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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압살롬의 죽음
사무엘하 19강사무엘하 18:9-18

압살롬의 죽음

압살롬은 나무에 걸려 매달린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요압의 창에 찔려 죽습니다. 다윗이 살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요압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그를 죽였고, 부하 소년은 은 천 개를 준다 해도 왕의 아들에게 손대지 않겠다며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이름은 아버지 하나님은 평화였지만 압살롬은 그 이름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여동생의 일로 상한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지 않고 스스로 복수를 택한 순간부터 판단력을 서서히 잃었고, 반역과 아버지의 후궁을 범하는 죄까지 나아갔습니다. 살아서 자기 이름을 남기려 세운 비석은 결국 그의 수치와 죽음을 알리는 비석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한순간에 무너지지 않고 마음이 서서히 어두워지기 때문에, 그 사이사이에 하나님을 찾아야 빛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다윗도 자신의 잘못을 자책했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돌이킬 기회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자신과 자손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5.28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실패
사무엘하 18강사무엘하 17:15-23

압살롬과 아히도벨의 실패

압살롬의 모사 아히도벨은 다윗을 칠 계략을 세우지만, 압살롬은 후새의 말을 듣고 마음을 바꿉니다. 아히도벨은 자기 계략이 무너진 것을 보고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의 계획을 처음부터 막지 않으시고, 그 계획이 실행되지 못하게 하심으로 다윗을 지키셨습니다. 지혜와 은사를 받은 사람이 그것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자기 것으로 여기면, 하나님은 그 지혜와 은사를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빼앗으면 더 죄를 짓지 않겠지만, 빼앗지 않으시기에 그것을 악하게 쓰다가 더 큰 죄를 짓게 됩니다.

압살롬은 다윗의 아들로 태어난 특혜를 받고도 복수심과 욕심 때문에 버림받았고, 아히도벨은 다윗을 미워하는 마음에 갇혀 하나님께 돌아가지 못한 채 죽었습니다. 반면 다윗이 지나는 곳마다 아무 대가 없이 그를 돕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보지 말고 그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5.21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라 (야외예배)
베드로전서

믿음의 결국은 영혼 구원이라 (야외예배)

영들을 다 믿지 말고 하나님께 속했는지 분별하라고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시인하는 영이 하나님께 속한 영이고, 그렇지 않으면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세상은 지금 화폐와 나라가 하나로 뭉치고 있고, 적그리스도가 드러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부활, 다시 오심을 믿는 성도는 큰 환란이 오기 전에 휴거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만지고 승천하시는 것을 보았듯, 우리는 그 후손으로서 다 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천국은 눈물도 악함도 거짓도 없는 곳이며, 그 기회는 육신을 가진 지금뿐입니다. 낙심되고 귀찮을 때도 마지막까지 하나님을 붙들어야 하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믿음을 가르쳐 함께 올라가기를 기도하면, 부모의 기도는 한 가지도 버려지지 않고 자녀에게 쌓이는 은혜가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5.14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
사무엘하 17강사무엘하 16:5-14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치던 다윗에게 두 사람이 다가옵니다. 사울의 종 시바는 나귀에 양식을 실어 와 다윗의 환심을 사더니, 걷지 못하는 므비보셋이 주인 회복을 즐거워한다는 거짓말로 그의 전 재산을 빼앗아 냅니다. 사울의 친족 시므이는 돌을 던지고 저주를 퍼부으며 다윗의 불행을 즐깁니다.

시바는 좋은 성품이 없었기에 남의 어려움을 나눔의 기회가 아니라 이용할 기회로 삼았고, 다윗은 뇌물에 눈이 가려 확인 없이 판단해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시므이는 권력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 하다가 다윗이 무너지자 쫓아가며 조롱했는데, 다윗은 그 저주조차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받아들이며 아비새의 복수를 막았습니다. 남의 불행을 발판 삼으려는 마음은 가인이 아벨을, 에서가 야곱을 미워했던 것과 같은 뿌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시바도 시므이도 훗날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었고, 다윗은 억울함을 하나님께 맡긴 채 다시 일어섰습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결국 그 불행을 자기가 대신 당하게 됩니다. 처지와 소유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람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억울해도 혈기 내지 않고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이 성도의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5.7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함께 있을 때는 믿음을 잘 지키던 이들이 혼자 있게 되자 서로 높아지려 다투고, 형제에게 대접받으려는 교만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빨리 돌이키라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다시 구원을 받으라는 뜻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지켜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예배가 부담스러워지고, 말씀이 마음을 찌르는 것이 불편해지다가, 결국 스스로 구원 밖으로 걸어 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미리 배신을 알려주셨는데도 도망친 제자들처럼, 경고를 듣고도 무뎌진 마음이 가장 위험한 자리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잘 자라는 것이 자신의 자랑이자 열매라며,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죽어도 좋다고 고백합니다. 성도가 해야 할 일은 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구원 앞에서, 있는 자리마다 등불을 밝히듯 믿음을 드러내며 서로 겸손히 섬기는 것, 그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4.30
통제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 [부활절]
고린도전서고린도전서 15:12-20

통제권을 하나님께 맡기는 성도 [부활절]

부활절을 맞아, 죽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게바와 열두 제자, 그리고 오백여 형제에게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억지 주장이 아니라 눈으로 보게 하신 것이며, 빈 무덤은 다른 종교의 지도자들과 달리 그분이 정말 살아나셨다는 증거로 제시됩니다.

이 부활을 믿는 사람은 육은 죽어도 영혼은 살고, 사망과 죄의 권세는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날마다 염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은 자기 삶의 통제권을 자기가 쥐려 하기 때문이며, 그것이야말로 사탄이 믿음을 흔드는 방법입니다.

전투 중 안정을 지킨 것은 조종간을 쥔 조종사였듯, 자기 인생의 통제권을 하나님께 맡길 때 도리어 평안이 옵니다. 바울이 매를 맞고 몸이 상하는 고난 속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천국을 보았기 때문이며, 성도들도 근심과 염려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그리스도를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4.9
너희도 나처럼 스스로 선택하라 [종려주일]
누가복음누가복음 19:28-40

너희도 나처럼 스스로 선택하라 [종려주일]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로 맞이합니다. 나귀를 타신 왕은 그 환호 뒤에 놓인 십자가의 길을 이미 알고 묵묵히 걸으십니다.

이 고난은 누구에게 떠밀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스스로 계획하고 실행하신 것입니다. 가룟 유다의 배신도, 베드로의 분노도, 제자들의 자리다툼도 모두 십자가라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배신할 자에게조차 끝까지 돌이킬 기회를 주시며 괴로워하셨습니다.

성전을 뒤엎으시고 바리새인의 침묵 요구를 거절하신 것도 이 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알리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부활도 없고, 부활 없이는 재림도 영생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하셨듯이, 우리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그 길을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4.2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부활절]
고린도전서고린도전서 11:23-29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부활절]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 제자들과 나누신 떡과 잔을 상기시킵니다. 떡을 떼시며 찢길 자신의 몸을, 잔을 드시며 흘릴 피를 미리 보여 주셨고, 이 잔이 새 언약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는다고 믿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희생으로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성찬은 그 죽음과 부활과 재림을 함께 기억하는 자리이며, 참여하는 마음가짐에 따라 은혜가 되기도 하고 죄가 되기도 한다고 전합니다.

성찬에 참여할 때는 믿지 못한 마음과 형제를 멸시한 마음, 자신을 위해 신앙생활을 해 온 잘못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감사히 참여할 때, 주 안에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된다고 전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4.2
사순절을 지켜야 하는가

사순절을 지켜야 하는가

사순절이 되면 새벽기도를 걸어놓는 교회와 그렇지 않은 교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집니다. 이 절기가 언제 어떻게 40일로 굳어졌는지, 그 역사를 따라가 봅니다.

처음엔 정해진 기간이 없었습니다. 주님이 무덤에 계셨던 시간을 근거로 며칠씩 지키던 것이 세월이 흐르며 늘어났고, 결국 그레고리 1세 때 40일로 확정됐습니다. 로마 교회가 이 기간에 형식과 의식을 계속 덧붙이자, 성경에 없는 절기에 사람을 묶어 놓는다며 개혁신학자들이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절기를 지키느냐 마느냐로 다툴 일이 아닙니다. 하루하루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어야 합니다. 형식을 갖추는 것보다 그 믿음이 진짜인지, 삶이 실제로 변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3.31
자신의 죄를 돌아본 다윗
사무엘하 16강사무엘하 15:24-34

자신의 죄를 돌아본 다윗

다윗이 아들에게 쫓겨나 궁을 떠납니다. 압살롬은 외가에서 삼 년 만에 돌아왔지만 이년이 넘도록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고, 그 서운함이 반역으로 자랐습니다. 아히도벨은 손녀 밧세바의 일로 품었던 원한을 복수로 풀었고, 다윗은 언약궤를 궁으로 돌려보낸 채 맨몸으로 피신합니다.

압살롬의 반역은 다윗에 대한 거짓말로 백성의 마음을 훔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정작 다윗을 지킨 것은 잇대 같은 이방인이었고, 무너뜨린 것은 아들과 원한을 품은 신하였습니다. 다윗이 언약궤를 붙들지 않은 것은, 궤가 있어도 자신의 죄가 하나님 앞에서 풀리지 않으면 궁으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 고난이 자신의 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았기에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상대를 탓하는 대신 자신을 돌아보았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피난처이심을 보았습니다. 겸손과 순종을 회복했을 때 그는 다시 왕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3.26
끊어지지 않는 죄의 끈
사무엘하 15강사무엘하 14:21-33

끊어지지 않는 죄의 끈

압살롬이 형 암논을 죽이고 삼 년 동안 외가로 도망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리움 때문에 압살롬을 불러들이지만, 요압이 보낸 여인의 말에 떠밀려 결단한 것일 뿐 죄를 책망하지도, 용서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게 이 년을 더 만나주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냅니다.

다윗이 밧세바 사건 이후 하나님과 멀어지자 지혜롭던 판단력도 함께 흐려졌습니다. 압살롬의 죄를 단호히 다루지도, 품어 회개시키지도 못한 채 원망만 쌓이게 두었고, 그 틈을 타 요압 같은 사람이 여인 뒤에 숨어 자기 뜻을 관철시킵니다. 겉모습만 칭송받던 압살롬은 결국 그 죄를 회개하지 못한 채 반역자가 되고, 다윗의 우유부단함은 압살롬의 죽음과 이어지는 아도니야의 반역까지 막지 못합니다.

죄는 회개해야만 용서받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는 속이려는 사람을 분별할 수 있지만, 영적으로 무뎌지면 곁에 누구를 두어야 할지조차 판단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돌이키려 애쓰는 사람은 같은 죄의 문제를 두 번 겪지 않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3.19
죄의 삯은 사망이요
사무엘하 14강사무엘하 13:23-33

죄의 삯은 사망이요

다윗의 아들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사랑이 아닌 욕심으로 탐합니다. 요나답의 간교한 계략으로 다말을 고립시켜 욕보인 뒤, 욕심이 채워지자 그를 계집이라 부르며 내쫓습니다. 아버지가 손을 놓은 사이 압살롬은 형 암논을 죽이고, 다윗의 집안은 간음과 성폭행과 살인으로 무너집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지은 단 한 번의 죄를 하나님은 횟수로 따지지 않으셨습니다. 정욕이 다윗을 왕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쫓아내게 했고, 그 죄는 우리아를 죽인 칼이 그 집을 떠나지 않으리라는 말씀 그대로 자녀들에게 옮아갔습니다. 부모가 영적으로 무뎌지면 자녀를 지킬 지혜도 사라지고, 사탄은 그 허점을 정확히 찾아 공격합니다.

죄는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흐트러지면 판단은 어둠 속에서 내려지고, 그 하루의 죄가 자신뿐 아니라 자녀의 삶까지 무너뜨립니다. 늘 기도하며 말씀을 중심에 두고 살 때, 사탄은 결코 그 가정을 속일 수 없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