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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선택의 결과
열왕기상 18강열왕기상 14:21-31

선택의 결과

르호보암은 다윗과 솔로몬이 이룬 강하고 안정된 나라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견고해지자 교만해져 여호와의 율법을 버렸고, 온 백성이 그를 따라 우상숭배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즉위 5년 만에 애굽왕 시삭의 침략을 받아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빼앗겼습니다.

같은 좌를 가지고도 하나님 앞에 겸비하며 회개했던 르호보암과 백성들은 완전한 멸망은 면했지만, 시삭의 종이 되는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세상을 섬기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배워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끝내 굳게 하지 않았기에, 그는 악한 왕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다윗 성에 장사되었는데, 이는 다윗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이 자손들의 연약함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신실하게 지켜졌음을 보여줍니다.

할아버지 다윗과 아버지 솔로몬, 초기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도움, 시삭의 침략과 선지자 스마야의 책망까지, 르호보암에게는 하나님께 돌아설 기회가 거듭 주어졌습니다. 악한 길로 간 것은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회를 얻고도 믿음의 길을 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주어진 기회 앞에서 마음을 오로지 하여 하나님을 구하는 선택이 남아 있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19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신년감사예배)
에베소서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신년감사예배)

2025년 첫 예배를 앞두고, 지난 한 해를 잘 보냈든 그렇지 못했든 새로운 한 해가 다시 주어졌습니다. 이 교회 역시 22년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지금 모습으로 자라왔고, 그 어떤 일도 그냥 일어난 일은 없었습니다.

같은 시간을 지나도 성도마다 자란 정도가 다릅니다. 문제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무릎 꿇은 사람은 믿음이 자랐고,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며 불평한 사람은 그만큼 자라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눈앞에 둔 옥중에서, 부르심을 받은 대로 합당하게 행하라고 여러 교회에 편지를 남겼습니다. 합당함이란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겸손과 온유와 오래참음으로 서로 용납하는 것이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분노 앞에서도 끝까지 그 백성을 위해 중보했던 모습이 그 온유의 실례로 제시되었습니다.

각 사람에게 허락하신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자라 서로 협력할 때, 교회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집니다. 화가 나고 억울한 순간에도 한 번만 참아보는 훈련이 그 시작이며, 그 한 번이 쌓여 세상의 어떤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을 만들어 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5.1.5
겸손의 왕 (성탄감사예배)
빌립보서

겸손의 왕 (성탄감사예배)

아기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마구간, 말구유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 태어나셨습니다. 첫사람 아담의 죄로 어둠에 갇힌 인간을 건지시려고, 죄 없는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셔야 했습니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기에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품으실 수 있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이제 빛의 자녀가 되어 각자 받은 그 생명의 빛을 등경 위에 두어야 하지만, 사람이 가진 빛은 자기 주위만 비출 수 있기에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힘의 논리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것은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의 로마도, 지금 이 세상도 다르지 않지만, 다니엘이 전한 신상의 꿈처럼 그 모든 나라는 무너지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영원히 설 것입니다.

성탄절은 그 죄 사함과 생명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리에서 가족과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고, 어두워지는 세상 가운데 생명의 빛을 높이 드는 성숙한 성도로 자라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2.22
고난과 축복의 경계
열왕기상 17강열왕기상 14:7-16

고난과 축복의 경계

여로보암의 아들 아비야가 병들었습니다. 아버지의 완악함에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선했던 아들이었지만, 그 병은 아버지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를 찾아가게 했지만, 아이는 예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자녀의 죽을 병은 세상 눈에는 불행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여로보암에게 주신 마지막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아비야에게는, 가문 전체가 멸망당할 심판이 임하기 전에 그 생명을 먼저 거두어 가신 은혜였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야말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강권적 역사입니다.

고난과 축복을 가르는 기준은 세상과 하나님이 서로 다릅니다. 여로보암은 끝내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지 못한 채 기회를 놓쳤지만, 아비야는 짧은 육의 고통 뒤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지금 당하는 고난을 원망하기보다, 그 안에서 하나님께서 열어 두신 기회를 볼 줄 아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2.15
순탄할 때 만나는 유혹
열왕기상 16강열왕기상 13:15-24

순탄할 때 만나는 유혹

유다에서 온 한 선지자가 벧엘에 이르러 왕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단이 갈라지고 왕의 손이 마르는 심판이 그 자리에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선지자는 왕의 식사 초대도 단호히 거절한 채 명령받은 대로 다른 길로 돌아섭니다.

그러나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거짓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그를 다시 불러 세우자, 조금 전까지 왕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그가 너무 쉽게 넘어갑니다. 큰 일을 마친 뒤의 안도감과, 같은 선지자라는 사람의 권위에 자기 생각으로 말씀을 희석시킨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쉽게 무너지는 순간은 두려운 자리가 아니라, 일을 잘 해냈다고 여기는 그 순탄한 자리입니다.

결국 그는 돌아가던 길에 사자에게 목숨을 잃습니다. 그가 전한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졌지만, 정작 그 자신은 끝까지 순종하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지식이나 연륜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살아내는지로 신앙이 판가름 나며, 어떤 유혹과 고난 앞에서도 가던 길을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2.1
추수할 때가 이르러 [추수감사주일]
마태복음마태복음 9:35-38

추수할 때가 이르러 [추수감사주일]

예수님은 태어나실 곳도 없이 오셨고, 십자가에서 가장 처참한 형벌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며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이 예언한 대로 초림이 성취되었기에,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재림도 반드시 일어납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지금, 추수감사절에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지보다 먼저 우리 심령이 옥토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감사헌금이나 봉사, 열심을 냈다는 뿌듯함만으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가 아닐 수 있습니다.

밭의 곡식은 이미 희어져 추수할 때가 지났는데 일꾼이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못한 채 그 위에 헌신을 쌓기 때문에 참된 일꾼이 부족한 것입니다. 지금 즉시 자신을 버리고 부르심에 응답하여, 마지막 때 하나님이 찾으시는 믿음의 열매를 드려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1.17
분열된 나라의 두 왕
열왕기상 15강열왕기상 12:15-20

분열된 나라의 두 왕

암몬 왕 나하스가 죽자, 다윗은 그에게 받은 호의를 갚으려 아들 하눈에게 조문단을 보냅니다. 하눈은 신하들의 말에 흔들려 사절단을 모욕하고, 두려움에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다 큰 희생을 치릅니다.

훗날 솔로몬이 죽고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을 때도, 백성들이 과도한 세금과 노역을 덜어 달라 요청하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르호보암은 늙은 신하의 충언을 버리고 젊은 신하의 말을 따라 백성을 더 가혹하게 다스리겠다 선언했고, 그 결과 나라가 둘로 갈라집니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에게 주신 왕위도, 다윗과 같은 약속을 받았음에도 그는 백성의 마음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쏠릴 것이 두려워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숭배의 길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신 말씀은 반드시 그 자리에 있어야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돌이키면 피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르호보암도 여로보암도 두려움과 자격지심으로 그 기회를 놓쳤고, 여로보암의 나라는 24년 만에 무너졌습니다. 의심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이, 다윗처럼 기억되는 길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1.3
하나님의 택하심을 위하여
열왕기상 14강열왕기상 11:9-13

하나님의 택하심을 위하여

솔로몬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얻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는 지혜를 받아 나라를 번성시켰지만, 왕이 지켜야 할 규례들 — 이방인을 왕위에 세우지 말 것, 말을 많이 두지 말 것,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 재물을 쌓지 말 것 — 을 하나씩 어겨 갔습니다.

이방 여인들과의 혼인은 결국 그의 마음을 돌려 예루살렘 성전 앞에 산당을 짓고 온 백성을 우상숭배로 이끌게 했습니다. 이것은 무지에서 나온 실수가 아니라 진리를 알고도 저지른 배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를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으시고, 나라를 다 빼앗지 않으신 채 다윗을 위해 한 지파를 남겨 두셨습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돌이켰습니다. 그 남겨진 한 지파를 통해 다윗의 자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사람의 신앙이 흔들려도 하나님의 언약은 끝까지 신실하게 이루어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0.20
영광 가운데 드리워진 그림자
열왕기상 13강열왕기상 10:4-10

영광 가운데 드리워진 그림자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명성을 소문으로만 듣고 먼 길을 찾아옵니다. 직접 만나 보니 소문이 오히려 과소평가된 것이었고, 그녀는 크게 감동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많은 예물을 드립니다.

솔로몬의 명성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에도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이방인에게 넘기고, 진멸하라 하신 족속을 노예로 삼아 일을 시키며, 이방과의 교역으로 우상숭배 문화를 끌어들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영광 뒤에 이미 순종하지 않는 균열이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완악한 마음을 당장 막지 않으시고 그대로 두실 때가 있습니다. 돌이키기를 기다리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성공과 번영에 취해 하나님을 놓치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받은 은혜를 삶의 방향을 돌이키는 자리로 삼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0.6
심판을 말씀하시는 사랑
열왕기상 12강열왕기상 9:1-9

심판을 말씀하시는 사랑

성전과 왕궁을 모두 지은 솔로몬 앞에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셔서 기도를 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축복만이 아니라, 아버지 다윗처럼 마음을 온전히 하고 법도를 지키라는 당부였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성전도 이스라엘도 쫓겨나고 파괴될 것이라는 경고가 함께 주어집니다.

솔로몬은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 기도하면서도, 정작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언약궤 곁에 둔 자신의 죄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축복과 저주가 함께 놓인 법칙이어서, 순종하면 복이 대를 이어 임하고 불순종하면 심판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결국 그 기도는 응답되었고, 훗날 나라는 갈라지고 성전은 파괴되어 이스라엘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심판의 경고는 사람을 두렵게 하려는 말씀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빨리 돌이키라는 사랑의 말씀입니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위험한 순간이며, 그때 교만이 감사를 덮습니다. 그러므로 넘어질까 조심하며, 남을 위해 기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깨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9.8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
열왕기상 11강열왕기상 8:27-30, 56-61

함께 지어져 가는 성전

솔로몬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모신 뒤,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한 것을 보며 백성을 위해 중보하고 축복합니다. 그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로도 하나님을 다 담을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하나님이 성전을 향해 눈을 두시고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간구합니다.

성전이 귀한 이유는 건물 자체가 아니라, 그곳이 하나님의 자비와 백성의 기도가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 하나님 앞에 행하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신다는 고백은, 아브라함이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드렸던 순종과 같은 무게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의 죄와 회개, 이방인의 기도까지 모두 품는 솔로몬의 중보는, 하나님이 한 민족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주인이심을 보여줍니다.

이제 참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가 곧 성전입니다. 하나님이 내미시는 은혜의 손을 날마다 마주 잡을 때, 우리는 그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함께 모일 때뿐 아니라 흩어진 삶의 자리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지어져 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8.25
하나님이 계시는 곳
열왕기상 10강열왕기상 8:12-21

하나님이 계시는 곳

성전을 봉헌하는 자리에서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빛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시내산에서도, 지성소에서도 흑암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이 흑암은 악함이 아니라,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심을 가리킵니다. 아무리 큰 빛을 비추어도 무한한 공간을 다 밝힐 수 없듯이,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오히려 자신의 무지함이 더 커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성전에 이름을 두시고, 낮은 자리에 스스로를 가두시며 함께하기를 택하셨습니다.

성전은 사람이 하나님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의 자리였고, 그 임재는 언약에 대한 순종에 달려 있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언약을 저버리자 성전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알수록 모름의 경계도 함께 커진다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커질수록 그 앞에서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