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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영원한 속죄와 은혜의 자리
열왕기상 9강열왕기상 8:1-11

영원한 속죄와 은혜의 자리

솔로몬은 성전에 들일 기물을 모두 새로 만들었지만, 언약궤만은 성막에서 쓰던 것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궤를 지성소 그룹의 날개 아래로 메어 들였고, 운반용 채는 빼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채를 빼지 않은 것은 채를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지 말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궤 안에는 만나 항아리나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없이 두 돌판만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의 관심이 오직 언약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과거부터 한결같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을 변함없이 지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기적도, 성도가 말씀대로 살아내지 못하면 헛될 뿐입니다. 언약궤가 마침내 성전 지성소에 안치되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 가득 찼고, 제사장들은 능히 서서 섬기지 못했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그 언약을 믿고 따르는 것만이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8.4
출애굽 사건, 역사인가 신화인가?

출애굽 사건, 역사인가 신화인가?

모세가 백성에게 이집트에서 나온 그날을 기념하라고 명합니다. 성경은 이 일을 하나님의 권능이 이룬 사건이라고 분명히 기록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이를 신화나 문학적 상상으로 취급하려 합니다.

학자들이 근거로 삼는 것은 라암셋 성 건축 기록입니다. 그래서 라암셋 2세 시대를 출애굽 시기로 못 박아 놓고, 그 시대에 맞는 증거가 없다고 성경을 신화로 몰아갑니다. 그런데 실제 고고학 증거들 — 이방인 정착촌, 요셉의 무덤으로 보이는 유적, 노예 명단에 남은 샘족 이름들, 급하게 버려진 도시와 매장 흔적, 이집트 현자의 기록, 이스라엘 석비 — 은 모두 라암셋 시대보다 앞선 중왕국 시대를 가리킵니다. 시대를 잘못 짚어 놓고 증거가 없다고 말해온 것입니다.

증거들을 시대에 맞게 놓고 보면 성경의 기록과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출애굽을 역사가 아니라 비유와 교훈으로만 받아들이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을 뿐, 성경의 역사적 근거를 없애면 그 위에 세워진 신학적 진리도 함께 무너집니다. 출애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에서부터 계획된 역사적 사실이며,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기초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7.27
홍해의 기적과 진짜 시내산의 위치

홍해의 기적과 진짜 시내산의 위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 걸어간 길은 열하루 거리였지만, 그 흔적을 40년 동안 돌아다녔습니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홍해와 시내산의 위치는 성경 본문과 여러 군데 어긋납니다. 수에즈만은 얕고 좁아 급히 떠난 백성이 건넜다고 보기 어렵고, 시나이 반도의 산은 로마 교황청이 6세기에 추정으로 지정한 곳일 뿐입니다.

성경은 얌수프를 크고 깊고 넓은 물, 좌우로 벽처럼 선 물이라 기록합니다. 아카바만의 누에이바 앞바다는 그 폭과 수심, 완만한 경사, 발견된 병거 바퀴의 흔적까지 그 기록과 맞아떨어집니다. 그 건너편에 있는 라오즈산 역시 불에 그을린 정상, 열두 지파의 돌기둥, 아론이 세운 금송아지 제단의 흔적, 흐르는 시내와 동굴까지 시내산에 있어야 할 것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3500년 전의 일이라 무엇 하나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흔적들은 하나님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일하신 증거이지, 종이 위의 비유가 아닙니다. 다만 예수님이 도마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신 것처럼, 결국 믿음은 증거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야 얻어지는 것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7.27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
열왕기상 8강

하나님의 역사와 사람의 역사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뒤이어 왕궁을 지었습니다. 왕궁이 성전보다 두 배나 크고 짓는 데 두 배나 걸렸지만, 성경은 그 왕궁 이야기를 성전 건축 기사 사이에 단 열두 절로만 끼워 넣었습니다.

규모나 기간으로 보면 왕궁이 더 큰 사건이지만, 성경이 붙잡은 중심은 왕궁이 아니라 성전입니다. 성전 기구를 만든 이는 유대인 어머니와 두로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 없이 자란 히람이었는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그런 그를 성전 건축의 총책임자로 세우셨습니다. 성전 입구에 세운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도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세워졌다는 뜻을 담고 있고, 놋바다와 물두멍은 정결하게 씻은 뒤에야 금으로 채워진 성소로 들어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전도 궁전도 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라고 주신 도구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중심이 궁전이 아니라 성전이어야 했듯이, 우리 인생의 중심도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둘 때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세우시고 채우시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6.30
성취하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7강

성취하시는 하나님

솔로몬은 왕이 된 지 4년 만에 성전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을 두고, 출애굽한 지 480년째 되는 해라는 사실을 함께 밝힙니다. 광야를 떠돌던 성막이 이제 한곳에 자리 잡은 성전이 되기까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약속이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나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막이든 성전이든 그 건물 자체가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만나 주시겠다고 정하신 자리일 뿐, 사람이 정성을 쏟는다고 그 안에 하나님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하신 말씀도 같습니다. 건물이 아니라 법도를 지키는 순종이 중요하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결코 배반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한 번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성막에서 성전으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고 성도인 우리 자신으로 이어지는 것도 같은 임재의 약속입니다. 지금 곤고하고 연약해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것, 그것이 끝까지 빛나는 믿음의 길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6.16
서로를 위함 섬김의 예배

서로를 위함 섬김의 예배

산에 나뭇잎이 돋는 것을 본 지 두 달, 어느새 나무와 꽃이 무성하게 피었습니다. 그 계절 가운데 성도들이 함께 모여 야외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하나는 하나님께 절하며 드리는 경배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를 향한 섬김과 봉사입니다.

구약의 화목제와 신약의 주의 만찬에는 이 두 가지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만이 아니라 성도끼리 나누는 식사와 교제가 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는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나오는 것만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아가는 삶 전체를 뜻합니다.

성도는 자기 명예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기에 자기 뜻을 내려놓고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십자가로 이미 받은 구원이 삶에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오늘 함께 모인 이 자리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5.19
준비하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6강열왕기상 5:1-8

준비하시는 하나님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두로 왕 히람이 사절을 보내 축하합니다. 솔로몬은 답례로 성전 건축을 위해 백향목과 기술자를 보내 달라고 청하고, 히람은 크게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흔쾌히 돕습니다.

다윗은 전쟁으로 피를 많이 흘린 왕이라 성전 건축이 그의 사명이 아니었습니다. 나라에 태평을 허락받은 솔로몬이 그 사명을 이어받았고, 그는 히람에게 이 성전 건축이 아버지의 뜻이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성취임을 밝힙니다. 재물도, 사람도, 이방 왕과의 우호도, 모두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 두신 것이었습니다.

성전 건축의 공로를 따져 보아도 솔로몬이 실제로 한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그 귀한 사명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우리도 내세울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로 불러 마지막 때 진리의 등불을 들고 살아갈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5.5
솔로몬의 번영
열왕기상 5강열왕기상 4:20-25

솔로몬의 번영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하게 온 이스라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스린 왕입니다. 열두 지방 관장을 세우고 왕궁 살림을 감당하게 했는데, 백성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아졌고, 유프라테스 강까지 영토가 넓어졌으며, 백성들은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평화를 누렸습니다.

이 풍요는 솔로몬이 잘나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과 기브온에서 하신 약속을 그대로 이루신 결과입니다. 그런데 그 지혜로운 솔로몬조차 유다 지파만 세금에서 빼는 정책으로 다른 지파, 특히 에브라임의 불만을 키웠고, 말과 병거를 많이 둠으로 왕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넓은 마음도 하나님의 뜻대로 쓰이지 않으면 타락의 빌미가 됩니다.

솔로몬 시대의 균열은 훗날 나라가 갈라지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처음 믿음 그대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겸손히 순종했다면 그 결과는 달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힘이 아니라 자신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찾으시며, 오늘도 겸손히 순종하는 한 걸음을 떼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4.14
지혜를 구한 솔로몬
열왕기상 4강열왕기상 3:4-10

지혜를 구한 솔로몬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천 마리 제물로 번제를 드립니다. 그날 밤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원하는 것을 구하라 하시고, 솔로몬은 장수도 부귀도 아닌 선악을 분별하는 듣는 마음을 구합니다.

이 듣는 마음은 원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훗날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두고 다툴 때, 솔로몬은 아기를 둘로 나누라는 판결로 생명을 지키려는 진짜 어미의 마음을 드러내고 아기를 살립니다. 그 판결을 본 백성은 왕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지혜를 구했다고 저절로 지혜로운 판단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구한 것을 말씀대로 살아낼 때 그 안에서 지혜가 드러납니다. 교회와 성도가 말씀을 붙들고 그대로 살아갈 때, 그 자리에서 생명을 살리는 권위가 회복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3.17
기회를 놓친 사람들
열왕기상 3강열왕기상 2:31-38

기회를 놓친 사람들

다윗의 명령으로 아도니야가 죽고 아비아달이 쫓겨난 뒤, 요압은 여호와의 장막 제단 뿔을 붙잡습니다. 그러나 아도니야와 달리 즉시 죽임을 당합니다. 시므이는 다윗을 저주했지만 살아남았고, 솔로몬은 그를 죽이는 대신 예루살렘 안에서만 살라고 명령합니다.

요압은 40년 넘게 다윗을 충성으로 섬겼지만,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저항할 힘이 없던 아브넬과 압살롬과 아마사를 고의로 죽였습니다. 고의 살인은 제단으로도 피할 수 없기에 그의 죽음은 그 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시므이는 다윗 덕분에, 또 솔로몬 덕분에 두 번이나 생명을 유지하는 기회를 얻었지만,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맹세를 소홀히 여겨 결국 예루살렘을 벗어났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악인이 죄를 지은 즉시 벌 받지 않는 것은 그가 살아가며 돌이킬 기회를 얻고 있다는 뜻입니다. 요압과 시므이는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하고 자기 욕심과 안일함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잘한 일에 자랑할 것이 없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그저 하나님의 은혜로 한 번 더 얻은 선한 선택의 기회일 뿐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2.4
어리석은 자들의 최후
열왕기상 2강열왕기상 2:1-9

어리석은 자들의 최후

다윗은 죽음을 앞두고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깁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라는 축복을 전하고, 이어 자신에게 악행을 저지른 자들을 지혜로 다스리라고 명합니다.

아도니야는 왕위 찬탈이라는 큰 죄를 짓고도 용서를 받았지만, 그 은혜에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감사가 사라진 자리에는 억울함이 들어섰고, 결국 아버지의 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구하는 어리석은 욕심을 부리다 처형당했습니다. 아비아달은 다윗이 어려울 때 목숨을 걸고 충성했던 제사장이었지만, 다윗이 늙자 자신의 앞날이 불안해져 아도니야 편에 서고 말았습니다.

받은 은혜를 쉽게 잊고 욕심을 채우려 한 아도니야, 평생 지켜온 믿음을 마지막 순간에 무너뜨린 아비아달, 둘 다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근신하며 깨어 있어,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자족하는 것이 지혜롭고 진실한 성도의 삶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14
스스로 높아진 자와 세움을 받은 자
열왕기상 1강열왕기상 1:24-30

스스로 높아진 자와 세움을 받은 자

다윗 왕이 늙어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사이, 넷째 아들 아도니야는 스스로 왕이 되겠다 나서서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을 갖춥니다. 그는 장자권과 준수한 외모, 요압과 아비아달의 지지까지 얻었지만, 유독 솔로몬만은 자신의 잔치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될 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장자권과 외모였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의 중심이지 외모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려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는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 택함받고 사랑받은 자였습니다. 결국 선지자 나단과 밧세바가 나서서 다윗 앞에 고하자, 상황은 한순간에 뒤집혀 솔로몬이 왕좌에 앉고 아도니야는 제단 뿔을 붙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스스로 높아지려던 아도니야와 달리, 솔로몬은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냈을 뿐인데 하나님이 그를 세우셨습니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결과를 좇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보다, 지금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작은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아도 그 마음을 감찰하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합당한 자리로 들어 쓰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