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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열왕기하 15강열왕기하 15:1-7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16세에 왕이 된 웃시야는 하나님을 찾는 동안 형통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성을 건축하고 신식 무기까지 갖추어 나라를 부강하게 세웠습니다. 그런데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분향을 자신이 하겠다며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제사장이 만류해도 왕은 도리어 화를 냈고, 그 순간 하나님은 그의 이마에 나병을 내리셨습니다. 받은 은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그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은 한순간이 아니라, 재물과 권력과 칭찬 속에서 서서히 우선순위가 뒤바뀌며 일어나는 일입니다.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별채에 갇혀 왕의 권세도, 왕의 묘실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라보다 세상을 좋아하는 본성이 죄를 이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를 끝까지 누리게 하는 것은 그 은혜에 감사를 잃지 않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8
유리하는 별
유다서 5강유다서 10-13

유리하는 별

세상은 사랑과 관심이 식어지고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잃은 영혼은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유리하는 별처럼 떠돌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사탄이 하나님과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해 질투로 동생을 죽였고, 발람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기도를 반복했고, 고라는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처음에는 하나님을 알았지만 탐욕과 교만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이런 반역의 길을 따라가며 죄의식 없이 성도들 사이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아름다운 별이며, 무거운 짐을 지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유한한 세상을 넘어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끝까지 그리스도께 뿌리내려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2.1
겸손한 아론과 교만한 사탄의 선택
유다서 4강유다서 6-10

겸손한 아론과 교만한 사탄의 선택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명하시는데도 모세는 순종하지 못합니다. 기적을 여러 번 보고도 입이 둔하다는 이유로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형 아론이 대신 대언자로 세워집니다.

아론은 모세 못지않게 많은 기적을 직접 행하고 많은 일을 감당했지만, 모세라는 큰 인물 곁에 있었기에 그 공적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서지 않고 동생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섬겼습니다. 반면 타락한 천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위를 당연하게 여기다 그 자리를 벗어나 교만해졌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저버려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겸손이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교만입니다. 아론은 순종하고 섬겼기에 대제사장이 되어 자손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세워 주신 지위를 지키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성도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1.25
아마샤의 교만과 여로보암의 번영
열왕기하 14강열왕기하 14:3-4, 23-27

아마샤의 교만과 여로보암의 번영

남 유다 아마샤 왕은 정직한 왕으로 평가받았지만,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 승리에 도취되어 패배한 나라의 우상을 가져와 섬겼습니다.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협박했고,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반대로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지만 나라의 영토가 역사상 가장 넓어지고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 상반된 결말은 선한 사람은 잘 되고 악한 사람은 벌 받는다는 생각이 늘 맞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마샤의 몰락은 작은 성공에 취해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두었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번영은 그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긍휼 때문이었고, 그런데도 그 시대 백성은 번영을 회개의 기회로 삼지 못했습니다.

성공이 곧 하나님의 인정이 아니고, 고난이 곧 버림받음이 아닙니다. 살펴야 할 것은 처한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입니다. 작은 성공에 교만해지지 말고, 번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끊임없이 돌이키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18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열왕기하 13강열왕기하 13:14-21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2026년 새해 첫 예배입니다. 요아스 왕이 죽음을 앞둔 그 선지자를 찾아와 활을 쏘고 땅을 칩니다. 하지만 세 번만 치고 멈춰서, 그가 받을 수 있었던 승리도 세 번에 그치고 맙니다.

이 모습은 구원을 이미 손에 쥐고도 머뭇거리는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 주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시는데, 정작 우리는 스스로 정한 선에서 순종과 헌신을 멈춥니다. 그 선지자가 죽은 뒤에도 그의 뼈에 닿은 시신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사람은 끝이 나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은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감사는 완벽했던 한 해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여기까지 인도하신 사랑에 대한 감사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사랑을 이미 십자가로 확증하셨습니다. 우리의 한계와 부족함에도 그 사랑은 멈추지 않으니, 스스로 정한 기준에 머물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4
홀로 섰을 때 드러나는 신앙
열왕기하 12강열왕기하 12:1-8

홀로 섰을 때 드러나는 신앙

한 왕이 일곱 살에 왕위에 올라 성전을 수리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룹니다. 그러나 자신을 지켜 주던 대제사장이 죽자 방백들의 꾐에 넘어가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돌로 쳐 죽이는 자리까지 갔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면서도 산당은 끝내 제거하지 못했는데, 이는 순종이 절반에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그의 신앙은 대제사장의 보호와 감독에 기대어 서 있었을 뿐, 정작 홀로 서야 할 자리에서는 세상의 힘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습니다. 결국 성전의 보물을 원수에게 내주고, 병을 얻고 신하들의 반역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누군가의 믿음과 헌신에 기대어 시작한 신앙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을 스스로의 신앙으로 세우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앙을 지탱해 주던 사람과 자리가 사라져도 하나님을 붙들고 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유종의 미는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날마다의 순종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2.28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 사랑 (성탄주일)
요한일서요한일서 4:7-12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 사랑 (성탄주일)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은 "사랑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하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고,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사랑한다 하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주셨다'는 말에는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라면 자녀를 큰 영광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라도 당장 그 아이를 고난의 자리로 보내기를 주저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을 아직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고, 그 아들은 순종하여 자기를 버려 생명을 내어 놓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이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실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은 자로 그친다면 거기 머무는 것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성탄절은 이 사랑을 깨달아 형제를 사랑하고 세상에 나가 실천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2.21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 성도
유다서 3강유다서 5-8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 성도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해방된 뒤에도 조금만 힘들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정탐꾼 열 명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가나안 앞에서 주저앉았고, 고라 자손은 모세의 자리를 넘보다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자리입니다.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어려움이 오면 그 모든 것을 잊고 인간적인 판단으로 돌아섰습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이미 그 땅을 주셨다는 말씀을 붙들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안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말씀을 기억하고 삶으로 살아내야 하며, 은혜를 잊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2.14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라
유다서 2강유다서 3-4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라

유다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 밝히며, 성도들에게도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고 권합니다. 은혜를 맛보고도 타락한 자는 다시 회개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가만히 교회로 들어와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성도가 실족하는 것은 사탄이 강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유혹을 받아들인 결과이므로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시지만, 그 은혜를 받은 마음이 옥토가 되어 열매를 맺을 수도, 욕심과 정욕으로 가시와 엉겅퀴가 무성한 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전하는 말은 물 없는 샘과 같아서 처음엔 그럴듯해 보여도 갈증만 더할 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채워주지 못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며, 그 싸움의 상대는 게으른 자기 자신일 수도, 사탄일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한 번 실패해도 물러서지 않고 방심한 틈을 파고들기 때문에, 회개한 심령일수록 말씀 안에서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옳은 행실로 죄를 이기는 것이 재림 주를 기다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2.7
꺼지지 않는 등불
열왕기하 11강열왕기하 11:1-8

꺼지지 않는 등불

악한 왕비 아달랴가 다윗의 자손들을 모두 죽이려 하지만, 여호세바가 갓난아기 요아스를 빼돌려 성전 골방에서 육 년을 숨겨 키웁니다. 그 육 년 동안 대제사장 여호야다는 조용히 때를 준비했고, 마침내 요아스는 왕관을 쓰고 유다의 왕이 됩니다.

무너진 것처럼 보인 것은 다윗 왕조지 하나님의 언약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사밧이 아합의 딸을 며느리로 들이며 자신은 흔들리지 않으리라 장담했지만, 그 판단이 아들과 손자를 우상숭배로 이끌었고 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죄와 배신이 언약을 끊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모르는 자리에서 한 생명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과신해서는 안 됩니다. 죄는 처음부터 작정하고 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타협하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실수해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며, 다윗과 맺으신 언약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됩니다. 그 약속을 붙들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남겨진 몫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1.30
예수그리스도의 종
유다서 1강유다서 1-2

예수그리스도의 종

예수님의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가 능력을 보이라고 재촉합니다. 그들은 초막절 명절에 사람 많은 곳에서 유명해지길 바랐지만, 예수님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아로서 표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유다는 그 형제들 중 하나였고,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을 직접 본 뒤에야 형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형제조차 처음엔 믿지 못했다는 것은, 복음을 전한다고 사람이 곧바로 믿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뛰어가 전했고, 사람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왔지만 결국 자기 귀로 듣고 스스로 믿었습니다. 복음을 전한 사람이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밝히며 편지를 씁니다. 성도는 세상과 섞이지 않고 흰옷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며, 전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리스도까지 조롱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영접하셨으니, 그 사랑에 합당하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1.23
회개 위에 세우는 감사 (추수감사예배)
레위기레위기 23:39-44

회개 위에 세우는 감사 (추수감사예배)

추수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은 초막을 짓고 그 안에 머무릅니다. 그런데 이 감사의 절기 바로 앞에는 금식하며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속죄일이 놓여 있습니다.

수확의 기쁨보다 먼저 요구된 것은 정결한 심령입니다. 다윗은 승리한 뒤에도 늘 자신을 살펴 회개했고, 베드로는 그물이 찢어지도록 고기를 잡은 순간 감사 대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엎드렸습니다. 은혜를 담을 그릇이 더러우면 그 은혜를 온전히 받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죄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고, 감사는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 은혜를 다시 채우는 것입니다. 대속죄일 없이 초막절이 없듯, 참된 감사는 언제나 회개 위에 세워질 때 그 깊이가 더해집니다. 회개의 자리에서 다윗은 승리를, 베드로는 새로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