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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그리스도의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로마서 35강

그리스도의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로마 교회 성도들의 이름이 편지 끝에 줄줄이 나옵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유니아와 안드로니고, 루포와 그 어머니까지, 바울은 그들을 하나하나 부르며 보호자, 동역자,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함께 사역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집을 교회로 내주고, 목숨을 걸고 바울을 지키고, 외로울 때 품어준 사람들입니다. 동시에 바울은 로마 교회에 들어온 이단을 경계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들은 진리를 가르치지 않고 자기 배만 채우려 하며, 교묘한 말로 순진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성도는 말씀을 알아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말씀이 기준이 없으면 그럴듯한 말에 넘어가고 결국 신앙도 교회도 빼앗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토록 있으라는 마지막 고백처럼, 성도는 오직 그 복음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7.3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로마서 34강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 하여

베드로와 안드레가 그물을 던지던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은 그들을 부르십니다. 어부로 살아온 삶을 그대로 버리고 곧바로 따라나선 결단이었습니다.

이 부름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복음의 그물로 사람을 건져내는 일이 곧 바울이 감당한 전도의 사명이며, 이방인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는 제사장의 일과 같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서바나로 가려던 계획을 미루고, 오히려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바울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결국 죄인의 몸으로 로마에 이르러서도 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형제를 돕는 일은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 온 교회가 함께 지는 기도의 일이며, 그렇게 하나님께 무릎 꿇는 자리가 가장 빠른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6.26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하셨나니
로마서 33강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하셨나니

성탄절이면 교회마다 기쁨에 들떠 구원받은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죄를 대속하러 오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는 날이 정해진 채 하루하루를 사셨고, 그 길에서 돌팔매와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강한 성도는 약한 성도의 약점을 자기 짐처럼 짊어져야 하고, 가르치려 들거나 업신여기지 말고 그 사람 앞에서 살아내야 합니다. 다만 사랑을 주어도 약한 성도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수 있으니, 강한 성도는 그 결과를 자기 손으로 거두려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주인과 노예가 함께 예배드리는 로마 교회의 문제는 성경을 알면 풀린다고 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강한 성도가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 자체가 연약한 성도에게 천국 가는 길을 쉽게 알려주는 지혜가 된다고 전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6.19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로마서 32강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천사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 하고, 베드로는 기도하다 환상을 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그릇에 부정한 짐승이 가득하고, "잡아먹으라" 하시는 음성에 베드로는 "속된 것을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일이 세 번 반복된 뒤 고넬료의 사람들이 도착하고, 성령께서 아무 생각 말고 따라가라 하십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줄 알면서도 아직 율법의 형식에 매여 있었습니다. 훗날 안디옥에서도 이방인 성도와 식사하다 할례자들이 오자 자리를 피해, 사도 바울에게 책망을 받습니다. 로마교회 안에서도 절기와 음식을 지키는 유대인과 자유로운 이방인이 서로 판단하고 있었는데, 바울은 어느 쪽도 옳다 그르다 하지 않고 그 다툼이 구원과 상관없는 문제라 말합니다.

음식과 절기로 형제를 업신여기거나 실족하게 하지 말라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도 죽어도 주의 것이니, 형제가 스스로 성장할 때까지 기다리고 품어주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숙입니다. 그렇게 서로 세워주는 교회를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6.12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로마서 31강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바울은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라고,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화목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권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네로가 통치하던 그 시절에도 이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권세자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악에 굴복하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왜 그 권세를 세우셨는지 헤아리라는 뜻입니다. 바로가 악했기 때문에 오히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붙들 수 있었던 것처럼, 악한 권력자도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 쓰임 받습니다. 복음을 방해하지 않는 한 세상의 법을 지키되,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를 막을 때는 담대히 저항해야 합니다.

성도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맡기신 형제를 찾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 그것이 율법을 다 이루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6.5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로마서 30강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핍박하는 자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세상은 원수를 갚는 싸움을 하지만, 교회는 영혼을 위한 싸움을 하기에 용서와 사랑이 그 방식이 됩니다.

억울함을 참고 선으로 대하면 상대가 스스로 잘못을 깨닫는 때가 옵니다. 예수님이 의심하는 도마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손과 옆구리를 만지게 하신 것도 같은 사랑입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낮은 자리에 내려가 자신을 남보다 낫게 여기지 않을 때 다툼이 그치고 관계가 회복됩니다.

축복도 저주도 결국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진심으로 축복하려면 자존감이 높아야 하고, 자신을 비우고 남을 인정할 때 진짜 화목이 이루어집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삶, 그것이 악을 선으로 이기는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5.29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로마서 29강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사도 바울은 자비를 받은 성도에게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산 제물은 남김없이 주고, 결정권을 하나님께 바치고,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재물이 아니라 평소 삶의 심령을 보신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악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인내하고 용서하고 나누며 살아가는 만큼 그 본성이 조금씩 가려집니다. 고난은 그 본성을 부드럽게 녹여 하나님의 모양을 담을 수 있게 하는 과정입니다.

교회는 한 몸이며, 지체마다 받은 은사가 다르지만 우열이 아니라 협력의 관계입니다. 은사와 시간과 헌신은 다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신을 드러내는 데 쓰면 안 되고, 성도가 각자의 자리에서 세상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여길 때 교회와 가정과 나라가 건강해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5.15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로마서 28강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이방인이 다 구원받을 때까지, 이스라엘은 잠시 우둔하게 남겨졌습니다. 훗날 그들도 돌이켜 구원을 받게 되는데, 이 순서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목동은 양을 지키려고 울타리를 세우고, 넘어가려는 양은 끈으로 묶어서라도 붙듭니다. 그것이 속박이 아니라 사랑이듯, 하나님도 순종하지 않는 우리를 가두어 두시는 것은 지켜내려는 마음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스스로 선민이라 여겨 그 울타리를 거부했고, 그래서 도리어 보호에서 멀어졌습니다.

이방인도 유대인도 전체가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고 그 은혜는 마르지 않으니, 사람은 그 지혜를 다 헤아릴 수 없어도 오직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5.8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로마서 27강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농부가 정성껏 키운 참감람나무 가지가 열매를 맺지 못하자, 아깝지만 잘라내고 그 자리에 돌감람나무 가지를 접붙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듭된 사랑과 회개의 기회를 쓰레기처럼 취급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누리던 은혜와 삶을 함께 잘라내셨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실패해서가 아니라 큰 계획 안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큰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결국 작은아이라도 먹이는 어머니처럼, 유대인이 복음을 거절하자 그 자리에 이방인이 접붙여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접붙여진 가지도 뿌리를 자랑하면 원가지처럼 가차 없이 잘릴 수 있습니다.

찍히고 안 찍히고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자하심에 머물면 인자를 누리고, 교만하면 준엄한 얼굴을 만납니다. 노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겸손과 감사로 참감람나무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5.1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로마서 26강

하나님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

엘리야는 850명의 거짓 선지자를 이기고 가뭄에 비를 내리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죽이겠다 하자 광야로 도망쳐 로뎀나무 아래서 죽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을 보여주셨지만 그 가운데 계시지 않았고, 마지막에 세미한 소리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나만 남았다"고 했지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행한 기적은 자기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었는데, 그는 그것을 잊고 자신의 열심만 보았습니다. 현상과 기적만 보면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고, 사람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낙심하게 됩니다.

성전도 열심도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남은 자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받은 은혜를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부족하지만 택하심을 입은 남은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 오늘 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4.24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 [부활절]
로마서 25강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며 [부활절]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향하신 것은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걸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망을 예수님이 이기고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오늘 이 부활을 통해 하나님을 믿을 이유를 얻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어둠에 갇힌 이들을 모른 척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생기기에, 성도는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복음을 전할 책임을 집니다. 다만 진리는 강요나 세뇌가 아니라 예수님이 열두 제자와 삼 년을 함께하신 것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것입니다.

전하는 말을 듣고 믿는 것은 그 사람의 몫이고, 열매는 하나님이 맺으십니다. 전도자는 두려워할 것 없이 그저 위임받은 대로 전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셨던 것처럼 사명을 맡기셨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4.17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서 24강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스스로 의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기에,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하시고 마침이 되어 주셨습니다. 이방인들은 아무 공로 없이도 믿음으로 그 구원을 받아들였습니다.

행위로 의를 세우려는 열심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열심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부딪히는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갓난아기처럼 아무 공로 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십니다.

구원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할 때 이루어집니다. 말씀은 멀리 있지 않고 이미 내 입과 마음에 가까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부활을 믿는 사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 없이 구원을 받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