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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3강로마서 1:8-17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전염병이 관계와 삶을 흔들고, 예배당에 마음껏 나올 수 없는 시절이 이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정말 그리스도와 복음이 절실한 사람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 이미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오래 교회를 다니며 안다고 여기는 순간 마음이 굳어지고 은혜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세상 사람보다 오히려 그 사람 자신이 먼저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바울처럼,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 믿음이 자라 삶으로 드러나는 것도 다 구원의 과정입니다. 사람과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인내하는 신앙을 붙들라고 전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8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로마서 2강로마서 1:1-7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 소개합니다. 노예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로마 사회에서, 도망칠 곳도 자기 인생도 없는 그 처지를 스스로 택한 말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613가지 법을 지킬수록 오히려 죄가 쌓일 뿐이며, 황소와 염소의 피로도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율법은 가드레일처럼 이 길을 벗어나면 죽는다는 경고일 뿐, 그 경고를 듣고 안전한 길인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택정함을 입은 성도의 이름은 창세 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그 사람이 필요해서 부르신 것이니, 지금 자유의지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어떤 유혹에도 그리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이며 순종이며 구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1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로마서 1]
로마서사도행전 9:1-9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로마서 1]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강한 빛에 싸여 땅에 엎드립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네가 박해하는 그 예수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순간 사울이 지켜 온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유대인의 신분도, 로마 시민권도, 율법의 지식도 더 이상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이단이라 믿고 박해하던 그가, 그 예수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세상의 특혜를 버리고 복음을 위해 쓴 삶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두려워할 때 바나바가 그를 세워 주었고, 그렇게 세워진 사람이 훗날 목숨을 다해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거저 받은 은혜를 목숨으로 갚은 삶이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7.18
심판 자 되신 그리스도
요한복음

심판 자 되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사후에 심판대에 서는 줄 알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느냐 아니냐로 구원과 심판은 지금 이 세상에서 이미 갈라져 있습니다.

형식적인 예배와 착한 행실을 쌓아야 구원과 상급을 받는다는 생각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이미 다 이루셨고, 밥상을 다 차려놓으셨습니다. 그 진주를 귀하게 여기고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밟아버리느냐는 각 사람의 선택일 뿐입니다.

심판은 성부 하나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맡으셨기에, 믿는 성도는 사망도 사탄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십자가와 놋뱀을 바라보듯 그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다만 구원 이후에는 하나님을 더 의지하는 자로 자신을 성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7.11
누구의 종입니까
마태복음

누구의 종입니까

예수님은 종교적 의무에 매인 사람들에게 "의식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와 외식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시키지 못합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정직하게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그대로 외우라고 주신 말이 아니라 기도의 형식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대속 사건이 성취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야훼라는 이름 자체에 "손을 보라, 못을 보라"는 뜻이 담겨 있고, 십자가 명패의 네 단어 첫 글자를 모으면 그 이름이 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그다음 일용할 양식과 죄 사함을 구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돈을 쫓으면 망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쫓으면 오히려 그것이 따라옵니다. 세상의 종이 될지 그리스도의 종이 될지는 날마다 선택해야 할 문제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7.4
하나님의 절기 초막절
성막설교 10강

하나님의 절기 초막절

추수와 관련된 절기를 지나 마지막 절기 초막절이 이어집니다. 백성들은 광야 사십 년 동안 옷도 신발도 해지지 않게 지켜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초막을 짓고, 한 해 농사를 마친 기쁨으로 곡식과 과일을 저장하며 이레 동안 먹고 즐거워합니다.

씨를 뿌리고 거두는 모든 과정은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날씨를 주관하셔야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초막절에 드리는 황소 일흔 마리는 이방 민족까지 구원의 대상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 절기가 다 끝난 뒤에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했는데, 예수님은 그 전에 이미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형식에 매여 자기가 알던 메시아상만 붙들고 정작 눈앞의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육신의 장막은 무너져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다는 것이 이 절기가 가리키는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손을 들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송축하는 것으로 이 말씀은 맺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5.30
하나님의 절기 대속죄일
성막설교 9강

하나님의 절기 대속죄일

대속죄일이 다가오면 열흘 동안 참회의 기도를 드리고, 그날은 온 백성이 금식하며 오직 하나님만 생각합니다. 대제사장은 자신과 가족의 죄부터 고백한 뒤, 두 마리 염소를 제비 뽑아 하나는 제물로 잡고 하나는 광야로 내보냅니다. 절차 하나만 어긋나도 제사 전체가 무효가 될 만큼, 이 하루에 온 백성의 죄 사함이 걸려 있습니다.

염소는 백성의 죄를 짊어지고 광야 절벽으로 끌려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죄가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 잠시 유보된 것입니다. 그래서 해마다 같은 제사를 되풀이해야 했고, 바로 그 자리를 메우러 예수 그리스도가 단번의 십자가로 오셨습니다.

성전도, 제사장의 예복도, 절차도 사람이 거룩해서가 아니라 말씀대로 지켰기에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을 해도 스스로 거룩해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단번에 깨끗해집니다. 그 사실을 믿고 날마다 손발을 씻듯 회개하며 사는 것이, 이 절기가 전하는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5.23
여호와의 절기 나팔절
성막설교

여호와의 절기 나팔절

나팔절은 유대력 7월 1일, 이스라엘의 설날입니다. 이 날 순양의 뿔 나팔을 불어 절기의 시작을 알리고, 백성은 일을 멈추고 하루 종일 성회를 갖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날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 믿고 준비하지만,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여깁니다.

나팔절은 인류 역사의 처음과 끝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팔 소리와 함께 재림하실 때 모든 사람은 양과 염소로, 오른편과 왼편으로 갈라집니다. 그날 심판주가 되실지 구속주가 되실지는 지금 어떻게 사는가에 달려 있고, 그날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사실만으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심 없는 예배와 헌금을 받지 않으시며, 원하시는 것은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 아는 것, 그것이 영생이며 구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5.16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막설교 7강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예수님이 안나스 상점에서 상을 엎으십니다. 순례객들이 정성껏 키운 짐승은 흠 있다며 퇴짜 놓고, 자기들이 파는 것만 통과시켜 돈을 착취한 자리였습니다.

성막의 각 방과 절기는 다 그리스도의 그림자입니다. 번제단의 불은 꺼지면 안 되는데,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드리다 그 옷을 입은 채로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도 세상 습관을 버리지 않고, 정한 규례를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성전도, 직분도, 사람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휘장을 찢으셔서, 우리는 이제 그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일한 것 없이 그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와 기도에 한치의 오차도 없기를 바랍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5.9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막설교 6강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헤롯 성전 솔로몬 행각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문 앞 걸인을 만납니다. 걸인이 구걸을 멈추지 않자 베드로가 그를 주목해 보게 하고, 금과 은은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합니다. 그가 일어나 걷고 뛰며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베드로는 이 일을 자기 권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라고 그 자리에서 선포합니다. 죽는 자리에서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가 부활을 목격한 뒤에야 그 말씀이 자기 것이 되었고,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성전 안 여인의 뜰에서는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헌금함 앞에서는 은밀한 중에 구제하라 가르치십니다.

성전의 모든 자리는 결국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나팔을 부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대일로 서는 신앙이 참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에 우리가 살고, 그 말씀을 먹어야 영생에 이른다는 것이 오늘 전해진 결론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5.2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막설교 5강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헤롯이 지은 성전은 화려했지만,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면서 완전히 무너지고 불탑니다. 그 성전이 불탄 날은 훗날 로마가 무너진 날과 같은 날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세운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웠지만 실제로는 자기 인정을 받으려는 욕심으로 쌓아 올린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전은 80년에 걸쳐 지어졌어도 결국 죽은 건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성전을 두고 무너뜨리면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자신의 몸이야말로 참 성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건물로 지은 성전은 무너지지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살아가는 우리가 곧 하나님이 계신 성막입니다. 스스로 부족하다고만 여기며 낙심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 역사를 하나님이 이미 알고 이끄신다는 것을 믿고 두려움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4.25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막설교 4강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아담을 지은 흙이 모리아산에서 났다는 이야기부터, 가인과 아벨의 제단, 노아의 제사,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자리까지 모두 이 산 하나로 이어집니다. 다윗이 타작마당을 사서 그 자리를 준비했고, 아들 솔로몬이 그 위에 성전을 세웠습니다.

이삭이 장작을 지고 산에 오른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로 오르셨고, 순양이 이삭을 대신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성전은 화려함이나 규모로 가치가 매겨지지 않습니다. 솔로몬 성전도, 훨씬 크게 지은 헤롯의 성전도, 결국 하나님과 바른 만남이 이루어질 때에만 의미가 있습니다.

법궤를 옮기다 우사가 죽은 사건은 회개 없이 인간의 생각대로 밀어붙인 결과였고, 다윗이 성전을 짓지 못한 것은 그가 흘린 피 때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의 믿음이 있었기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성전은 결국 사람 자신이며, 어떤 일을 당해도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찾아 회개할 때 무너지지 않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