나 하나님의 역사를 조롱하는 태도는 다시 회개할 수 없는 위험한 상태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고난과 시련이 찾아왔을 때 그것을 뿌리 흔들는 태풍으로만 보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무거운 짐을 맡기고 감사하며 믿음으로 견디는 지혜가 필요함을 전합니다.

성도가 범사에 감사하며 심령의 낙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로 고난을 대해야 할까요?

조춘숙 목사님 · 2024.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