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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막설교 3강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길에 가슴을 치며 우는 여인들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 울지 말고 그들과 그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사람이 아니라 성벽 밖 백성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말씀대로 훗날 로마와의 전쟁에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잔인한 고난을 당합니다. 이는 오래전 한 선지자가 예언한 그대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은 목적이 다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죽여 이겼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언대로 오시고 죽으셨듯, 다시 오신다는 약속도 그대로 이루어지니 그날을 준비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4.11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막설교 2강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깁니다. 가나안 앞 가데스 바네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을 두고 정탐꾼을 보내자는 사람의 생각을 따르다가, 거인족을 보고 두려워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밤새 통곡합니다.

무너진 것은 그들의 불신이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망한 말 그대로 응답하셔서 40년 광야 생활을 허락하셨지만, 그 광야에서도 만나와 반석의 물로 그들을 먹이고 입히며 끝까지 품으셨습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도 그들을 벌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으로 세례를 주어 삼으시려는 사랑이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섞이면 하나님의 일은 실패합니다. 확신이 없을 때는 무조건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신 십자가를 믿는다면, 그 은혜를 더럽히지 않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마땅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4.4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성막설교 1강

그리스도의 그림자인 성막

모세가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성막을 짓습니다. 화려하게 짓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정해주신 그대로 지어야 했습니다. 물두멍도 번제단도 언약궤도, 놓을 자리는 하나님이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막은 예수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보여주는 그림자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대로 이스라엘이 종살이에서 벗어나 나오는 그 자리에서, 정한 때가 차기까지 하나님은 기다리시고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러나 종에서 풀려난 백성은 자꾸 불평했고, 광야에서 스러졌습니다. 은혜를 받고도 그것을 당연히 여기면 그 은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모세도 처음엔 자기 힘으로 동족을 구하려다 일을 그르쳤고, 광야 사십 년을 지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뒤에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 자체가 고난이었습니다. 성도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그대로 살아내는 사람으로 서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3.28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년예배]
신명기신명기 6:4-9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년예배]

2021년 새해를 맞이하며, 지난 한 해 전염병으로 답답했던 시간을 돌아봅니다. 재앙을 내리신 분도 거두신 분도 하나님이시니, 회개하며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구약시대 백성은 성경을 손에 쥘 수 없어 반복해서 듣고 외우며 말씀을 새겼고, 그렇게 자녀에게 전하는 아버지의 입을 통해 가정이 하나님 안에서 단단해졌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손만 뻗으면 갖는데도 믿음이 자라지 않는다면, 듣기만 하고 마음판에 새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마음대로 나올 수 없는 시간을 지나면서, 말씀을 듣고 외우려는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지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중얼거리던 이들처럼 하루 종일 기도하는 믿음으로 살아내면,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든 믿음과 가정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요한복음요한복음 17:3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코로나로 예배가 막힌 시절, 성탄을 맞으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다시 물었습니다. 흔히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오셨다고만 답하지만,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기에 아버지 품속에 계신 이가 그 하나님을 나타내셨다는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성육신의 목적은 죄 사함을 넘어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그가 보내신 이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격과 성품, 그리고 마귀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신 사역 전부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보여주는 계시로 전해졌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요 몸이며 가족이자 성전이라는 말씀도 이어졌습니다.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머물지 말고 하나님이 삶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어떻게 드러내기 원하시는지 헤아려야 한다는 권면으로 마쳤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2.27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 2
죽어야만 사는 나라 10강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 2

바울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람이었지만, 만난 뒤에는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손을 대면 병이 물러가고,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회개하며 거듭났습니다.

바울이 은혜를 잊지 않은 이유는 과거를 대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유대인은 과거를 자기 앞에 둔다고 여겨서, 지나간 은혜를 늘 마주 보며 삽니다. 그래서 병을 고쳐달라는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셔도, 바울은 자신이 약할수록 그리스도의 능력이 온전해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왕 앞에 결박당한 채 서서도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 교회가 세상과 비슷해지려고 십자가와 회개라는 말을 지워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성도 한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등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1.29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
죽어야만 사는 나라 9강사도행전 20:17-31

그리스도를 만난 바울

다락방에서 말씀을 듣던 청년이 창가에 앉았다가 밤중에 잠에 빠져 삼층에서 떨어집니다. 이미 죽은 것 같았던 그 사람이 날이 새자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가던 사울은 하늘의 빛과 음성 앞에 엎드러져 눈이 멀고, 그 자리에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죽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눈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스데반을 죽게 한 사울을 부르시고 도리어 치료까지 시키시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사울은 자신이 붙들던 세상과 율법의 힘을 그리스도 앞에서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세상 사람을 죽었다고 단정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나니아처럼 이해되지 않아도 말씀이 가라 하면 가고 서라 하면 서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앞에서 세상이 힘이라 여기던 것을 내려놓을 때, 사도 바울처럼 끝까지 달리는 믿음을 살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1.22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추수감사절]
레위기레위기 23:15-21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추수감사절]

초실절에는 게네사렛 평야에서 가장 먼저 익은 보리로 첫 제사를 드립니다. 초실절부터 일곱 안식일을 세어 오십 일째 되는 오순절에는 무르익은 밀로 제사를 드립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사이 49일 동안 하나님께서 북서풍과 남동풍을 불어 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며 날짜를 세야 했습니다.

보리는 차가운 북서풍이 불어야, 밀과 과실은 뜨거운 남동풍이 불어야 여물 수 있습니다. 이 바람과 비를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시니, 날짜를 세는 것은 곧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 나라처럼 사람 왕을 세워 달라고 하나님을 버렸고, 사무엘의 경고대로 밀을 추수해야 할 그 마지막 주에 우레와 비가 내려 한 해 농사를 망치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지금 풍성히 누릴 때 감사할 줄 알아야지, 빼앗기고 나서야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초실절에 부활하셔서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자리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며,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1.15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요나
죽어야만 사는 나라 8강요나 3:3-4:4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요나

요나는 니느웨에 심판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고도 다시스로 도망칩니다. 풍랑을 만나 바다에 던져지고 큰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을 보낸 뒤에야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했고, 왕과 백성이 회개했습니다.

요나가 도망간 것은 심판을 전하다 당할 후환이 두려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굳이 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그 성을 살리실 것을 이미 알았기에 가기가 싫었던 것입니다. 니느웨가 회개하자 요나는 오히려 하나님께 화를 냈고, 하나님은 하루 만에 시든 박넝쿨을 통해 요나가 십이만 명의 생명보다 자기 몸의 편함을 더 아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나에게 니느웨를 구원하라 하신 것은 명령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죄를 짓더라도 그 생명을 살리고 싶어 하시며, 그 마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도가 받은 사명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1.8
너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라 [설립17주년]
출애굽기출애굽기 14:10-16

너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라 [설립17주년]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홍해, 뒤에는 애굽 군대가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소리칩니다.

모세는 싸우라 하지 않고 도망치라 하지도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실 구원을 보라고 말합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받은 은혜도 우리의 행위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베푸신 것입니다. 불평하던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할 때, 그 믿음으로 기적을 보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1.1
무너진 성벽을 세운 느헤미야
죽어야만 사는 나라 7강느헤미야 2:8-20

무너진 성벽을 세운 느헤미야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이 무너진 뒤, 총독으로 부임한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일을 나누어 맡기며 성벽을 52일 만에 세웁니다. 방해하는 자들이 몰려들자 그는 백성들에게 칼과 창을 들려 일하게 했습니다.

성벽은 그저 벽이 아니라 성전을, 곧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울타리입니다. 성전을 되찾고도 성벽이 없어 이방인이 드나들며 제사가 형식이 되어버렸던 것처럼, 말씀과 기도와 거룩한 삶의 성벽이 없으면 세상의 욕심과 정욕이 그대로 들어옵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이니, 그 성전을 지키는 성벽을 스스로 쌓아야 합니다. 느헤미야가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백성을 섬겼던 것처럼,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살면서 말씀과 기도로 성벽을 높이 쌓을 때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0.25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
죽어야만 사는 나라 6강요한복음 12:9-16

죄인을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예수님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겉옷을 깔며 호산나를 외쳤고, 제자들도 함께 들떠 있었습니다.

이 환호는 죄에서 구원해 줄 메시아를 향한 것이 아니라, 로마에서 해방시켜 줄 힘 있는 왕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같은 무리가 훗날 예수님을 죽이라 소리쳤고, 베드로도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뒤에야 자신이 세 번 부인했음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것을 기대하며 부르는 찬양은 상황이 바뀌면 배신으로 돌아섭니다.

예수님은 그런 자들이 배신할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위해 십자가를 지기로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고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의 욕심과 인간의 의를 버리고 정직한 믿음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오늘 성도에게 요구되는 결단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