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설교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복음 1강마가복음 1:1-8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마가는 베드로가 순교하는 것을 보며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그가 남긴 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이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섬기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신 이야기입니다. 세례 요한은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하며,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 가운데도 회개할 것이 없다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은 구약의 모든 율법과 제사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뜻입니다. 물세례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고,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주시는 은혜로 그분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고도 말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면 성령이 충만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잡히시던 밤 두려워 도망친 사람이 있었다는 사건을 기록해 두었는데, 성경은 그 사람이 마가라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이후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믿음이 자랐고, 베드로와 바울이 떠난 자리를 채우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이 자라는 데는 사람마다 시간이 다르니, 연약한 형제를 사랑으로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4.26
주일의 의미 (부활절)
요한복음

주일의 의미 (부활절)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쭙습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으로 답하시며, 죄 사함을 구하라는 말씀은 도덕적 잘못을 뉘우치라는 뜻을 넘어 하나님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하라는 요청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죄는 열매 자체가 아니라, 스스로 선악을 판단하는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이 단절을 회복하셨고, 죽으실 때 성소 휘장이 찢어져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열렸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 곧 주일마다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평강하라" 하십니다.

주일은 습관적으로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 일대일로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찬양과 말씀에 마음을 다해 집중할 때 상한 심령이 치유되고 엿새를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평강과 자유를 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4.5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복을 받은 성도
유다서 8강유다서 24-25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복을 받은 성도

요셉은 형들의 질투로 노예가 되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해 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서 만난 술 관원장을 통해 바로 왕 앞에 서게 되고, 꿈을 해몽한 뒤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요셉이 겪은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요셉은 불평하지 않고 복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판 형들에게 오히려 근심하지 말라며 위로했습니다. 이런 순종과 자기희생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줍니다.

세상을 향한 욕심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고난처럼 보여도, 그 길 끝에서 하나님은 보호와 복을 예비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흠 없이 설 수 있게 된 성도는 사막에서 물 한 방울을 아끼듯 그 은혜를 소중히 간직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3.15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
유다서 7강유다서 17-23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성도

교회에서 거짓교사들은 겉으로 진리를 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사탄의 종이었습니다. 두 하인이 물을 길을 때 한 사람은 작은 물동이로 게으름을 피우고 한 사람은 큰 물동이로 힘써 채웠는데, 주인은 지켜보지 않아도 항아리에 찬 물로 그 차이를 압니다.

성령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본성을 이기는 자와 본성대로 사는 자의 차이입니다. 구원의 조건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지만 그 다음은 선한 양심과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이며, 하나님은 그 삶 전체를 보고 판단하십니다. 죄의 경중을 따지지 않으시므로 한 가지 악한 선택도 이미 선한 법에서 돌아선 것입니다.

의심하는 형제를 판단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며 품어야 합니다. 자신의 외식하는 신앙이 있다면 결단코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죄를 버려야 그리스도의 보호를 받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신을 세우고 성령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3.1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에녹
유다서 6강유다서 14-16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언한 에녹

유다는 거짓교사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인하며 성도들을 속이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미 그리스도의 재림과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심판을 예언했음을 상기시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했고,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하늘로 들림 받았습니다. 이 사실이 믿어져야 그가 전한 예수님의 대속과 부활, 승천과 재림도 믿어집니다. 에녹의 믿음은 아담에게서 므두셀라와 노아에게로 이어져, 노아가 홍수 심판 앞에서 즉시 순종할 수 있었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이 저지른 모든 말과 행동은 남김없이 기록되어 마지막 날 심판대에 세워집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모든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졌듯, 그리스도의 재림과 세상의 심판도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결하고 정직한 믿음으로 담대히 그 날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2.15
유리하는 별
유다서 5강유다서 10-13

유리하는 별

세상은 사랑과 관심이 식어지고 이성 없는 짐승처럼 본능으로만 사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잃은 영혼은 쉴 곳을 찾지 못하고 유리하는 별처럼 떠돌며 살아갑니다.

이것은 사탄이 하나님과 사람을 갈라놓으려는 것입니다. 가인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해 질투로 동생을 죽였고, 발람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기도를 반복했고, 고라는 자기 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세의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처음에는 하나님을 알았지만 탐욕과 교만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이런 반역의 길을 따라가며 죄의식 없이 성도들 사이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아름다운 별이며, 무거운 짐을 지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어야 합니다. 유한한 세상을 넘어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끝까지 그리스도께 뿌리내려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2.1
겸손한 아론과 교만한 사탄의 선택
유다서 4강유다서 6-10

겸손한 아론과 교만한 사탄의 선택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가라고 명하시는데도 모세는 순종하지 못합니다. 기적을 여러 번 보고도 입이 둔하다는 이유로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형 아론이 대신 대언자로 세워집니다.

아론은 모세 못지않게 많은 기적을 직접 행하고 많은 일을 감당했지만, 모세라는 큰 인물 곁에 있었기에 그 공적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서지 않고 동생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 섬겼습니다. 반면 타락한 천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위를 당연하게 여기다 그 자리를 벗어나 교만해졌고,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도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를 저버려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리를 지키는 것이 겸손이고, 그 자리를 떠나는 것이 교만입니다. 아론은 순종하고 섬겼기에 대제사장이 되어 자손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세워 주신 지위를 지키며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성도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1.25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 성도
유다서 3강유다서 5-8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 성도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해방된 뒤에도 조금만 힘들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정탐꾼 열 명의 부정적인 말을 듣고 가나안 앞에서 주저앉았고, 고라 자손은 모세의 자리를 넘보다가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은 자리입니다.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도 어려움이 오면 그 모든 것을 잊고 인간적인 판단으로 돌아섰습니다.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이미 그 땅을 주셨다는 말씀을 붙들고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안다고 해서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는 말씀을 기억하고 삶으로 살아내야 하며, 은혜를 잊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을 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2.14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라
유다서 2강유다서 3-4

믿음의 도를 위하여 싸우라

유다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 밝히며, 성도들에게도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해 힘써 싸우라고 권합니다. 은혜를 맛보고도 타락한 자는 다시 회개하기 어렵다고 말하며, 가만히 교회로 들어와 은혜를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그리스도를 부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성도가 실족하는 것은 사탄이 강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유혹을 받아들인 결과이므로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비를 내리시지만, 그 은혜를 받은 마음이 옥토가 되어 열매를 맺을 수도, 욕심과 정욕으로 가시와 엉겅퀴가 무성한 밭이 될 수도 있습니다. 거짓교사들이 전하는 말은 물 없는 샘과 같아서 처음엔 그럴듯해 보여도 갈증만 더할 뿐, 실제로는 아무 것도 채워주지 못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구원을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하며, 그 싸움의 상대는 게으른 자기 자신일 수도, 사탄일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한 번 실패해도 물러서지 않고 방심한 틈을 파고들기 때문에, 회개한 심령일수록 말씀 안에서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시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옳은 행실로 죄를 이기는 것이 재림 주를 기다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2.7
예수그리스도의 종
유다서 1강유다서 1-2

예수그리스도의 종

예수님의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가 능력을 보이라고 재촉합니다. 그들은 초막절 명절에 사람 많은 곳에서 유명해지길 바랐지만, 예수님은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메시아로서 표적을 보이신 것입니다. 유다는 그 형제들 중 하나였고,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을 직접 본 뒤에야 형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형제조차 처음엔 믿지 못했다는 것은, 복음을 전한다고 사람이 곧바로 믿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진심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뛰어가 전했고, 사람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왔지만 결국 자기 귀로 듣고 스스로 믿었습니다. 복음을 전한 사람이 그 결과까지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밝히며 편지를 씁니다. 성도는 세상과 섞이지 않고 흰옷을 거룩하게 지켜야 하며, 전한 말씀대로 사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그리스도까지 조롱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영접하셨으니, 그 사랑에 합당하게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1.23
공의로운 해가 되시는 그리스도
말라기 11강말라기 4:1-6

공의로운 해가 되시는 그리스도

이스라엘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부르짖다가 삶이 편안해지면 다시 형식적인 제사와 흠 있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 제사로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

말라기는 초림 예수님을 전할 마지막 선지자로 세례요한을 가리켰고, 세례요한은 형식적인 신앙을 책망하며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은, 엘리야 앞에서 결정을 미루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처럼, 선악을 분명히 가르고 말씀을 늘 상고하며 사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성도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고, 고삐 풀린 송아지처럼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심판과 구원의 완성이므로, 지금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만, 믿지 않은 세상은 진노의 불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1.2
여호와 앞에 펼쳐져 있는 기념 책
말라기 10강말라기 3:16-18

여호와 앞에 펼쳐져 있는 기념 책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에게 책망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악인이 번성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들도 있었고 그들의 말과 결단은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 책에 낱낱이 기록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심판대 앞에 많은 책이 펼쳐진 환상을 보았고, 훗날 제자 요한도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대로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악인의 죄와 의인의 선행이 마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지만, 심판의 날에는 하나는 그리스도의 품으로, 하나는 심판으로 갈라집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리기까지 순종했던 것처럼,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라야 기념 책에 새겨집니다.

성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천국과 심판이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핍박과 환난이 닥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 하게 됩니다. 기회가 있을 때 죄를 회개하고 진리 안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영원한 축복을 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