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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열왕기하 1강열왕기하 1:13-17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을 얻었습니다. 그는 병이 낫겠는지 묻기 위해 이방 신 바알세붑에게 사람을 보냈고, 엘리야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을 듣고도 회개하는 대신 오십부장과 군사 오십 명을 세 차례에 걸쳐 엘리야에게 보내 그를 잡아오려 했습니다.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길 원했던 아하시야에게는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보다 우상에게 묻는 것이 더 쉬운 길이었습니다. 앞선 두 오십부장과 그 군사들은 하늘에서 내린 불에 죽었지만, 세 번째 오십부장은 겸손히 무릎 꿇고 생명을 구하였고 그와 군사들은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중간이 없습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린 아하시야는 엘리야가 전한 말씀대로 죽었고, 겸손히 긍휼을 구한 오십부장은 생명을 얻었습니다. 생명의 주권자는 세상의 그 무엇도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7.6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열왕기상 28강열왕기상 22:41-50

선한 왕 여호사밧의 실수와 회복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미가야 선지자에게까지 진실을 물었던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합 왕이 죽을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도 아합 대신 왕의 옷을 입고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이 일로 그는 죽을 위기에 처했고, 선견자로부터 악한 자를 도왔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믿음이 좋다고 세상의 어려움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 뒤 악한 아합과 사돈을 맺은 것은, 자신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영적 교만이었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신뢰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 넘어지는 자리입니다.

훗날 모압과 암몬이 유다를 치러 왔을 때 여호사밧은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부르짖었고, 찬양대를 군대 앞에 세워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싸우셔서 대적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산당을 철거하지 않았고 아합의 아들과도 다시 교제하여, 그 연약함이 그대로 자녀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자기 자신을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6.22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열왕기상 27강열왕기상 22:14-25

아합의 죽음으로 성취된 미가야의 예언

아합이 여호사밧과 함께 아람과의 전쟁을 앞두고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사백 명의 선지자가 승리를 예언하지만, 미가야만은 왕이 전쟁에서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아합은 이전에 심판의 경고를 듣고 잠시 겸비했다가 곧 그 은혜를 잊고 완악해졌습니다. 미가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면서도 목숨을 위해 말을 절충하지 않았고, 아합은 변장을 하고 전쟁터로 나가는 것으로 순종이 아닌 절충을 택했습니다.

결국 아합은 화살에 맞아 죽고 미가야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을 경고하시는 것은 돌이킬 기회를 주시는 사랑이며, 모세의 중보와 레위 지파의 헌신이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듯, 심판의 말씀은 폐하여지고 축복의 말씀은 성취되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6.8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열왕기상 26강열왕기상 21:25-29

나봇의 죽음과 아합의 회개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이 탐나 값을 치르려 했지만 나봇은 조상의 유업을 팔 수 없다며 거절합니다. 아합이 자리에 누워 곡기를 끊자 아내 이세벨이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아합은 그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아합의 욕심이 죄의 시작이지만, 곁에서 그 욕심을 부추긴 이세벨 없이는 그 죄가 이렇게까지 나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죄는 혼자 역사하지 않고 사람의 욕심과 주변의 부추김이 만나 결실을 맺습니다. 심판의 말씀을 들은 아합이 옷을 찢고 금식하며 겸비하자 하나님은 그 재앙을 다음 세대로 미루십니다.

그러나 아합은 나봇의 명예를 회복시키거나 포도원을 돌려주는 등,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죄는 자녀의 세대까지 이어졌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심판은 그대로 임했습니다. 잘못을 깨달은 즉시 온전히 돌이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5.11
스스로 결정한 결과
열왕기상 25강열왕기상 20:35-42

스스로 결정한 결과

벤하닷이 군사를 이끌고 사마리아를 에워쌉니다. 아합은 처음엔 그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려 했지만, 요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갈수록 무리해집니다. 하나님은 초라한 이스라엘 군대에게 두 번이나 큰 승리를 안겨 주시지만, 아합은 승리 뒤에 곧바로 벤하닷과 화친하며 자기 마음대로 결정합니다.

악한 자의 요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작은 타협의 틈으로 들어온 죄는 자라나 결국 마음의 중심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은 아합의 순종이 아니라 스스로 교만과 대적하셔서 이스라엘을 살리셨고, 그 은혜 앞에서도 아합은 회개 없이 근심만 하다 궁으로 돌아갑니다.

선지자는 변장하고 나아가 아합 스스로 "네가 결정하였으니 그대로 당하리라"는 말을 하게 만들고, 그 말 그대로 심판을 선고합니다. 구원받을 조건이 하나도 없던 우리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택하셨듯, 아합에게도 끝까지 돌이킬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그 기회는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주어지며, 그 자리에서 근심만 하지 말고 돌이켜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4.27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마가복음마가복음 11:1-10

무엇을 위한 호산나인가 (종려주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시는 예수님 앞에 사람들이 겉옷을 벗어 길에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칩니다. 이 말은 찬양구가 아니라 "제발 구원해주세요"라는 간청입니다. 그러나 불과 닷새 뒤 그 같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는 무리로 돌변합니다.

그들이 바란 구원은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세상의 힘이었지만, 예수님이 주고자 하신 구원은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의 회복이었습니다. 에덴에서 인간이 불순종으로 쫓겨난 그 순간부터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고, 예수님은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스스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자신들의 기대와 예수님의 행보가 어긋나자 곧바로 돌아선 그 무리의 모습은, 하나님의 역사가 내 기대와 다를 때 얼마든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의 성공과 형통을 구원보다 더 붙들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입니다. 감사와 삶이 따로 놀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공로 위에 슬그머니 내 공로를 끼워 넣지 않도록 날마다 시선을 자신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이미 받은 구원은 우리의 헌신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이며, 그 은혜 안에서 다시 오실 예수님과 함께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를 기쁨으로 살아내면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4.13
하나님의 위로
열왕기상 24강열왕기상 19:11-18

하나님의 위로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내려 850명의 우상 선지자를 물리친 엘리야는 이세벨의 협박 한마디에 무너져 로뎀 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떡과 물을 주시며 어루만지십니다.

큰 믿음을 가진 사람도 세상의 힘이 두려워 주저앉는 순간이 옵니다. 하나님을 놓치는 순간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초라함과 상대의 크기였습니다. 하나님은 크고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 가운데 계셨고, 사람이 바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기적이 아니라 낮은 자리에서 만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낙심한 엘리야를 끝까지 붙드시고 새로운 사명과 함께,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남아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 노아를 기다려 주셨듯, 지치고 두려운 이들의 손목을 끝까지 붙잡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그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걸음을 떼기를 전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3.23
최후의 승리자
열왕기상 23강열왕기상 18:36-40

최후의 승리자

아합은 온 나라가 겪는 가뭄을 엘리야 탓으로 돌리며 그를 잡으러 다니지만,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가뭄을 부른 것은 아합 자신의 우상숭배였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둘 다 섬기려 하고, 엘리야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바알은 물질적 풍요와 개인의 영달을 약속하는 신이지만, 생육과 번성과 충만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복입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은 중용이 아니라, 두 주인을 함께 섬기려는 불신앙입니다.

엘리야가 물 부은 제단 위에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누구도 의심할 수 없도록,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온 천하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사랑의 순서를 바로잡을 때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3.9
사르밧 과부의 순종과 믿음
열왕기상 22강열왕기상 17:15-24

사르밧 과부의 순종과 믿음

엘리야는 가뭄을 선포한 뒤 그릿 시냇가로 숨었지만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은 그를 시돈 땅 사르밧의 한 과부에게로 보내십니다. 그 여인은 마지막 남은 가루 한 움큼과 기름으로 아들과 함께 한 끼를 먹고 죽으려던 참이었는데, 엘리야의 청에 순종하여 먼저 떡을 만들어 드립니다.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으로 살 소망이 생긴 여인에게, 얼마 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는 재앙이 닥칩니다. 여인은 이것이 자신의 죄 때문이라며 엘리야를 원망했지만,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누리는 풍요에 만족하는 신앙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게 하시려는 섭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세상 것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에는 희망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을 원하십니다.

엘리야의 부르짖음에 아들이 다시 살아난 뒤에야 여인은 비로소 엘리야가 참 선지자임을,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연약하고 볼품없던 이방 여인을 택하여 이런 믿음에 이르게 하신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우리도 택하여 세우고자 하십니다. 사람과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때 참된 믿음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2.16
악한 왕의 탄생
열왕기상 21강열왕기상 16:29-34

악한 왕의 탄생

북이스라엘 왕들이 잇달아 무너집니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집을 멸했지만 똑같은 길을 따라가다 아들 대에서 왕조가 끊겼고, 시므리는 칠 일 만에, 오므리를 거쳐 마침내 아합이 등장합니다. 아합은 이방 신 바알을 섬기며 이전 어느 왕보다 하나님을 노하게 만들었습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신 그대로, 여호수아가 오래전 선포한 저주의 말씀도 여리고 성을 다시 쌓은 사람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이든 저주든 한 글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어두운 역사 한가운데, 선지자 하나니와 그 아들 예후는 대를 이어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세상은 갈수록 어두워지고 악해집니다. 그러나 그 흐름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믿음을 지키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 그것이 성도가 서야 할 자리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2.9
성도들이 만나는 죄의 문제
열왕기상 20강열왕기상 15:16-24

성도들이 만나는 죄의 문제

아사왕은 우상숭배를 척결하고 구스의 백만 대군을 물리친 남유다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노년에는 북이스라엘 침략 앞에서 하나님이 아닌 아람 왕에게 재물을 바쳐 도움을 청했고, 발에 병이 들었을 때도 하나님이 아닌 의원들을 의지했습니다.

성경은 그런 아사를 여전히 "그 마음이 일평생 온전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인간적인 두려움에서 나온 연약함의 죄와,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작은 죄를 반복하다 마음이 굳어져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자리까지 갔지만,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어도 두려움에서 나온 연약함이었기에 회개하고 회복되어 순교의 자리까지 나아갔습니다.

죄에는 돌이킬 기회가 있는 죄와, 하나님을 부정하는 패륜과 같아 회복될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가 작다고 여겨 가벼이 여기면 그 마음이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이끕니다. 은혜를 두려움으로 누리며 죄가 드러난 즉시 철저히 돌이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2.2
진정한 개혁
열왕기상 19강열왕기상 15:9-15

진정한 개혁

아사가 왕이 되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남긴 우상과 산당과 아세라상을 없애고, 유다 백성에게 오직 여호와만 섬기라 명령합니다. 구스 사람이 백만 대군으로 쳐들어왔을 때도 아사는 절반도 안 되는 군사를 이끌고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치셨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아사는 안주하지 않고 다시 언약을 갱신하며 우상을 태웠습니다. 그런데 할머니인 태후 마아가마저 아세라 목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아사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 해도 우상숭배를 간과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폐위시켰습니다.

진정한 개혁은 남의 죄가 아니라 내 곁의, 내 안의 죄부터 도려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정말 위한다면 그 관계를 끊는 결단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먼저 내 믿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사랑하는 영혼도 건질 힘이 생깁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