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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진 자
마가복음 8강마가복음 4:21-41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진 자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아 보이는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듯, 제자들의 작고 흔들리던 믿음도 옥토에 심겨 자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있는지,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온전히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땅속에 묻힌 씨앗은 뚫고 나가야 할지 근심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나오면 햇빛과 비와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도 진리는 제자들 안에서 자라났고, 결국 순교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거대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편견과 비뚤어진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이는 가룟유다처럼 사명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섭니다.

배 안에서 광풍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두려워했고, 예수님은 그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능력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므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면 겨자씨 같은 믿음도 반드시 크게 자랄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7.26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
마가복음 7강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

바닷가에 몰려든 무리는 진리보다 기적과 문제 해결을 바라고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야기로 쉽게 말씀을 전하셨는데, 씨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에 각각 떨어졌고, 그중 좋은 땅에서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길가는 강퍅해져서 말씀을 듣고도 뿌리내릴 마음이 없는 사람이고, 돌밭은 감사와 결단은 빠르지만 고난 앞에서 곧 식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가시떨기는 뿌리는 내렸지만 세상 염려와 욕심에 눌려 더 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썩는 사람인데, 겉으로는 믿음이 있어 보여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를 모른다는 점이 가장 위태롭습니다. 함께 이어진 가라지 비유는 심령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어서, 둘이 한 세상에 섞여 자라도 갈라내는 일은 사람이 아니라 추수 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받은 것이 얼마인지가 아니라 그것으로 얼마나 충성했는지가 문제이며, 좋은 땅이 되는 길은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인내하며 순종하는 데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난은 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회이며, 그렇게 견뎌낸 삶이 마침내 곳간에 들어가는 열매가 된다는 말씀으로 맺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7.19
요시야의 비극적 죽음과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24강열왕기하 23:25-30

요시야의 비극적 죽음과 하나님의 섭리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이 되어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개혁을 이끕니다. 성전을 수리하다 발견한 언약책 앞에 옷을 찢고, 온 나라의 우상과 산당을 무너뜨리고, 백성과 함께 유월절을 지킵니다. 그런 그가 애굽 왕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화살에 맞아 허무하게 죽습니다.

인과응보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안다'는 말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깊이 연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요시야를 그렇게 아셨고, 그가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리라 하신 약속은 고통 없는 죽음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이른 죽음은 뒤이어 유다를 덮칠 바벨론의 참혹한 멸망과 포로살이로부터 그를 건져낸 자비로운 격리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요셉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렇듯,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뒤흔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7.12
성령을 모독하는 자
마가복음 6강

성령을 모독하는 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미쳤다며 강제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고,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가족조차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하고 함부로 대했고, 그로 인해 진리가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사탄이 서기관과 가족까지 동원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한 것이며, 사람이 짓는 죄는 사탄에게 힘을 주는 양식이 됩니다. 두로 왕과 타락한 천사도 하나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교만해져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 하다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목회자를 비방하고 이간질하며 불평하는 것, 교회를 방해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사람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참된 가족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7.5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골로새서 3:12-17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은 공동체

새로 세워지는 안수집사님과 권사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직분은 계급이나 명예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기에 섬길 사람을 부르시는 사명입니다.

부족함을 느껴 두려운 마음이 든다면 그것은 건강한 마음입니다. 모세도 자신이 부족하다며 부르심을 거절했지만, 하나님은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부르신 사람을 끝까지 붙드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직분자가 먼저 입어야 할 것은 직함이 아니라 긍휼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그리고 그 위에 사랑입니다.

교회는 직분이 아니라 성품과 사랑으로 세워집니다. 스데반은 집사로 세워졌기에 위대한 것이 아니라 죽으면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했기에 위대했고, 빌립은 훗날 집사보다 전도자로 기억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능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충성이며, 그날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6.28
제자들의 사명
마가복음 5강마가복음 3:13-19

제자들의 사명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자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항의합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물으시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신 것은, 형식적인 안식이 아니라 참된 안식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진리를 듣고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완악함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그 길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하게 하시며, 귀신을 쫓는 권능을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가룟유다는 회개하지 않아 그 자리를 잃었고,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한 뒤 통곡하며 돌이켰습니다. 죄는 잊혀지지 않지만, 그 죄를 회개하느냐 아니냐가 완전히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6.21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열왕기하 23강열왕기하 22:16-20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성전 수리 중 율법책이 발견되고, 그 말씀이 읽히는 순간 요시야는 옷을 찢으며 통곡합니다. 그는 조상 탓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켰으며, 이미 심판을 알고도 사람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다시 물었습니다.

말씀이 발견된 것은 그만큼 성전 안에서 말씀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전이 있다는 확신만 붙들고 있었을 뿐,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말씀은 없었습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이 찔리고 불편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심령이 반응하는 증거입니다.

여선지자 훌다는 유다 전체를 향한 심판은 거두어지지 않았지만, 요시야 한 사람의 눈물은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찾으십니다. 가정과 교회와 나라 가운데 그렇게 마음을 찢는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그곳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6.14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4강마가복음 2:13-22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중풍병자를 벗들이 지붕을 뜯어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보다 그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사함을 선언하셨고, 곁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여겼습니다. 이어 세리 레위를 부르시자 그는 즉시 따랐고, 자기 집에 세리와 죄인들을 초대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의사는 병든 자에게 필요하듯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손님이 금식하지 않듯, 지금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슬픔의 형식을 지킬 때가 아니라 말씀을 먹을 때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고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지 않듯, 복음은 율법주의의 낡은 형식에 갇힐 수 없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것은 사탄에게서 그 무기를 빼앗는 일이며, 그 은혜는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값없이 주어집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든 법과 형식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 뜻을 깨달은 사람은 세상을 향해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6.7
야외예배
베드로후서

야외예배

나무와 풀이 무성하게 자란 야외 예배 자리에서, 믿음도 자란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믿음 위에 덕을, 덕 위에 지식을, 절제와 인내를 쌓아 결국 사랑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숙한 믿음은 봉사의 양이나 신앙의 연차로 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얼마나 닮아가는지로 재는 것입니다. 급하고 다혈질이었던 베드로도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초대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셨습니다. 나무가 비바람과 눈 속의 시간을 지나 단단해지듯, 믿음도 고난과 기다림 속에서 자랍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 아니라 말을 함부로 하지 않고 정직하며 사람을 배려하는 작은 삶의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믿음은 혼자 자라지 않고 서로 붙들어주는 공동체 안에서 자라며, 그 자람의 끝은 결국 사랑입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큰 능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 오늘 전한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31
더러운 귀신을 꾸짖는 예수님
마가복음 3강마가복음 1:16-28

더러운 귀신을 꾸짖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씻던 베드로에게 다시 그물을 내려보라 하십니다.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던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했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습니다. 그 후 가버나움 회당에서는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대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꾸짖어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어부 경험과 자존심을 버리고 말씀에 의지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반면 귀신은 사탄이 강제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와 비진리 중 누구를 섬길지 정하지 않을 때 스스로 자리를 내어준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그러했듯 지금도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거짓을 진리처럼 속삭여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성도는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으로 분별하며, 성령을 의지해 담대히 싸워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진리를 붙드는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5.24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열왕기하 22강열왕기하 21:10-17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오십오 년을 다스렸습니다. 그 시대 남유다는 앗수르에 충성하며 번영을 누렸고,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평안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상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삶이 편안하고 풍요로우니 백성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된 것, 그것이 가장 악한 상태였습니다. 오늘날도 기술과 성공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사람을 세뇌하는 것은 같은 미혹입니다.

므낫세는 앗수르에 사로잡혀 쇠사슬에 묶여 끌려간 뒤에야 크게 겸손하여 하나님께 무릎 꿇었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예루살렘 왕좌로 돌려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누가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순종했느냐입니다. 마지막 때를 이길 힘은 죽도록 충성하는 순종뿐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17
세례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마가복음 2강마가복음 1:9-13

세례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기를 계속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세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후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줌으로써 인류의 모든 죄를 그분께 전가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이후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시고, 사탄은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시험으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매번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십니다.

사탄은 결국 예수님께 굴복할 것을 알면서도 성도들을 실족시키려 합니다. 성도는 마귀를 스스로 이길 힘이 없지만, 성령을 의지하면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여드릴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다 믿지 말고 진리만 의지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