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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그리스도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15강

그리스도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그 자리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죄는 그 한 사람의 죄로 끝나지 않고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어, 죽음을 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다만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알려주는 담장일 뿐이고, 그 담장 안에 머무는 것은 썩은 동아줄을 붙드는 것과 같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와 사망을 왕 노릇 하게 했다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사망의 구덩이에서 사람을 건져내어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은혜는 크고 작은 죄를 가리지 않고 다 덮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열린 문 앞에서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들어서는 것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1.28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14강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낯선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인디언의 습격과 전염병으로 형제들을 절반 넘게 잃고도, 첫 수확을 얻자 자신들을 공격했던 인디언들을 불러 함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연단은 다이아몬드가 깎이는 과정과 같습니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던 것이 깎이고 다듬어져야 빛을 내듯, 환란과 인내를 통과해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을 얻은 사람은 세상의 환란보다 그 은혜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겪은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미국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환란을 감사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소망을 품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아픔보다 크기 때문에, 연단을 만나도 소망을 가지고 주의 법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1.21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로마서 13강로마서 4:13-25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00킬로 제한이 없는 도로에서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율법은 그렇게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지켜서 의롭게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율법보다 사백삼십 년 앞서 있었고, 후에 생긴 율법이 그 언약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었지만, 그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자 조급한 마음에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고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실수를 거치며 그는 생명을 주실 분이 오직 하나님뿐임을 배웠고, 백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 앞에서 인간적인 아픔과 순종 사이의 갈등을 지나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 하신 것은 행위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면 아브라함의 믿음도, 이방인의 구원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의로 여겨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못자국 난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만 집중할 때,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길이 분명해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1.7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로마서 12강로마서 4:1-12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천사가 찾아와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뭇별처럼 많아질 것이라 약속합니다. 자식이 없던 그로서는 의아했을 법한 말씀이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자손의 번성만이 아닙니다. 그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까지 믿었기에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나 이삭을 바친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 믿음이 그를 의롭다 하신 근거였습니다. 일해서 받는 삯은 은혜가 아니라 보수이듯, 구원은 경건하지 않은 자를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가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경건하지도 않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로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마음은 교만이며, 참된 믿음은 노력 없이도 감사와 순종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삶이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0.31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로마서 11강로마서 3:19-31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자신을 건져줄 배는 없습니다. 권력도 재산도 선한 행실도,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는 그들의 입을 막아 버릴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사이, 구조선은 이미 사고 현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것이고, 그 깨달음 뒤에야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만세전부터 예비된 하나님의 의로, 구약부터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온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구원하십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기도와 헌금과 헌신을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것조차, 사망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의인이라 칭함받은 그 은혜를 기억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0.24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10강로마서 3:9-18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사도바울은 은혜를 맛보고도 세상 쾌락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의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들,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거룩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죄가 복수로 쓰일 때는 사람이 짓는 여러 악행을 뜻하지만, 단수로 쓰일 때는 사탄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뜻합니다. 아담이 죄인이 된 이후 모든 사람은 사탄을 아비로 두고 태어났고,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죄는 처음에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지만 반복될수록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을 만나고 다른 사람의 회복을 바랐던 것처럼, 어둠 속을 헤매는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0.3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로마서 9강로마서 3:1-8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형식만 남은 신앙으로 이방인을 가르치는 것을 혹독하게 책망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이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낸다며, 그렇다면 왜 책망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는 사실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을 뿐, 참된 믿음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아버지의 선함이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거짓과 불신실함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조금도 흔들지 못합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계획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했어도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고, 같은 유대인 바울을 세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으며, 회개는 핑계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만 가능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9.26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로마서 8강로마서 2:17-29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바로에게 갈 때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여쭤 봅니다. 40년 왕자, 40년 목동으로 훈련받은 그는 정작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이방인을 맹인이라 조롱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가르치며 도둑질하고, 간음하지 말라 가르치며 간음하고, 신전 물건을 훔치기까지 했습니다. 할례를 구원의 증표로 여겼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할례는 무할례와 같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먼저 자신에게 그 말씀대로 사는지 물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뿐이고, 참된 할례는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입니다. 받은 은혜가 클수록 언행이 일치해야,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9.19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니
로마서 7강로마서 2:11[설립18주년 예배]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니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예배 드릴 장소를 두고 다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도 그리심산도 아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 드리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예배 드리는 대상을 온전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므로, 가진 것과 자리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사람의 죄일 뿐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출발선을 정해 주셔서, 누구나 결승점을 통과해 우승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시절에도 각자의 처소에서 온전히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리에 서서 감사와 소망만 마음에 담고 나머지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달릴 때 반드시 결승선을 통과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9.5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6강로마서 2:1-15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남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을 뿐 실은 자신도 그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회개의 기회로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는 사실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정죄할 자격을 주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자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선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에 초청받고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처럼, 은혜를 받고도 그 은혜의 무게를 잊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정하게 갚으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를 갚으십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는 육체를 가진 지금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옷을 입고 오늘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29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로마서 5강로마서 1:23-32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하나님을 알면서도 거부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진노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그대로 벌하지도, 회개시키지도 않고 그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로마의 타락, 오늘의 성적 문란이 모두 그 증거입니다.

책망하고 화를 내는 것조차 그 바탕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 반응 없이 그대로 두시는 것이 더 무서운 형벌입니다. 회개하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사람은 스스로 죄의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천국을 알기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성도가 넘어지도록 끊임없이 일하지만, 성령께 의지하면 그 유혹에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보면 넘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그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2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로마서 4강로마서 1:18-25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천지가 창조될 때 빛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물러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여 그 말씀을 어겼고, 이후 벗었음을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빛을 거부한 마음은 늘 혼란과 공허와 어둠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사람 속에 이미 있는데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으면 그 자리를 육체의 쾌락과 우상이 차지합니다. 아담이 자기 잘못을 하와 탓으로 돌린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직장과 배우자와 건강을 탓하며 자기 책임을 회피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창조하신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버리지 말고, 진리를 막지 말고, 빛을 더 사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