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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산상수훈 4강마태복음 5:1-12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사마리아가 아람 군대에 포위되자 두 여인이 서로 자식을 잡아먹기로 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 말을 듣고 옷을 찢으며 탄식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름은 바로 이 여인들이 겪은 것 같은 처절한 영적 기근을 뜻합니다. 세상이 주는 물은 스스로 떠 먹어야만 목을 축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한번 마시면 심령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성도라면 말씀을 깨닫는 기쁨이 세상 어떤 좋은 일보다 커야 하고,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면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야 합니다. 그렇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면 배부를 것이며, 그 생명의 물을 나누어 주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땅의 기업을 축복으로 주실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8.20
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 6강

푯대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자신이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이었다고 말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그는 자랑하던 가문과 학벌과 로마 시민권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버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힘으로 삼지 않는 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뜻이고, 라합이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단 것처럼 그 은혜를 가진 사람은 삶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면서도 바울이 멈추지 않은 것은 그 믿음이 참되다는 증거입니다.

표대를 향하여란 뒤에 있는 것을 다 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성도가 빛을 비추지 않으면 스스로 바뀌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표대를 향해 달려가면, 성령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잘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8.13
온유한자
산상수훈 3강마태복음 5:1-12

온유한자

돌로 막아도 곧 바닥을 드러내는 웅덩이가 있고, 돌을 던져도 다 품으며 흔들림 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온유함은 사람 좋다는 평판을 쌓는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넓은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고난을 피하지 않고 견디는 것입니다.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은 상처도 쉽게 받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기 어렵지만, 인격이 선한 사람은 혈기를 참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기뻐하던 사울은 훗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부르심을 받아, 스데반을 닮으려 애쓴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전도 신분도 아닌,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그대로 전한 삶이 지경을 넓혔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듯,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넣지 않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인내하는 삶, 그것이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8.6
애통하는자
산상수훈 2강마태복음 5:1-12

애통하는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마르다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대답하면서도 곧장 마리아를 부르러 갔고, 입으로는 믿는다 하면서도 행동은 그대로였습니다.

산상수훈의 애통은 사람이나 물질로 채워지는 고통이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보며 아파하는 마음이고, 자신이 끝까지 믿어드리지 못한 죄를 보며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예레미야도 백성이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보며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애통하는 자에게는 위로가 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처럼, 영혼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곁으로 오셔서 안아 주시며 큰 위로와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7.30
심령이 가난한자
산상수훈 1강마태복음 5:1-12

심령이 가난한자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하실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세상의 권세와 물질, 인간의 의로 마음을 채우지 않고 비워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자신은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임을 받아들일 때, 소유욕에서 벗어나 신실한 믿음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사탄의 말을 따랐다가 모든 것을 빼앗겼고, 그 죄값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대신 치르셨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물질을 얻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을 자기 소유로 여기고 마음을 빼앗기면 청지기의 자리를 잃습니다. 받은 것에 만족하며 선한 일에 그것을 나누어 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을 맡기시고, 세상에서 받는 어떤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영원한 천국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7.16
끝까지 용서하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25강사무엘하 24:18-25

끝까지 용서하시는 하나님

다윗이 인구조사를 강행합니다. 늘 그를 말리던 요압이 이번에는 하나님께 죄짓지 말라고 다윗을 막아섭니다.

교만해진 다윗은 자기 힘을 과시하려다 사탄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요압은 옳은 말을 했지만 정작 자신은 회개하지 않고 다윗을 책망하는 데 그쳤습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세 가지 심판 중 온역을 택하고 간절히 회개했고, 요압은 자기 죄를 돌아보지 못한 채 훗날 죽임을 당했습니다.

같은 죄를 지어도 회개하는 자와 남을 판단만 하는 자의 길은 다릅니다.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값을 다 치르고 제사를 드려 용서를 받았고, 그 자리는 훗날 성전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고, 요압은 솔로몬의 칼에 죽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7.9
하나님께 감사하는 인생
사무엘하 24강사무엘하 23:1-13

하나님께 감사하는 인생

다윗은 인생의 끝에서 자신을 야곱의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를 잘하는 자라 소개합니다. 은혜가 반복되자 다윗은 그것을 당연히 여겼고, 그 틈에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인간적인 욕망과 왕의 영화가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 인생 모든 순간에 함께하신 하나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전쟁 중 다윗이 무심코 고향 우물물이 마시고 싶다고 말하자, 세 용사는 목숨을 걸고 블레셋 진영을 뚫어 그 물을 길어 왔습니다. 다윗은 그 물을 마시지 못하고 하나님께 부어드리며, 이것은 물이 아니라 부하들의 피라고 회개했습니다. 지도자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곁에 있는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다윗은 그 순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면 죄에 빠지지만, 성령이 깨닫게 하실 때 즉시 돌이키는 것이 참된 성도의 모습입니다. 자기중심으로 살면 곁에서 누군가 피 흘리는데도 시원한 물만 기다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뵐 때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7.2
두번째 자리에 세워둔 그리스도
신명기

두번째 자리에 세워둔 그리스도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도 하나님께 책망을 받습니다. 나라와 백성과 군사와 짐승의 주인이 자기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교만이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고백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두려움에 떠는 우리를 안으려 두 팔을 벌리시지만, 우리는 손에 쥔 칼을 놓지 못합니다. 그 칼을 놓는 것이 순종이고, 놓지 못해 망설이는 사이 늑대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응답을 받고 평안해지면 우리는 순식간에 겸손했던 말과 행동을 버리고 하나님을 두 번째 자리로 밀어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날카로운 칼을 먼저 주시지 않고 그 칼을 다루는 지혜를 먼저 주시는 분입니다. 헌신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을 첫 번째 자리에 모실 때, 하나님은 그 신앙을 아시고 결코 잃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6.30
하나님께 드리는 다윗의 찬양
사무엘하 23강

하나님께 드리는 다윗의 찬양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은 사방이 죽음의 물결로 둘러싸인 자리에 섭니다. 도망칠 곳이 없는 그 자리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사울의 집요한 괴롭힘을 이겨낸 것은 다윗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호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사울은 절대적인 권력을 얻은 뒤 성도의 얼굴이 아니라 정수리를 보기 시작했고, 교만해진 그 마음이 그를 폐망으로 이끌었습니다.

성전도 지위도 무너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심판은 사람의 중심을 정확히 봅니다. 다윗은 소원을 이루려고 하나님 앞에 선 것이 아니라, 그분이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조건 없이 그 앞에 섰습니다. 마지막 자리가 하나님과 함께하는 곳이 되도록, 순간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남은 삶의 몫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6.25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
사무엘하 22강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실 죄의 증거를 지금도 모으고 계십니다. 어둠 속에서 저지른 죄도 그날에는 대낮처럼 다 드러나며, 아무도 변명할 수 없습니다.

3년 기근이 든 다윗의 시대, 원인은 사울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호받던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바로 갚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셨지만, 다윗이 왕이 되자 사울의 자손 일곱을 내어주는 것으로 그 죄를 갚게 하셨고, 그제야 기근이 그쳤습니다.

성전도 왕좌도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그 백성을 해친 죄가 심판을 부릅니다.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오지만, 그 날개 아래 숨은 성도는 심판과 상관없이 평안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모양이라도 버리고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에 돌이켜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6.18
인간의 끝없는 욕심
사무엘하 21강사무엘하 20:14-22

인간의 끝없는 욕심

다윗이 압살롬과의 전쟁을 끝내고 궁으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누가 먼저 다윗을 맞았는지를 두고 다투고, 세바라는 사람이 나서서 이스라엘을 다윗에게서 등 돌리게 만듭니다. 다윗은 세바를 잡으라 명하지만, 요압은 자신을 대신할 아마사를 죽이고 다시 군대장관 자리를 차지합니다.

용서받고도 배신을 택하는 사람과, 끝까지 섬김을 택하는 사람이 함께 다윗 곁에 있습니다. 요압은 능력은 있었지만 거듭나지 못했기에 하나님과 다윗을 배신하는 죄를 쌓아갔고, 다윗은 그런 요압을 당장 쳐내지 않고 나라를 위해 쓰되 심판은 하나님의 때에 맡겼습니다. 아벨 성의 지혜로운 여인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말씀의 지혜로 많은 생명을 살렸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고 헌신해도 하나님의 뜻과 사람의 욕심을 분별하지 못하면 알곡이 아니라 쭉정이로 남습니다. 성도는 다윗처럼 인내하며 악을 선을 위해 쓰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아벨 성 여인처럼 말씀을 붙들고 사는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6.11
믿음의 사람 바르실래
사무엘하 20강사무엘하 19:4-15

믿음의 사람 바르실래

압살롬이 죽었다는 소식에 다윗은 반역한 아들이었지만 깊이 슬퍼합니다. 요압은 그런 다윗을 다그치며 부하들을 위로하라고 협박까지 합니다. 환궁 길에는 살려 달라 빌러 나온 시므이와, 노구를 이끌고 다윗을 섬긴 바르실래가 함께 나옵니다.

다윗은 요압에게 수많은 용서와 기회를 베풀었지만 요압은 돌이키지 않았고, 결국 다윗은 그를 버리고 아마사를 세웁니다. 시므이도 힘에 눌려 용서를 비는 척했을 뿐 마음은 변하지 않아 훗날 심판을 받습니다. 반면 바르실래는 다윗이 초라할 때나 권세를 되찾았을 때나 한결같이 섬겼고, 예루살렘 궁의 부귀도 사양한 채 고향에 머물기를 택했습니다.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로 갚는 사람과, 용서받고도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맺는 열매가 다릅니다. 바르실래는 선한 씨를 가져 영생의 열매를 맺었고, 시므이는 악한 씨를 가져 사망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겸손히 섬기는 삶이 결국 복 받는 믿음의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