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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요한계시록]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요한계시록 22:18-21

[요한계시록]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 설교는 중동의 정세와 급변하는 기술 환경을 성경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마지막 때의 징조가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합니다. 과거 어린 시절의 두려웠던 기억을 넘어, 현재는 적그리스도가 등장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전체주의적 통제와 초지능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인공지능과 데이터 수집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며, 이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는 통치 구조가 완성되어 가고 있는 현실을 경고합니다.

설교는 이러한 혼란스러운 시대에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마지막 날이 도둑 같이 올지라도 밤에 속한 자가 아니라 낮에 속한 자로서 깨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과 사랑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소망을 붙들며,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자신을 정결하게 가꾸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이 반기독교적으로 흐르고 도덕이 붕괴하는 가운데서도, 심판이 곧 닥쳐올 것이라는 두려움보다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는 마음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설교는 성도들이 게으르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마무리합니다. 악한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신부로서 준비하는 자세가 중요함을 전합니다. 설교는 성도가 두려움보다 기쁨과 설렘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외치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8.10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공의로운 제물
말라기 7강말라기 3:1-6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공의로운 제물

이 본문은 타락한 제사장들이 더러운 제물을 드리며 하나님을 멸시하던 시대, 하나님께서 직접 세상에 오셔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신 사건을 다룹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의의 왕이신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일조를 드린 일화를 통해, 율법 이전부터 존재하던 진정한 제사장의 직분과 그 의미를 조명합니다.

설교는 인간이 드리는 어떤 행위나 헌신도 그리스도의 보혈이 없이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강조합니다. 성도는 짐승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공의로운 제물을 드리는 존재가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기억하며, 가식적인 신앙이 아닌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지적합니다.

성도가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신뢰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8.3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라기 6강말라기 2:10-17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이 본문은 하나님 앞에서 맺은 결혼의 신성을 강조하며, 남편이 아내를 버리고 이방 여인과 혼인하는 죄를 엄격히 책망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연합처럼 부부는 부모를 떠나 하나가 되어야 하며, 이는 단순한 법적 결합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아내를 학대하거나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여인과 혼인함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욕되게 했습니다. 솔로몬과 르호보암의 사례에서 보듯, 부모의 신앙과 인품은 자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설교는 겉으로는 종교적 의식을 치르면서도 삶에서는 죄를 짓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적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들의 가정 파괴와 거짓된 신앙에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특히 남편이 아내를 학대하거나 첫사랑인 아내를 버리는 행위는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중대한 죄로 다룹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손을 얻기 위해 정직한 가정을 원하시며, 가장의 인격이 가족의 평안과 자녀의 신앙 성장을 좌우함을 강조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유보하며 인내하시는 것이 죄를 용서하시는 것이 아님을 경고합니다. 백성들은 죄를 지어도 심판이 늦어지자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항변하지만, 이는 은혜를 악용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를 당연시하지 않고 회개하여 경건한 가정을 세우야 할까요?

조춘숙 목사님 · 2025.7.27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가 받은 능력
열왕기하 2강열왕기하 2:8-14

엘리야의 승천과 엘리사가 받은 능력

이 본문은 선지자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 제자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겪었던 과정을 다룹니다. 엘리야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 세 번이나 엘리사에게 머물러 있으라고 명하지만, 엘리사는 스승을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굳은 결단으로 이를 거절합니다. 이러한 엘리사의 끈질긴 동행과 믿음을 통해 엘리야는 그가 원하는 대로 성령의 갑절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엘리사는 스승의 승천을 직접 목격하며 막연한 믿음이 아닌 확신을 얻고, 이후 수많은 기적을 베풀며 사명을 감당합니다. 특히 여리고의 악수를 고치고, 엘리사를 조롱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내리는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어떻게 보호하시고 역사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본문은 형식적인 종교 행위가 아닌,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뜻을 헤아리는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걸림돌과 유혹 앞에서 어떻게 분별해야 하는지, 그리고 세상의 조롱과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7.20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
말라기 5강말라기 2:1-9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

이 본문은 하나님께서 레위 지파 제사장들에게 세우신 생명과 평강의 언약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법을 바르게 가르치고 백성을 정결하게 인도하는 사자로서의 소명을 받았으나, 많은 제사장들이 게으르고 타락하여 진리를 전하지 않고 제물을 더럽혔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제사장들의 불순종과 부패에 대해 강한 진노를 나타내시며, 그들의 입술이 지식을 지켜야 하고 백성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설교는 제사장들의 실패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백성 전체를 사망으로 이끌고 국가적인 심판을 초래했음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얼굴에 제물의 똥을 바르듯 그들을 버리겠다고 경고하시며, 권력과 재물을 위해 공의를 굽게 하고 뇌물을 받는 죄를 엄격히 책망하십니다. 이러한 고대의 경고는 오늘날 말씀을 맡은 목회자와 성도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성도는 지식으로만 믿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6일의 삶을 믿음으로 살아내고 정결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도는 세상의 유혹과 이단의 감언이설로부터 영혼을 지키기 위해 성령의 검을 들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죄를 짓는다고 해서 자신의 죄를 정당화하거나,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님의 법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변함없이 자신의 언약을 지키고 말씀대로 살 것을 요구하시며, 타락한 제사장과 동일시되는 삶을 살지 않도록 경계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신앙을 선택하겠습니까?

조춘숙 목사님 · 2025.7.13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열왕기하 1강열왕기하 1:13-17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이 본문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하시야가 병들자 에그론의 신에게 물으러 사람을 보내는 장면과, 이에 분노하신 하나님께서 선지자 엘리야를 통해 심판을 내리시는 과정을 다룹니다. 아하시야는 자신의 죄악된 삶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기보다 우상을 찾고, 하나님의 사자를 대적하는 오만함을 드러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왕의 군사를 심판하며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설교는 사람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보다 사람의 눈치나 세상의 권력을 먼저 찾는 죄의 본질을 짚습니다. 아하시야와 앞선 두 오십부장은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다 파멸되었지만, 세 번째 오십부장은 겸손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생명을 구원받았습니다. 이는 인간의 의지나 권세가 생명을 지킬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 순종할 때만이 구원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삶의 위기나 선택의 기로에서 하나님을 신뢰할지, 아니면 눈에 보이는 세상의 해결책을 찾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생명의 주권을 오직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과연 어떤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지현 목사님 · 2025.7.6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말라기 4강말라기 1:10-14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더럽히고, 은혜를 무시하며 하나님을 조롱했던 상황을 다룹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건강한 제물이 아닌 병들고 결함이 있는 제물을 가져오며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는 단순한 의식 문제를 넘어, 창조주에 대한 불평과 감사의 부재가 드러나는 영적인 타락입니다.

설교는 이러한 태도가 결국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임을 짚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이 나라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듯, 오늘날 기복신앙으로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 역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속임수로 드리는 제물을 받지 않으시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거룩한 삶을 살 때만 그 은혜를 누릴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다윗 왕의 간절한 기도처럼, 상황의好坏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진정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설교는 성도가 세상의 유혹과 욕심에 빠지지 않고,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또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믿음을 지키는 성도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 던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29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열왕기상 28강열왕기상 22:41-50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이 본문은 남유다의 선한 왕으로 알려진 여호사밧의 생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는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악한 아합 왕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참여하는 등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릅니다. 특히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 왕으로 변장하여 전쟁터에 나선 그의 행동은 당시의 상황과 그의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큰 의문을 자아냅니다.

설교는 이러한 여호사밧의 행동을 통해 믿음이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영적인 교만과 자만을 짚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때,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이 결국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들과의 동맹으로 이어졌음을 지적합니다. 또한 고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인간의 힘으로 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의지하며 찬양으로 임한 그의 회복의 과정도 함께 전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반복한 실수와 그로 인해 끊어지지 못한 악의 고리가 그의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점을 고려할 때,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지나치게 신뢰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 있는 것이 맞는지, 지금의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지점에서 이 설교는 마무리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6.22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말라기 3강말라기 1:6-9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이 설교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는 타락한 제사장들의 모습을 다룹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흠 없고 건강한 제물을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병들고 상한 제물을 제단에 올렸다고 지적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좋은 제물은 챙기고 남은 것으로 하나님을 대우하며, 심지어 자신의 죄를 모른 채 하나님께 반문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그분의 식탁을 경멸하는 심각한 죄악으로, 제사장의 타락이 백성의 영적 파멸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함을 보여줍니다.

설교는 구약의 제사장이 오늘날 목회자와 성도의 영적 자세에 비유됩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는 신앙을 가졌던 것처럼, 성도는 재물과 고난을 하나님께 대한 신뢰로 다루어야 합니다. 반면, 세상 권세자에게는 좋은 것을 바치면서 하나님께는 계산하고 아까워하는 태도는 불의한 청지기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이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진심과 정직함을 원하시며, 가식적인 예배나 이기적인 헌금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설교는 성도가 자신의 처지에 상관하여 불평이나 의심 없이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과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합니다. 또한, 세상의 기준에 맞춰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헌금을 축복을 얻는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설교는 독자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정으로 그분을 섬기는 삶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5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열왕기상 27강열왕기상 22:14-25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이 본문은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 전투를 앞두고 선지자 미가야를 통해 자신의 죽음을 예언받는 사건을 다룹니다. 아합은 거짓 선지자들의 칭찬에 귀를 기울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려다 결국 심판의 길을 걷게 되며, 미가야는 왕의 분노와 고문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설교는 아합이 심판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못한 완악함과, 미가야가 목숨을 걸고 진리를 선포한 담대한 순종을 대비시킵니다. 또한 듣기 좋은 말만 원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며, 책망과 권면을 성장의 기회로 삼는 지혜로운 성도의 자세를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의 경고를 주시는 것은 돌이킬 기회를 주시기 위한 사랑임을 상기하며, 세상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참된 뜻을 따르는 삶을 권면합니다.

우리는 아합처럼 자신의 생각에 매여 진리를 거부하는가, 아니면 미가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지금 내 안에 있는 쓴 뿌리와 의를 도려내는 아픔을 감수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길을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이지현 목사님 · 2025.6.8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말라기 2강말라기 1:3-5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이 본문은 돌로 만든 작품이 세월을 견디는 견고함과 모래로 쌓은 성이 파도에 쉽게 무너지는 약함을 대비하며 설명합니다. 성도들의 신앙도 이와 같아, 말씀을 중심에 둔 신실한 믿음은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돌과 같지만, 외식적인 신앙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특히 에돔의 역사와 탕자의 비유를 통해, 인간의 노력과 교만으로 쌓은 것들이 하나님께서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면 결국 헐리게 됨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책망과 경고를 보내실 때, 이를 불평하거나 대적하는 것은 스스로 심판의 길을 가는 것과 같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관계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탄의 꾀임에서 지키기 위한 은혜의 신호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지식과 이성을 동원하여 자신의 길을 정당화하려 해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견고하게 세울 수 없으며, 결국 모든 것은 허사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무너짐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을 두드리며 더 깊이 교제하라고 부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에돔처럼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만함을 버리지 않고 불평하는 자가 될지, 아니면 탕자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할지, 우리는 지금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1강말라기 1:1-3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이 본문은 포로 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영적 타락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를 다룹니다. 백성들은 70년 동안의 고통을 겪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어려움과 풍요로움의 부재로 인해 하나님을 불평하고 조롱했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과 함께 백성들은 형식적인 예배와 헌물, 그리고 이방인과의 혼인과 같은 죄악 속에서 하나님을 멀리했습니다.

설교는 이러한 이스라엘의 태도를 에돔의 에서와 비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신앙의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선민으로 택하시고 수많은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현실에만 연연하며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이는 은혜를 경험했음에도 응답이 늦어지면 악한 속내를 드러내는 인간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의 문제 해결과 풍요를 강요하며 응답을 재촉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며 불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회개를 통해 깨끗한 심령을 회복하지 못한 채 복만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 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