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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
말라기 9강말라기 3:13-15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사랑한다, 돌아오라 말씀하셔도 언제 사랑하셨느냐,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여섯 번이나 말대답을 합니다. 유다에서는 요시야 왕이 죽은 뒤 악인이 의인을 핍박해도 심판이 임하지 않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을 조롱하며 회개를 헛되다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죄를 모르셔서가 아니라 심판의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즉시 벌이 없으면 사람은 화인 맞은 심령처럼 두려움을 잃고 점점 더 대담하게 죄를 짓지만, 손을 드시는 순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이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 질문을 던지시며 끝까지 인내하고 계셨습니다.

좋은 성품과 진실된 회개 없이 형식만 반복하는 신앙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의인은 고난 중에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세상의 형통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심판대 앞에 설 날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아 돌이켜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9.21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설립22주년 기념예배]
요한복음요한복음 5:2, 요한복음 13:34-35

내가 새 계명을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설립22주년 기념예배]

교회가 설립 22주년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시며 서로 사랑하라고, 사랑한 것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장면과, 죄의 산에 오르려다 떨어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은혜로 산 꼭대기에 올려지는 환상이 함께 전해졌습니다.

새 계명은 죽도록 봉사하고 헌금하라는 요구가 아니라 자신을 희생해 상대를 위해 사는 삶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심령이 메마른 사람들이 많은데, 그 갈증을 알면서도 지나친다면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어기는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환상 속 죄의 산은 사람의 힘으로는 오를 수 없고, 오직 하늘에서 내려온 손길로만 오를 수 있다는 것도 함께 전해졌습니다.

세상 지위와 겉치레는 그리스도 앞에서 모두 벗겨지고 오직 영혼만 서게 될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화려한 헌신도 불에 타 없어질 수 있지만, 낮은 자리에서 묵묵히 사랑하고 기도한 삶은 정금처럼 남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복을 받는 거룩한 성도가 될 수 있다는 말씀으로 맺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9.7
나를 시험하라는 하나님
말라기 8강말라기 3:7-12

나를 시험하라는 하나님

제사장들이 세상과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자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잃었고, 백성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레위인은 살기 위해 밭으로 도망가야 했고, 백성은 이혼과 잡혼을 하며 점을 치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돈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려는 참된 믿음과 삶이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저버렸다면 그 헌금은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수단일 뿐, 하나님께서 받으실 공의로운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뒤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시고, 메뚜기와 흉작에서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교회가 일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드리는 삶이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8.17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공의로운 제물
말라기 7강말라기 3:1-6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공의로운 제물

제사장이 드리는 짐승 제사로는 죄를 씻을 수 없어, 예수님께서 직접 몸을 입고 오셔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축복했고, 아브람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렸습니다.

멜기세덱이 가져온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보혈을 가리킵니다. 아브람이 율법이 있기 전에 스스로 십일조를 드린 것은, 자신의 모든 소유와 생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이미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성도들의 죄를 단번에 사하셨습니다.

성도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흘리신 피 덕분에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니, 헌금과 헌신은 그 은혜를 인정하는 고백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므로 그 언약을 붙든 성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직한 믿음과 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8.3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라기 6강말라기 2:10-17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한 몸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남자들은 어려서 만나 함께 고생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 여인과 혼인했습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이방 여인들의 우상을 성전 곁에 두었고, 그 죄로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내를 버리는 것은 단지 헤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부부를 맺어 주신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봉헌물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어찌하여 정의의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으시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죄를 지어도 바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돌이킬 기회를 주시며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 인내를 악용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가정을 맡은 이들이 서로에게 신실한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지켜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7.27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
말라기 5강말라기 2:1-9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

제사장은 번제단과 향단에서 백성의 속죄를 위해 일하고, 그 직무의 뿌리에는 레위와 맺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입술이 지식을 지키고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제사장들은 뇌물을 받고 병든 제물을 바치며, 백성에게 진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사자이기에, 그가 전하는 말씀에 따라 한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립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을 통해 말씀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기 제물의 똥을 제사장의 얼굴에 바르겠다고, 성막 밖으로 버려지듯 그들을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심판은 제사장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가족과 백성 전체에게 미칩니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못하며,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에 죄는 여전히 죄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언약을 지킬 때,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7.13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말라기 4강말라기 1:10-14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제사장들이 건강한 제물은 자신이 갖고 병든 것만 골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조상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배우고 그 보호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감사 대신 하나님의 이름과 법을 멸시했고, 인자와 자비가 계속되자 도리어 말대답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반면 이방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겪었기에 오히려 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훗날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의 역사로 이어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며 돌이키는 믿음을 붙들었습니다. 세상 총독에게도 하지 못할 일을 하나님께 거침없이 행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29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말라기 3강말라기 1:6-9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제사장들이 부정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도, 어떻게 주를 더럽게 했느냐고 말대답을 합니다. 건강한 소와 양은 자기 몫으로 챙기고 병들고 눈 먼 것만 골라 제단에 올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사람도 받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죄인 줄 모르는 것, 그것이 바로 강퍅해진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온전한 섬김이 곧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권세자에게는 좋은 것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드릴 것은 계산하고 아까워하는 마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정직한 예배와 정직한 헌금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5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말라기 2강말라기 1:3-5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에서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쌓은 것을 헐겠다고 경고하셨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며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돌로 만든 작품은 오래도록 형태를 지키지만 모래로 만든 작품은 파도 한 번에 무너집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견고히 세운 신앙은 돌처럼 남지만, 겉으로만 충만한 신앙은 모래처럼 쉽게 흩어집니다. 에돔은 스스로 힘을 자랑했지만, 하나님이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자 스스로 무너져 결국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면 변명하지 말고 돌이켜야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갔을 때 환대받은 것처럼, 쌓은 것이 자꾸 무너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다시 가까이 오라 두드리시는 신호입니다. 교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야곱이 받은 사랑과 축복을 그대로 받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1강말라기 1:1-3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지만 100년이 지나도록 기대했던 영광이 오지 않자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온전히 드리지 않았고, 제사장들도 함께 타락하여 이혼과 이방 여인과의 혼인이 이어졌습니다.

풍요를 주지 않는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이 아니었기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하나님이 갑자기 변덕을 부린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를 통해 오래전부터 경고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릴 만큼 은혜를 가볍게 여겼기에 복을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경고하십니다. 그 경고는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려는 사랑입니다. 지금 형편이 풍요롭지 않다고 불평하지 말고, 고난조차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 회개하고 감사하면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로 바뀝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18
형제를 미워한 에돔이 받은 심판
오바댜

형제를 미워한 에돔이 받은 심판

에돔은 험준한 산악 지형에 자리 잡아 어떤 강한 적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침공당하던 날, 에돔은 형제 나라를 돕기는커녕 약탈에 가담하고 도망치는 사람을 잡아 넘겼습니다.

에돔이 심판받은 이유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때부터 에돔을 형제라 부르시며 보호해 주셨지만, 잘 살게 되자 그들은 교만해졌고 힘 있는 쪽에 붙어 형제를 버렸습니다. 결국 그들이 유다에게 행한 그대로, 동맹국에게도 바벨론에게도 배신을 당했습니다.

에돔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야곱의 후손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은 수백 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형제의 어려움을 방관하는 것도 죄가 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이며, 그 심판은 훗날 온 세상을 향한 심판으로 이어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4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 [부활절]
마태복음마태복음 11:26-30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성도 [부활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덤을 열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 부활의 자리에서 열병을 앓던 여인과 과부가 은혜를 입었던 것처럼, 죽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무너진 것은 죽음이지 하나님의 약속이 아닙니다. 사람이 만든 협박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계획된 뜻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성전에서 함께 떡을 나누고도 예수님을 배신한 제자가 있었고, 죽어도 따르겠다 맹세했다가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한 제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연약함까지 아시는 그리스도는 끝까지 그들을 붙드셨고, 부활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 대신 담대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