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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꽃밭 신앙을 가진성도
믿음의 계단 1강에스겔 47:1-5

꽃밭 신앙을 가진성도

새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발목에서 무릎, 허리를 지나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강이 될 때까지 차오르는 환상을 봅니다. 포로 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겠다는 약속의 계시였습니다.

이 물이 차오르는 순서를 성도의 믿음이 자라는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은 맨 처음 꽃밭에서 시작해 걸림돌과 산과 계곡, 풍랑 이는 바다를 지나 독수리처럼 나는 자리까지 자랍니다. 꽃밭 신앙은 복을 조건으로 삼고 서리 한 번에 무너지지만, 독수리 신앙은 말씀과 믿음으로 인내하며 사탄의 움직임을 분별합니다.

성도의 믿음의 그릇은 저마다 달라서 서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화려한 꽃밭이 아니라 조건 없이 감사하는 변함없는 믿음이며, 우선순위를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성도가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거목으로 서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12.1
에바다의 기적 [추수감사절]
마가복음마가복음 7:32-35

에바다의 기적 [추수감사절]

귀 먹고 말 더듬는 사람이 예수님께 이끌려 옵니다. 예수님은 그를 무리에서 따로 데리고 나가 귀에 손가락을 넣고 혀에 손을 대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고 "에바다" 하십니다. 그 순간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졌습니다.

들을 귀가 없으면 하나님의 비밀을 들어도 알 수 없고 전할 수도 없습니다. 그 병자처럼 우리도 세상의 소음에 귀가 닫혀 있고 어둠에 익숙해 빛을 보지 못했는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 귀와 눈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제는 선한 말과 악한 말을, 좁은 길과 넓은 길을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리에서만 도토리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듯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책망과 징계도 미워서가 아니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주시는 기회임을 깨닫고 회개할 때, 그 사람에게 언제나 에바다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들은 진리를 전하며 다른 영혼에게도 그 기적을 베푸는 것이 추수감사절에 드릴 헌신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11.17
고난은 신앙의 성장을 위함이라
고린도후서고린도후서 5:1-10

고난은 신앙의 성장을 위함이라

IS에 인질로 잡혀 있던 26세 여성이 18개월 만에 살해당했습니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라는 협박에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고, 함께 갇힌 소녀들을 돌보다가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땅의 장막 집이 무너져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하늘에 있습니다. 육신의 고통이 아무리 커도 그것으로 영원한 나라를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고, 오히려 죄를 탕감받고 신앙이 자라는 기회가 됩니다. 마지막 날 그리스도 앞에 설 때, 지금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어떤 믿음으로 살았는지가 드러납니다.

천국과 지옥은 지금 이 장막을 입고 있는 동안 결정됩니다.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형편은 믿음을 지키지 못한 핑계가 되지 않으니, 유한한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 헌신을 보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평안한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11.3
너희는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베드로전서베드로전서 4:7-8

너희는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사람들은 인내하지 못하고 힘든 일을 만나면 문제 뒤로 숨거나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선택을 합니다. 욥은 자녀와 재산과 건강을 한꺼번에 잃고 죽기를 간구했고, 엘리야도 이세벨의 위협 앞에 생명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런 고난은 사탄이 하나님의 생명 계획을 방해하려고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욥은 아내의 원망에도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는 지친 엘리야를 천사를 보내 떡과 물로 어루만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낭떠러지로 밀치려던 사람들 사이를 예수님이 담담히 걸어 나오신 것처럼,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것이 사탄의 공격을 이기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사탄에게 넘기지 않으시며, 저주도 복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무거운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 맡기고 견뎌내면, 이 길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10.27
여러분은 하나님께 신뢰를 받고 있습니까?
고린도전서고린도전서 15:29-34

여러분은 하나님께 신뢰를 받고 있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합니다. 성도들이 자기의 연약한 모습을 보고 실족할까 두려워, 목숨을 걸고 진리를 지켜낸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산 이유는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이 믿어지면, 가족과 부와 명예를 버리는 일도 의심 없이 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도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충만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스승의 곁을 그림자처럼 지키며 겸손히 순종하는 과정에서 믿음이 자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부와 명예를 갖추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선한 마음과 감사와 순종과 변하지 않는 인격, 그것으로 신뢰를 보여달라고 하실 뿐입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름을 받았을 때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가 하나님께 신뢰받는 성도가 되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10.20
성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자
요한복음요한복음 4:23-24

성령과 진리로 예배 드리는 자

사도요한은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고 선포합니다. 그 시절 영을 선하다 여기고 몸을 악하다 여겨 육체의 부활을 부인하던 사상이 교회에 퍼져 있었고,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음을 밝혀 그 거짓을 반박합니다.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세상은 알아보지 못했고 자기 백성마저 영접하지 않았지만,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다윗이 원수에게 쫓기던 자리에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며 드린 기도가 바로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의 모습입니다.

오병이어를 보고 몰려든 무리에게 그리스도는 영생하는 양식을 구하라 하셨고, 하나님의 일은 그가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성령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를 하나님은 끝까지 붙드시고 안전한 삶으로 이끄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10.13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사사기 23강사사기 21:20-25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베냐민 지파를 심판하는 자리인데, 그들이 가장 먼저 정한 것은 회개가 아니라 자기 딸을 내주지 않겠다는 맹세였습니다. 그 맹세 때문에 베냐민 지파가 몰살당하자, 이번에는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원망합니다.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그 결과를 하나님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그 죄를 덮기 위해 이번에는 죄 없는 약한 마을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여인들을 강제로 끌고 와 자기 맹세를 지키는 시늉을 합니다. 겉으로는 규율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잔인한 이스라엘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은 회개도, 돌이킴도 아닙니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계셨는데도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산 결과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9.29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
사사기 22강사사기 20:17-28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

레위인은 밤길에 기브아에서 하룻밤을 묵다가, 자신을 노리는 무리 앞에서 아내를 밖으로 내어 줍니다. 아내는 밤새 죽임을 당했고, 레위인은 그 시체를 열두 조각으로 잘라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냅니다.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 지파를 심판하기로 만장일치로 정합니다.

레위인은 자기 잘못은 감추고 억울함만 부풀려 전했고, 이스라엘은 그 말만 듣고 분노했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어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는 응답을 받고도 두 번이나 크게 패했는데, 그것은 이 전쟁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셨다는 뜻이었습니다. 울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회개 없는 제사와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베냐민은 결국 몰살당해 육백 명만 남았고, 이스라엘은 그제야 뉘우쳤지만 진짜 회개로 나아가지 못하고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죽여 또 다른 죄를 쌓았습니다. 변질된 베냐민의 죄는 곧 타락한 이스라엘 자신의 죄였습니다. 형제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기 죄부터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9.22
사탄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사사기 21강사사기 19:22-30

사탄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한 레위인이 첩을 데리고 길을 가다가 기브아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성읍의 무리가 몰려와 그를 내놓으라 협박하자, 레위인은 자기 대신 첩을 그들에게 내주었고 여인은 밤새 욕을 당한 끝에 문지방에서 숨을 거둡니다.

레위인은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아내를 내주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붙들어야 할 첫 단추가 이미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 다음 단추도 똑같이 어긋나듯, 레위인이 무너지자 백성 전체가 함께 무너졌습니다.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성도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누가 인도해주지 않아도, 말씀의 등불을 스스로 높이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9.15
미가의 우상과 제사장
사사기 20강사사기 17:7-13

미가의 우상과 제사장

돈을 훔친 아들이 저주받을까 두려워, 미가의 어머니는 죄를 덮어주고 오히려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께 드립니다. 갈 곳 없던 레위인은 은 열과 옷 한 벌에 미가의 개인 제사장이 되고, 미가는 이제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 기대합니다.

내 아들이 저주받는 것만 안 되는 마음이 곧 아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죄를 바로잡는 대신 복 받기를 앞세우면 회개할 기회조차 사라집니다. 제사장이 생계 때문에 한 가정의 복이나 빌어주는 자리로 내려앉듯, 헌금과 기도를 드렸으니 형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나님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말입니다.

세상의 성공만 바라는 부모의 욕심은 자녀의 죄를 덮고 회개의 길을 막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형통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직한 믿음을 보시고 때를 따라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지 못하면 미가와 그 어머니, 레위인과 단 지파처럼 떠돌다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8.25
사사로 20년을지낸 삼손
사사기 19강사사기 16:21-28

사사로 20년을지낸 삼손

삼손은 유다 사람들에게 넘겨져 블레셋 앞에 결박된 채 끌려갑니다. 손이 풀리자 다시 천 명을 죽이고, 들릴라에게 결국 자기 힘의 비밀을 털어놓아 두 눈을 잃고 맷돌을 돌리는 노예가 됩니다.

무너진 것은 삼손의 힘이 아니라 그의 신앙이었습니다. 자기 행동의 책임을 늘 상대에게 돌리고 자기 생각이 옳다는 틀에 갇혀 있었기에, 힘을 가지고도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 자기만 아는 비밀인 나실인의 서원을 스스로 버렸을 때, 하나님의 권능도 그를 떠났습니다.

사사로 살아야 할 20년을 인간적인 복수와 정욕으로 흘려보낸 삼손처럼, 맡겨진 시간을 허비하고도 핑계 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할 일과 목적과 결과까지 이미 다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살 때, 부끄럽지 않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8.18
삼손을 잉태한 마노아부부
사사기 17강사사기 13:1-7

삼손을 잉태한 마노아부부

마노아 부부는 아기가 없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내에게 직접 찾아와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하시며, 포도주와 독주를 끊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나실인으로 살 아이를 위해, 부모가 먼저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기를 그냥 주실 수도 있었지만, 귀한 것을 담을 그릇을 먼저 정결하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모두가 마시는 것을 마시지 않는 삶은 힘들지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서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 하셨는데, 이는 사람의 이해를 초월한 하나님의 속성이며 구약에서 메시야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삼손은 그렇게 특별한 은혜와 부모의 헌신 속에 태어났지만, 온전한 인격과 순결한 믿음을 지키지 못해 강한 힘이 오히려 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간직하고 사용하느냐는 사람의 몫입니다. 성도 역시 나실인으로 부름받은 존재이니, 부서지고 낮아진 마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영혼을 감당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