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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열왕기하 21강열왕기하 20:16-21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물리친 뒤, 죽을 병에서도 고침을 받아 생명을 15년 연장받고 나라도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신들이 찾아왔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증거할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재물을 자랑하듯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그에게 왕궁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교만은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축복을 받은 직후,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이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히스기야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세대만 평안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넘어갔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회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심이었습니다.

축복의 자리는 신앙의 끝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생명을 연장받았지만 그 시간에 므낫세, 곧 남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을 낳았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이 진짜 복이며, 겸손히 그 은혜를 붙들 때에만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3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1강마가복음 1:1-8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는 베드로가 순교하는 것을 보며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가 남긴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섬기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하며,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 가운데도 회개할 것이 없다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은 구약의 모든 율법과 제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물세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로 그분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도 말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면 성령이 충만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두려워 도망친 사람이 있었다는 사건을 기록해 두었는데, 성경은 그 사람이 마가라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후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믿음이 자랐고, 베드로와 바울이 떠난 자리를 채우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이 자라는 데는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니, 연약한 형제를 사랑으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4.26
하나님의 열심
열왕기하 20강열왕기하 19:29-37

하나님의 열심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이미 막대한 조공을 받고도 다시 협박 편지를 보냅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금까지 벗겨 바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그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섭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붙들고 있는 동안은 전선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리로 돌아섰을 때, 비로소 그 전선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복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구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쳤고,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자기 아들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구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흐르는 통로를 연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니,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4.19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열왕기하 19강열왕기하 18:1-8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아하스가 더럽힌 성전과 혼합신앙 위에서 히스기야가 왕이 됩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가장 먼저 성전을 정결케 하고, 백성들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산당을 헐고, 사람들이 섬기던 모세의 놋뱀마저 부수어 느후스단이라 불렀습니다.

산당은 하나님을 버린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다른 것과 함께 둔 자리였습니다. 놋뱀은 본래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 실체이신 하나님 대신 그것 자체를 섬기게 되면서 우상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도 마음속에서 하나님보다 앞서면 부수어야 할 놋뱀이 됩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 기준에서 정직한가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명령을 지켰고, 그 결과 앗수르 앞에서도 담대히 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4.12 (추정)
주일의 의미 (부활절)
요한복음

주일의 의미 (부활절)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쭙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으로 답하시며, 죄 사함을 구하라는 말씀은 도덕적 잘못을 뉘우치라는 뜻을 넘어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는 열매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이 단절을 회복하셨고, 죽으실 때 성소 휘장이 찢어져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 곧 주일마다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평강하라" 하십니다.

주일은 습관적으로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대일로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찬양과 말씀에 마음을 다해 집중할 때 상한 심령이 치유되고 엿새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평강과 자유를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4.5
죽어야만 사는 나라[2026년 종려주일]
요한복음요한복음 12:23-33

죽어야만 사는 나라[2026년 종려주일]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겉옷을 깔며 환호하지만, 그 길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러 찾아오자, 예수님은 만나겠다는 대답 대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은 성공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 열방이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으로서 괴로움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도망가지 않고 순종을 다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야만 사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이는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문제를 만났을 때 짜증과 한숨 대신 하나님께 먼저 구하는 작은 반응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29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18강열왕기하 17:1-6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떠오르자 호세아 왕은 조공을 끊고 애굽과 손을 잡습니다. 애굽은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고, 앗수르는 삼 년을 포위한 끝에 사마리아를 함락시켜 북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지역으로 흩어 버립니다.

멸망의 원인은 정치적 오판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한 마음이었습니다. 금송아지로 시작된 작은 틀어짐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길이 되었고, 마음이 굳어지며 진노와 심판으로 이어지는 불신의 악순환을 만들었습니다. 이 악순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중심에 세울 때에만 끊어집니다.

멸망은 하나님의 포기가 아니라 회복을 향한 과정이었습니다. 흩어져 살던 자리에서 태어난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은 몸소 찾아가 만나 주셨고, 끝까지 그들을 향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육을 입고 있는 한, 하나님 앞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22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복을 받은 성도
유다서 8강유다서 24-25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복을 받은 성도

요셉은 형들의 질투로 노예가 되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해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서 만난 술 관원장을 통해 바로 왕 앞에 서게 되고, 꿈을 해몽한 뒤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이 겪은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요셉은 불평하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판 형들에게 오히려 근심하지 말라며 위로했습니다. 이런 순종과 자기희생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

세상을 향한 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고난처럼 보여도,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은 보호와 복을 예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흠 없이 설 수 있게 된 성도는 사막에서 물 한 방울을 아끼듯 그 은혜를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3.15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열왕기하 17강열왕기하 16:10-16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유다는 크게 패합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인신제사까지 드리며 우상숭배에 빠진 왕이었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말씀을 거절하고, 도리어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몰렉 숭배의 인신제사는 겉으로는 극단적 헌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번영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마저 내어놓는 철저한 자기중심성입니다. 아하스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한 말도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피하고 자기가 정한 길을 고수하려는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침략자들이 패망할 것을 미리 알려 주셨지만, 아하스는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세상의 힘에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 하나님이 잠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며, 그 끝은 심판과 멸망입니다. 반면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자에게는 어떤 세상의 힘도 함부로 손대지 못합니다. 노아, 모세, 욥,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이름처럼, 하나님 앞에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한 이름으로 서는 것이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8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
유다서 7강유다서 17-23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

교회에서 거짓교사들은 겉으로 진리를 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사탄의 종이었습니다. 두 하인이 물을 길을 때 한 사람은 작은 물동이로 게으름을 피우고 한 사람은 큰 물동이로 힘써 채웠는데, 주인은 지켜보지 않아도 항아리에 찬 물로 그 차이를 압니다.

성령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본성을 이기는 자와 본성대로 사는 자의 차이입니다. 구원의 조건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만 그 다음은 선한 양심과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며, 하나님은 그 삶 전체를 보고 판단하십니다.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으시므로 한 가지 악한 선택도 이미 선한 법에서 돌아선 것입니다.

의심하는 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며 품어야 합니다. 자신의 외식하는 신앙이 있다면 결단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죄를 버려야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3.1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열왕기하 16강열왕기하 15:32-38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북 이스라엘이 30년 사이 왕조가 네 번 바뀌며 무너져 가던 그 시절, 남 유다의 요담은 성전 문을 고치고 성벽을 보강하며 조용히 나라를 지켰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단 몇 절만 남겼고, 백성은 여전히 산당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담 개인은 하나님 앞에 정직했지만 백성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바른 길을 걸었기에, 뒤이은 악한 왕의 시대에도 유다는 북 이스라엘처럼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았고, 다윗 언약과 신앙의 맥은 히스기야와 요시야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바울의 그늘에 있던 디모데도 기적이나 부흥 없이 소심하고 몸이 약했지만, 그의 순종을 통해 바울의 신앙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세상은 영웅과 1등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시대를 여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며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사람도 귀하게 보십니다. 눈에 띄는 업적이 없어도, 묵묵히 정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삶을 하나님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22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에녹
유다서 6강유다서 14-16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에녹

유다는 거짓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며 성도들을 속이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미 그리스도의 재림과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심판을 예언했음을 상기시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했고,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들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져야 그가 전한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 승천과 재림도 믿어집니다. 에녹의 믿음은 아담에게서 므두셀라와 노아에게로 이어져, 노아가 홍수 심판 앞에서 즉시 순종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저지른 모든 말과 행동은 남김없이 기록되어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세워집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듯,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심판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결하고 정직한 믿음으로 담대히 그 날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