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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인간의 무지
전도서 14강전도서 7:19-29

하나님의 지혜를 버린 인간의 무지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백성을 다스리고 명판결을 내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이 커지자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고 아첨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의 지혜는 교만과 정욕의 냄새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이는 은혜를 자기 의로 착각한 결과입니다. 사람의 칭찬을 마음에 두는 순간 은혜는 밀려나고, 하나님을 떠난 자리에는 분별력 대신 욕심과 우상이 들어찹니다. 솔로몬 자신도 훗날 그 시절이 헛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성도는 사람들의 말에 마음을 두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는 악한 것을 피할 수 있지만, 지혜를 버린 자는 스스로 올무에 붙잡힙니다. 머리에 서리가 내리기 전, 말씀을 들은 지금 돌이켜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14
여러분은 지혜자인가 우매자인가-
전도서 13강전도서 7:8-18

여러분은 지혜자인가 우매자인가-

공부를 오래도록 성실히 해온 아이와 벼락공부로 성적만 맞추는 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열심히 살아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가 있고, 정직하게 산 사람이 오히려 더 낙심할 수 있습니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았다고 말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고 과거만 회상하는 신앙은 그 자체가 불신앙입니다. 형통과 고난을 사람이 헤아릴 수 없게 하신 것은, 인생이 결국 하나님께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지나치게 의롭다 여기거나 지나치게 지혜롭다 여기는 것도, 지나치게 악하거나 우매한 것도 다 스스로를 패망으로 이끕니다. 구원은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와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연약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사람이 지혜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7.7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빌립보서 9강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며 두려워합니다. 바로왕과 싸워 이겨야 했고, 자기 혼자였다면 견딜 수 있었을 시험도 백성의 믿음까지 책임져야 하니 훨씬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지나온 백성들은 그 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는, 물 한 모금을 놓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큰 은혜를 받은 다음이 가장 위험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 무언가를 더 달라고 찔러보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그 백성을 마음 밖에 내놓지 못해서 화를 내고, 그 서운함에 넘어져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고통과 복음 전하는 사명을 섞지 않고, 고통은 마음 밖에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넘어지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면 모든 일에 실패합니다. 겸손한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평강을 주시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28
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전도서 12강전도서 7:1-7

좋은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여호수아가 순종하여 여리고 성이 무너지고, 그의 이름은 열방에 알려집니다. 함성을 지르기 전까지 그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고, 그 순종 뒤에 하나님께서 친히 그 이름을 높이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신앙과 인격과 살아온 시간을 담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산 사람의 이름은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지만, 사람의 칭찬을 얻으려는 헌신은 겉으로는 화려해도 열매가 없습니다. 값비싼 향유의 향기가 잠깐이듯, 사람을 높이는 헛된 이름도 금방 사라집니다.

탐욕과 뇌물은 아무리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도 무너뜨립니다. 자신의 이름을 세우려던 교만은 결국 재로 남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산 사람은 그 곁에서 함께 불리는 이름이 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이름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선하게 쓰라는 말씀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9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8강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도 십자가 앞에서 두려움에 배신했습니다. 훗날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생명책을 직접 보고 나서야, 자신의 죄와 그날 다하지 못한 믿음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히지 않고, 믿음이 자랄수록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다툰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각자 자기 판단과 자존심을 앞세우며 "이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 말했지만, 그 속에는 자기 뜻을 굽히기 싫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지식과 자기주장으로 풀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하고, 성령께 맡기고 잠잠히 참으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해결하십니다. 그렇게 관용하며 산 삶이 그대로 보좌 앞 책에 기록되고, 하나님은 그 삶을 보고 계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2
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전도서 11강전도서 6:1-12

받은 은혜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하나님을 경외했고, 전쟁에서 승리하며 나라를 크게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름이 애굽 변방까지 퍼지자 그는 서서히 변질되어, 자신의 지혜와 전략으로 이룬 성공이라 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분향을 자신이 하겠다며 성전에 들어갔고, 제사장 아사랴가 간곡히 말렸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교만은 한순간에 오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과 권력, 사람들의 칭찬이 하나님께 감사하던 마음을 서서히 가리고, 제사장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이미 마음이 사탄에게 넘어갔다는 증거입니다. 웃시야는 이마에 문둥병이 생기는 심판을 받아 죽는 날까지 별채에 갇혀, 왕의 권세도 누리지 못하고 왕의 묘실에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받은 은혜가 아무리 커도 감사를 잊고 교만해지면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빼앗깁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웃시야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그의 선택이 관계를 해친 것입니다. 받은 은혜를 빚으로 여기며 감사하는 사람이 끝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5.26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성도들
전도서 10강전도서 5:10-20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성도들

솔로몬은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재물과 권력을 다 가져본 그가 이 말을 하는 것은, 탐심이 한번 빠지면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이라는 것을 몸소 겪었기 때문입니다.

금덩이를 주운 형제 이야기가 그것을 보여줍니다. 형제는 금을 나눠 갖자 서로를 미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금을 강물에 던져 버립니다. 문제는 금덩이가 아니라 금덩이 앞에서 변하는 사람의 마음이며, 그 욕심은 결국 사탄이 넣어 주는 것입니다.

사람은 벌거벗고 태어나 벌거벗고 돌아가며, 수고하여 얻은 것을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얻은 재물은 움켜쥘 것이 아니라 나누고 흩어 구제하는 데 써야 하며, 인생의 무거운 짐은 자신이 지지 않고 그리스도께 맡겨야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5.12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전도서 9강전도서 5:1-9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성전에 들어갈 때는 발을 삼가고, 말을 함부로 내지 말라고 합니다. 제물을 많이 드리는 것보다 말씀을 듣는 것이 낫고, 서원했으면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사람은 땅에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나온 말과 지키지 않는 서원은 그 자체로 죄가 됩니다. 아벨과 가인의 제사가 갈린 것도 제물이 아니라 평소의 삶 때문이었습니다.

빈민을 학대하고 공의를 짓밟는 자들을 보아도 이상히 여길 것 없습니다. 그들보다 높으신 분이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성도가 되어, 서원했다면 지키기 바랍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4.28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도서 8강전도서 4:7-16

세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 자리에서 진심을 나눌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권력과 재물을 가졌지만 자신을 세우는 데 지혜를 쓰느라 백성을 고통 속에 두었고, 죽은 뒤 나라는 둘로 갈라졌습니다. 반면 다윗은 쫓겨 다니는 인생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피하려 애썼고 백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었습니다.

세상에 쌓은 것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쌓은 믿음은 세겹줄처럼 끊어지지 않습니다. 곁에 진실한 믿음의 형제가 있으면 사탄의 시험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서로를 붙들어 줄 수 있습니다. 재물이든 지위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쌓은 사람에게는 그런 형제가 남지 않습니다.

땅을 넓힌 왕도, 지혜로웠던 왕도 한 세대가 지나면 잊혀집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은 업적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한 믿음뿐입니다. 겸손과 사랑으로 곁의 사람을 세우며 세겹줄 같은 믿음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헛된 인생을 값진 인생으로 바꾸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4.21
위로자가 되어 주시는 성령
전도서 7강전도서 4:1-6

위로자가 되어 주시는 성령

욥은 하나님께 재산과 자녀와 건강을 다 빼앗기고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도엑은 제사장 팔십오명과 놉 성읍 사람들을 죽여 세상의 편에 섰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백성의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호소를 거절해 나라를 갈라놓았습니다.

말로만 하는 위로는 위로가 아닙니다. 가진 것을 나누지 않는 사람에게는 위로자가 없고, 그런 사람은 사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반면 욥과 바울처럼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는 매 순간 위로하시는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성령은 세상 어떤 권세자보다 강한 보호자시며, 부모도 줄 수 없는 참된 위로를 주십니다. 솔로몬은 재물과 권세를 쥐고도 마음이 불안했던 인생을 후회했지만, 한 손에는 재물을, 한 손에는 믿음을 쥐고 사는 사람은 사탄이 공격할 빌미조차 없습니다. 오늘 믿음으로 살아야 인생의 끝자리에서 후회하지 않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4.7
아버지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아버지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히는 고통 가운데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막달라 마리아 앞에 가장 먼저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은 빈 무덤을 보고도 크게 기뻐하지 않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반면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람으로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결국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끝까지 붙드는 진심을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부활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갔던 제자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뒤에야 두려움을 벗고 증인으로 나섰습니다. 그 부활을 믿는 사람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3.31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만들어진 사람들
전도서 6강전도서 3:11-22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만들어진 사람들

사람이 죽으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됩니다. 다시 와서 남은 일을 끝낼 수도, 가족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짐승과 사람이 숨 쉬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같지만,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땅으로 내려간다는 점이 다릅니다.

거룩한 영을 가진 사람이 짐승처럼 산다면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 죄를 심판받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병에서 십오 년을 더 살고 낳은 아들이 므낫세였고, 그 아들은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자식을 불에 지나가게 하는 악을 행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서도 세상에서 호의호식하던 부자는 지옥에서 물 한 방울을 구걸했고, 굶주리던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세상의 근심을 모두 잊었습니다.

내일 일을 알 수 없기에 사람이 할 일은 오늘을 선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뿐입니다. 곁에 있는 사람을 자기 감정과 자존심 때문에 아프게 하지 말고, 살아 있을 때 사랑하고 용서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그렇게 오늘을 믿음으로 채운 사람은 죽음이 두렵지 않고, 이 땅에서도 천국의 평안을 미리 누립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