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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예수, 그 이름의 능력
사도행전 4강

예수, 그 이름의 능력

우리는 삶의 필요를 하나님께 구하지만, 응답을 받더라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고 새로운 문제가 찾아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현실적인 필요를 외면하지 않으시지만, 우리가 당장 원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의 근원을 보시고 해결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 중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만나 은금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선포합니다. 이 기적은 사도들의 능력을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가진 구원의 권위를 드러내고 사람들의 시선을 그분께로 돌리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원하는 것을 얻는 요청 리스트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사람으로 빚어가시길 구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능력을 넘어, 우리를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구원의 능력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0.25
복음 공동체의 탄생
사도행전 3강

복음 공동체의 탄생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완전히 돌이키는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구원을 얻기 위한 대가가 아니라, 주시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입니다. 이를 통해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단순히 개인적으로 변화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도의 가르침을 배우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는 공동체로 세워집니다. 그들의 신앙은 지식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소유와 시간을 나누는 실제적인 사랑과 섬김으로 드러납니다.

이러한 공동체는 주께서 구원하는 사람들을 날마다 더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교회를 세우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주시는 은혜를 의지하며 말씀을 배우고 서로 사랑하며 이웃을 섬기는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로 자라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0.18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
사도행전 2강

약속하신 성령의 임재

120명의 성도들이 오순절날 한자리에 모여 기도할 때,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 위에 임했습니다. 이는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오래전부터 약속하셨던 성령의 성취였습니다.

성령의 임재는 돌판에 새겨진 율법이 사람의 마음속에 기록되는 새로운 언약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성전이라는 특정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각 신자의 몸 안에 거하시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동일한 복음을 듣게 되며, 바벨탑 사건이 가져온 단절이 치유되고 하나가 됩니다.

세상은 이 기이한 현상을 취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베드로는 이것이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와 그리스도가 되신 증거라고 선포했습니다. 성령은 특별한 능력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며 예수님을 증거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당연시하지 않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0.11
증인의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교회
사도행전 1강

증인의 사명을 위해 준비하는 교회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물리적 나라 회복을 묻는 질문에 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성령이 임하여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 증인이 되리라 약속하십니다.

교회의 사명은 인간의 능력이나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일이며, 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준비된 자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후보를 선정하고 기도한 후 제비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교회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성령의 능력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10.4
심겨진 자는 열매를 맺습니다

심겨진 자는 열매를 맺습니다

물줄기 교회가 세워진 지 23년이 지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떠났지만 새로운 영혼들이 채워지며 교회는 여전히 서 있습니다. 이는 교회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야 받아주실 것이라 착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가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은혜를 받은 자로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나무가 심겨진 목적은 오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나이나 연약함이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 심긴 자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합니다.

우리의 열매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며 사랑과 용서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앞으로의 세월은 교회가 무엇을 이루었느냐가 아니라, 심겨진 말씀이 삶 속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느냐의 시간이어야 합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복음이 맺히는 교회가 되어 하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9.6
무너져야 할 것과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
열왕기하 26강

무너져야 할 것과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왕은 도망치다 붙잡힙니다.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본 뒤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성전은 불타고 기구는 모두 옮겨졌습니다.

이 심판은 바벨론이 강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전이 있으니 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붙들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성전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교회도 직분도 신앙의 연륜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왕이 훗날 풀려나 왕의 식탁에 앉았고,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남았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8.16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열왕기하 25강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요시야 왕이 죽은 뒤 남유다는 23년 만에 무너집니다. 그 사이 왕이 네 번 바뀌고, 나라는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계속 흔들립니다. 왕과 백성은 어느 쪽에 붙어야 살아남을지만 계산합니다.

애굽 편에 섰다가, 바벨론 편에 섰다가 다시 애굽으로 돌아서며 왕들은 매번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입니다. 형편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녔을 뿐,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돌이키라고 외쳐도 왕은 듣지 않았고, 평화를 말하는 다른 목소리들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지키고, 그를 돕는 사람들을 곳곳에 남겨 두셨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말씀을 붙든 사람들은 남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묻습니다. 애굽인지 바벨론인지가 아니라, 너는 내 편에 서 있느냐고.

이지현 목사님 · 2026.8.9
요시야의 비극적 죽음과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24강열왕기하 23:25-30

요시야의 비극적 죽음과 하나님의 섭리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이 되어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개혁을 이끕니다. 성전을 수리하다 발견한 언약책 앞에 옷을 찢고, 온 나라의 우상과 산당을 무너뜨리고, 백성과 함께 유월절을 지킵니다. 그런 그가 애굽 왕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화살에 맞아 허무하게 죽습니다.

인과응보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안다'는 말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깊이 연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요시야를 그렇게 아셨고, 그가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리라 하신 약속은 고통 없는 죽음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이른 죽음은 뒤이어 유다를 덮칠 바벨론의 참혹한 멸망과 포로살이로부터 그를 건져낸 자비로운 격리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요셉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렇듯,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뒤흔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7.12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골로새서 3:12-17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새로 세워지는 안수집사님과 권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은 계급이나 명예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에 섬길 사람을 부르시는 사명입니다.

부족함을 느껴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건강한 마음입니다. 모세도 자신이 부족하다며 부르심을 거절했지만,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끝까지 붙드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직분자가 먼저 입어야 할 것은 직함이 아니라 긍휼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그리고 그 위에 사랑입니다.

교회는 직분이 아니라 성품과 사랑으로 세워집니다. 스데반은 집사로 세워졌기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죽으면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했기에 위대했고, 빌립은 훗날 집사보다 전도자로 기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능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충성이며, 그날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6.28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열왕기하 23강열왕기하 22:16-20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성전 수리 중 율법책이 발견되고, 그 말씀이 읽히는 순간 요시야는 옷을 찢으며 통곡합니다. 그는 조상 탓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켰으며, 이미 심판을 알고도 사람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다시 물었습니다.

말씀이 발견된 것은 그만큼 성전 안에서 말씀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전이 있다는 확신만 붙들고 있었을 뿐,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말씀은 없었습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이 찔리고 불편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심령이 반응하는 증거입니다.

여선지자 훌다는 유다 전체를 향한 심판은 거두어지지 않았지만, 요시야 한 사람의 눈물은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찾으십니다. 가정과 교회와 나라 가운데 그렇게 마음을 찢는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그곳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6.14
야외예배
베드로후서

야외예배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란 야외 예배 자리에서, 믿음도 자란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믿음 위에 덕을, 덕 위에 지식을, 절제와 인내를 쌓아 결국 사랑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숙한 믿음은 봉사의 양이나 신앙의 연차로 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얼마나 닮아가는지로 재는 것입니다. 급하고 다혈질이었던 베드로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초대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셨습니다. 나무가 비바람과 눈 속의 시간을 지나 단단해지듯, 믿음도 고난과 기다림 속에서 자랍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정직하며 사람을 배려하는 작은 삶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믿음은 혼자 자라지 않고 서로 붙들어주는 공동체 안에서 자라며, 그 자람의 끝은 결국 사랑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큰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오늘 전한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31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열왕기하 22강열왕기하 21:10-17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오십오 년을 다스렸습니다. 그 시대 남유다는 앗수르에 충성하며 번영을 누렸고,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평안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상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삶이 편안하고 풍요로우니 백성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된 것, 그것이 가장 악한 상태였습니다. 오늘날도 기술과 성공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사람을 세뇌하는 것은 같은 미혹입니다.

므낫세는 앗수르에 사로잡혀 쇠사슬에 묶여 끌려간 뒤에야 크게 겸손하여 하나님께 무릎 꿇었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예루살렘 왕좌로 돌려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누가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순종했느냐입니다. 마지막 때를 이길 힘은 죽도록 충성하는 순종뿐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