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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열왕기하 21강열왕기하 20:16-21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물리친 뒤, 죽을 병에서도 고침을 받아 생명을 15년 연장받고 나라도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신들이 찾아왔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증거할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재물을 자랑하듯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그에게 왕궁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교만은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축복을 받은 직후,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이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히스기야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세대만 평안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넘어갔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회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심이었습니다.

축복의 자리는 신앙의 끝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생명을 연장받았지만 그 시간에 므낫세, 곧 남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을 낳았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이 진짜 복이며, 겸손히 그 은혜를 붙들 때에만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3
하나님의 열심
열왕기하 20강열왕기하 19:29-37

하나님의 열심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이미 막대한 조공을 받고도 다시 협박 편지를 보냅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금까지 벗겨 바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그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섭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붙들고 있는 동안은 전선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리로 돌아섰을 때, 비로소 그 전선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복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구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쳤고,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자기 아들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구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흐르는 통로를 연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니,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4.19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열왕기하 19강열왕기하 18:1-8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아하스가 더럽힌 성전과 혼합신앙 위에서 히스기야가 왕이 됩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가장 먼저 성전을 정결케 하고, 백성들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산당을 헐고, 사람들이 섬기던 모세의 놋뱀마저 부수어 느후스단이라 불렀습니다.

산당은 하나님을 버린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다른 것과 함께 둔 자리였습니다. 놋뱀은 본래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 실체이신 하나님 대신 그것 자체를 섬기게 되면서 우상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도 마음속에서 하나님보다 앞서면 부수어야 할 놋뱀이 됩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 기준에서 정직한가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명령을 지켰고, 그 결과 앗수르 앞에서도 담대히 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4.12 (추정)
죽어야만 사는 나라[2026년 종려주일]
요한복음요한복음 12:23-33

죽어야만 사는 나라[2026년 종려주일]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겉옷을 깔며 환호하지만, 그 길의 끝은 십자가입니다. 헬라인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러 찾아오자, 예수님은 만나겠다는 대답 대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광은 성공이 아니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 열방이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죽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인간으로서 괴로움과 두려움이 있었지만, 도망가지 않고 순종을 다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야만 사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이는 거창한 결단이 아니라 문제를 만났을 때 짜증과 한숨 대신 하나님께 먼저 구하는 작은 반응에서 시작됩니다. 그렇게 자신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사는 자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29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18강열왕기하 17:1-6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떠오르자 호세아 왕은 조공을 끊고 애굽과 손을 잡습니다. 애굽은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고, 앗수르는 삼 년을 포위한 끝에 사마리아를 함락시켜 북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지역으로 흩어 버립니다.

멸망의 원인은 정치적 오판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한 마음이었습니다. 금송아지로 시작된 작은 틀어짐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길이 되었고, 마음이 굳어지며 진노와 심판으로 이어지는 불신의 악순환을 만들었습니다. 이 악순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중심에 세울 때에만 끊어집니다.

멸망은 하나님의 포기가 아니라 회복을 향한 과정이었습니다. 흩어져 살던 자리에서 태어난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은 몸소 찾아가 만나 주셨고, 끝까지 그들을 향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육을 입고 있는 한, 하나님 앞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22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열왕기하 17강열왕기하 16:10-16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유다는 크게 패합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인신제사까지 드리며 우상숭배에 빠진 왕이었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말씀을 거절하고, 도리어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몰렉 숭배의 인신제사는 겉으로는 극단적 헌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번영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마저 내어놓는 철저한 자기중심성입니다. 아하스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한 말도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피하고 자기가 정한 길을 고수하려는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침략자들이 패망할 것을 미리 알려 주셨지만, 아하스는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세상의 힘에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 하나님이 잠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며, 그 끝은 심판과 멸망입니다. 반면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자에게는 어떤 세상의 힘도 함부로 손대지 못합니다. 노아, 모세, 욥,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이름처럼, 하나님 앞에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한 이름으로 서는 것이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8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열왕기하 16강열왕기하 15:32-38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북 이스라엘이 30년 사이 왕조가 네 번 바뀌며 무너져 가던 그 시절, 남 유다의 요담은 성전 문을 고치고 성벽을 보강하며 조용히 나라를 지켰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단 몇 절만 남겼고, 백성은 여전히 산당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담 개인은 하나님 앞에 정직했지만 백성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바른 길을 걸었기에, 뒤이은 악한 왕의 시대에도 유다는 북 이스라엘처럼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았고, 다윗 언약과 신앙의 맥은 히스기야와 요시야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바울의 그늘에 있던 디모데도 기적이나 부흥 없이 소심하고 몸이 약했지만, 그의 순종을 통해 바울의 신앙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세상은 영웅과 1등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시대를 여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며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사람도 귀하게 보십니다. 눈에 띄는 업적이 없어도, 묵묵히 정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삶을 하나님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22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열왕기하 15강열왕기하 15:1-7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16세에 왕이 된 웃시야는 하나님을 찾는 동안 형통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성을 건축하고 신식 무기까지 갖추어 나라를 부강하게 세웠습니다. 그런데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분향을 자신이 하겠다며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제사장이 만류해도 왕은 도리어 화를 냈고, 그 순간 하나님은 그의 이마에 나병을 내리셨습니다. 받은 은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그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은 한순간이 아니라, 재물과 권력과 칭찬 속에서 서서히 우선순위가 뒤바뀌며 일어나는 일입니다.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별채에 갇혀 왕의 권세도, 왕의 묘실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라보다 세상을 좋아하는 본성이 죄를 이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를 끝까지 누리게 하는 것은 그 은혜에 감사를 잃지 않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8
아마샤의 교만과 여로보암의 번영
열왕기하 14강열왕기하 14:3-4, 23-27

아마샤의 교만과 여로보암의 번영

남 유다 아마샤 왕은 정직한 왕으로 평가받았지만, 에돔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그 승리에 도취되어 패배한 나라의 우상을 가져와 섬겼습니다.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협박했고,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반대로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 2세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이었지만 나라의 영토가 역사상 가장 넓어지고 번영을 누렸습니다.

이 상반된 결말은 선한 사람은 잘 되고 악한 사람은 벌 받는다는 생각이 늘 맞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마샤의 몰락은 작은 성공에 취해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을 두었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번영은 그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고통받는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의 일방적인 긍휼 때문이었고, 그런데도 그 시대 백성은 번영을 회개의 기회로 삼지 못했습니다.

성공이 곧 하나님의 인정이 아니고, 고난이 곧 버림받음이 아닙니다. 살펴야 할 것은 처한 형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입니다. 작은 성공에 교만해지지 말고, 번영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 겸손히 서서 끊임없이 돌이키는 삶이 필요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18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열왕기하 13강열왕기하 13:14-21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2026년 새해 첫 예배입니다. 요아스 왕이 죽음을 앞둔 그 선지자를 찾아와 활을 쏘고 땅을 칩니다. 하지만 세 번만 치고 멈춰서, 그가 받을 수 있었던 승리도 세 번에 그치고 맙니다.

이 모습은 구원을 이미 손에 쥐고도 머뭇거리는 우리와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부어 주실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시는데, 정작 우리는 스스로 정한 선에서 순종과 헌신을 멈춥니다. 그 선지자가 죽은 뒤에도 그의 뼈에 닿은 시신이 다시 살아나는 사건은, 사람은 끝이 나도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은 끝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감사는 완벽했던 한 해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여기까지 인도하신 사랑에 대한 감사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신 사랑을 이미 십자가로 확증하셨습니다. 우리의 한계와 부족함에도 그 사랑은 멈추지 않으니, 스스로 정한 기준에 머물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려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4
홀로 섰을 때 드러나는 신앙
열왕기하 12강열왕기하 12:1-8

홀로 섰을 때 드러나는 신앙

한 왕이 일곱 살에 왕위에 올라 성전을 수리하는 위대한 업적을 이룹니다. 그러나 자신을 지켜 주던 대제사장이 죽자 방백들의 꾐에 넘어가 우상을 섬기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돌로 쳐 죽이는 자리까지 갔습니다.

성전을 수리하면서도 산당은 끝내 제거하지 못했는데, 이는 순종이 절반에 머물렀다는 뜻입니다. 그의 신앙은 대제사장의 보호와 감독에 기대어 서 있었을 뿐, 정작 홀로 서야 할 자리에서는 세상의 힘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했습니다. 결국 성전의 보물을 원수에게 내주고, 병을 얻고 신하들의 반역으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누군가의 믿음과 헌신에 기대어 시작한 신앙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것을 스스로의 신앙으로 세우지 못하면 무너질 수 있습니다. 신앙을 지탱해 주던 사람과 자리가 사라져도 하나님을 붙들고 설 준비가 되어 있는지 돌아볼 일입니다. 유종의 미는 한 번의 결단이 아니라 날마다의 순종이 쌓여 만들어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2.28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 사랑 (성탄주일)
요한일서요한일서 4:7-12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진 사랑 (성탄주일)

사람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은 "사랑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입으로만 하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고, 오래 참고 온유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 참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사랑한다 하지 않으시고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실제로 이루셨습니다.

'주셨다'는 말에는 희생이 담겨 있습니다. 부모라면 자녀를 큰 영광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라도 당장 그 아이를 고난의 자리로 보내기를 주저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을 아직 죄인 된 우리를 위해 내어 주셨고, 그 아들은 순종하여 자기를 버려 생명을 내어 놓기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은 감정이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실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 사랑을 받은 자로 그친다면 거기 머무는 것이고,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그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성탄절은 이 사랑을 깨달아 형제를 사랑하고 세상에 나가 실천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