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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미가야]
죽어야만 사는 나라 5강열왕기상 22:14-25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미가야]

아합왕과 여호사밧왕이 연합해서 길르앗 라못을 되찾으러 가기 전에, 아합은 자기 편에 서서 좋은 말만 해 주는 사백 명의 선지자를 불러 승리를 물었습니다. 여호사밧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미가야를 불렀고, 미가야는 사자의 귀띔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것만 말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 아합이 죽는다는 말씀을 그대로 전했고, 아합은 화를 내며 그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미가야는 이미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서 있었기에 왕 앞에서도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듣기 좋은 말만 원하지만, 축복의 말씀은 그대로 임해야 하고 심판의 말씀은 회개함으로 틀려야 합니다. 책망을 듣고 자기 자신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라야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합은 변장을 하고 절충하며 전쟁에 나갔다가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미가야의 예언대로 죽었습니다. 다윗도 그일라성을 지켜준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할 백성들과, 아직 오지도 않은 사울의 진군을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그대로 믿어 미련 없이 성을 떠났습니다. 세상 줄을 놓지 못하면 믿음은 오히려 처음보다 더 뒤로 튕겨 나가니,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서서 말씀하시는 것만 말하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성도가 살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0.11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 욥
죽어야만 사는 나라 4강욥기 7:11-21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한 욥

하루 동안 자녀와 재산을 모두 잃은 욥은 겉옷을 찢고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라 고백하며, 원망 대신 찬송을 올립니다.

사탄은 욥이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을 섬긴다고 여겼지만, 욥의 뿌리는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께 깊이 내려 있었습니다. 잎사귀와 가지를 잘라도 죽지 않는 나무처럼, 그의 믿음은 형통과 상관없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은 고난을 죄의 증거로 몰아붙였지만, 그것은 뿌린 대로 거둔다는 사람의 소망일 뿐 진실이 아니었습니다.

고난은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인받는 자리이며, 신앙을 더 깊게 다듬는 훈련입니다. 욥은 고난을 지나며 이전보다 훨씬 성숙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났고, 끝내 빼앗기지 않는 복을 돌려받았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10.4
노아를 통해 방주를 만드신 하나님
죽어야만 사는 나라 3강창세기 6:5-14

노아를 통해 방주를 만드신 하나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아담의 죄로 저주받았고, 세상은 브레이크 고장 난 자동차처럼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에 포악함이 가득함을 보시고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 명하셨습니다.

방주는 교회 건물이나 교회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말씀과 일치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노아는 사람들이 조롱하는 가운데서도 자신의 삶을 버려 방주를 지었고,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사람들을 향해 애타게 소리쳤습니다. 방주 밖에 남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심판을 믿지 않았을 뿐, 심판은 그들의 믿음과 상관없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홍수 뒤에도 노아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고, 술에 취해 넘어지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책망하지 않고 잠잠히 기다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 험한 세상에서 참된 방주가 되시며, 노아처럼 순종하여 한 생명이라도 더 방주에 태우는 것이 성도의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9.27
예수님과 나사로의 만남
죽어야만 사는 나라 2강요한복음 11:32-44

예수님과 나사로의 만남

나사로가 병들어 죽습니다. 예수님은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지체하시고, 나사로가 완전히 죽은 뒤에야 베다니로 오십니다. 마르다는 오빠가 죽기 전에 오지 않은 예수님을 원망하고, 돌을 옮기라 하시자 나흘이나 지나 냄새가 난다며 다시 불평합니다.

예수님이 늦게 오신 것은 나사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죽음을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완전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생명의 주인이 자신임을 가르치려 하신 것입니다. 마르다가 냄새 난다며 의심한 그 모습이 바로 죄에 묶여 무덤에 갇힌 인간 자신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오라 부르시자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사로가 걸어 나왔습니다. 자신의 필요를 채워줄 하나님이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인간의 의가 죽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에서 풀려날 때, 나사로처럼 자유롭게 새 생명을 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9.20
부림절의 축복을 만든 에스더
죽어야만 사는 나라 1강

부림절의 축복을 만든 에스더

하만의 조서가 각 지방으로 나갑니다. 아다르월 십삼일 하루, 유다인은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할 처지에 놓입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을 신으로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한 사람의 반항이지만, 아말렉의 후손이 하나님의 백성을 말살하려는 사탄의 계략이 그 뒤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계략을 미리 아시고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 세워 두셨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삼 일 금식한 뒤 왕 앞에 나아갑니다. 이미 세상을 향해 죽은 자로 섰기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결단으로 왕의 마음을 얻었고, 위기에 처했던 동족을 구하고 하만을 도리어 심판받게 하는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9.13
사탄의 계획과 실패
에스겔에스겔 28:11-19

사탄의 계획과 실패

하나님께서 정성껏 지으시고 사랑하셨던 그룹 하나가 교만해져 보좌를 탐내다가 반역을 일으켰고, 천사의 삼분의 일과 함께 하나님의 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쫓겨난 그 존재는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 선악과를 먹게 했고, 그날부터 여자의 후손을 찾아 없애려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아벨을 죽이게 하고, 사람의 딸들과 자녀를 낳아 유전자를 어지럽히고, 이스라엘 남자아기들과 예수님 시대의 아기들을 죽이려 했던 것도 모두 같은 목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광야에서 시험한 것도 그가 정말 여자의 후손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고, 십자가에 달려 죽이면 저주받은 자로 만들 수 있다고 여겼지만 부활은 계산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사탄은 사람들을 쾌락과 오락에 빠뜨리고, 인권과 방역이라는 이름을 빌려 예배와 성도의 모임을 막으려 하고 있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없애려던 사탄의 계획은 그때도 실패했고 지금도 실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사탄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승리는 성도의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7.12
마음의 할례
빌립보서 5강

마음의 할례

구원받은 감사를 잊으면 세상이 더 커 보이고, 그러면 기쁨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불평과 분쟁이 생기는 것도 교회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성령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 없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하면 교만해지고, 그 교만이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형제의 중보기도로 어려움을 넘기고도 다시 교만해진다면, 기도한 사람은 축복을 받지만 그 사람은 책망을 받습니다.

성도가 겸손히 성령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로 완전히 변화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진리에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전한 말씀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6.7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4강빌립보서 2:12-18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바울과 함께 있을 때는 믿음을 잘 지키던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자리에서는 흐트러졌습니다. 서로 높아지려 다투고 대접받으려는 교만이 있었고, 바울은 그것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로 다잡아 줍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다 이루신 일이지만, 그 전기를 스위치에 연결해 불을 밝히는 수고는 성도의 몫입니다.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시간이 쌓이면 결국 구원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순간이 바로 사탄이 파고드는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제자들이 배신을 미리 들었으면서도 설마 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버렸듯이, 경고를 듣고도 무뎌진 마음은 스스로 하나님의 울타리를 걷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잘못되어도 돌이키기만 한다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고 고백합니다. 듣기 힘든 충고를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받고 있다는 증거이니, 그 말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에 순종하며 목숨을 다해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3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3강빌립보서 2:1-1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교회 안에는 소유가 많고 직분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칭찬으로 편지를 시작했지만 이 분열 앞에서는 책망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돌이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 높고 낮은 자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옳다는 인간의 의를 기준으로 세우면 다툼이 생기고, 오직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겸손한 권면과 순종이 가능합니다. 성자 하나님이 종의 형체를 입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 바로 그 낮아짐의 본입니다.

세상은 이기고 올라서야 인정받지만 교회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며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히 순종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 인간의 의를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 삶의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24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유익함이라
빌립보서 2강빌립보서 1:12-21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유익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알기에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기쁘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그것으로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 성도가 그 고통의 시간을 다른 사람을 돕는 도구로 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보시고 칭찬하십니다. 사람은 결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과정을 보시기에, 자기 의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는 겸손이 참된 헌신입니다.

바울은 살아서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유익하고,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합니다.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하나님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이 믿음이, 세상의 조롱과 핍박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당하게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17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서 1강빌립보서 1:1-11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울은 옥에 갇힌 채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합니다. 그 성도들은 루디아의 헌신으로 세워진 이후, 바울이 고난을 당할 때나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변함없이 물질과 기도로 함께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사모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내어주신 것처럼 생명을 주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한 것이며, 이 사랑은 서로의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사랑이 풍성해질 때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가 믿음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온전하게 세웁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서로를 섬긴 바울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처럼,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10
절망의 계단
믿음의 계단 8강마태복음 8:1-4

절망의 계단

한센병 환자가 예수님 앞에 나아와 엎드립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다고 부르짖고,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십니다. 그 순간 병이 즉시 나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께 살려달라 매달리는 이 고백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입니다. 사람은 희망을 품고 살지만, 사랑으로 품었던 영혼이 끝내 세상을 택하는 것을 볼 때 그 마음이 무너지는 것이 절망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위해 더 이상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처럼, 사람에게 희망을 걸었던 자체가 절망이었음을 깨닫는 자리가 있습니다.

성도가 마지막으로 올라서야 할 곳이 바로 절망의 계단입니다. 세상은 이미 심판받은 곳이고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한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낙심하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 절망을 알기에 어둠 가운데 빛나는 그리스도만이 희망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