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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사사기 23강사사기 21:20-25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베냐민 지파를 심판하는 자리인데, 그들이 가장 먼저 정한 것은 회개가 아니라 자기 딸을 내주지 않겠다는 맹세였습니다. 그 맹세 때문에 베냐민 지파가 몰살당하자, 이번에는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생겼느냐고 원망합니다.

자기들이 잘못해 놓고 그 결과를 하나님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그 죄를 덮기 위해 이번에는 죄 없는 약한 마을 사람들을 희생시키고, 여인들을 강제로 끌고 와 자기 맹세를 지키는 시늉을 합니다. 겉으로는 규율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잔인한 이스라엘의 실체가 드러난 것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은 회개도, 돌이킴도 아닙니다.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다는 말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이 왕으로 계셨는데도 그분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산 결과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9.29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
사사기 22강사사기 20:17-28

타락한 이스라엘의 죄

레위인은 밤길에 기브아에서 하룻밤을 묵다가, 자신을 노리는 무리 앞에서 아내를 밖으로 내어 줍니다. 아내는 밤새 죽임을 당했고, 레위인은 그 시체를 열두 조각으로 잘라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냅니다. 이스라엘은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 지파를 심판하기로 만장일치로 정합니다.

레위인은 자기 잘못은 감추고 억울함만 부풀려 전했고, 이스라엘은 그 말만 듣고 분노했습니다. 하나님께 여쭈어 유다가 먼저 올라가라는 응답을 받고도 두 번이나 크게 패했는데, 그것은 이 전쟁에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셨다는 뜻이었습니다. 울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회개 없는 제사와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베냐민은 결국 몰살당해 육백 명만 남았고, 이스라엘은 그제야 뉘우쳤지만 진짜 회개로 나아가지 못하고 야베스 길르앗 사람들을 죽여 또 다른 죄를 쌓았습니다. 변질된 베냐민의 죄는 곧 타락한 이스라엘 자신의 죄였습니다. 형제의 허물을 보기 전에 자기 죄부터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9.22
사탄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사사기 21강사사기 19:22-30

사탄에게 패배한 이스라엘

한 레위인이 첩을 데리고 길을 가다가 기브아에서 하룻밤을 묵습니다. 성읍의 무리가 몰려와 그를 내놓으라 협박하자, 레위인은 자기 대신 첩을 그들에게 내주었고 여인은 밤새 욕을 당한 끝에 문지방에서 숨을 거둡니다.

레위인은 백성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 목숨을 지키려고 아내를 내주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을 붙들어야 할 첫 단추가 이미 무너졌다는 뜻입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면 그 다음 단추도 똑같이 어긋나듯, 레위인이 무너지자 백성 전체가 함께 무너졌습니다.

첫 단추부터 다시 끼우려면 시간이 걸리지만, 성도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가장 빠른 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흔들려도, 누가 인도해주지 않아도, 말씀의 등불을 스스로 높이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9.15
미가의 우상과 제사장
사사기 20강사사기 17:7-13

미가의 우상과 제사장

돈을 훔친 아들이 저주받을까 두려워, 미가의 어머니는 죄를 덮어주고 오히려 신상을 만들어 여호와께 드립니다. 갈 곳 없던 레위인은 은 열과 옷 한 벌에 미가의 개인 제사장이 되고, 미가는 이제 하나님께서 복 주실 것이라 기대합니다.

내 아들이 저주받는 것만 안 되는 마음이 곧 아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죄를 바로잡는 대신 복 받기를 앞세우면 회개할 기회조차 사라집니다. 제사장이 생계 때문에 한 가정의 복이나 빌어주는 자리로 내려앉듯, 헌금과 기도를 드렸으니 형통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나님을 만난 적 없는 사람의 말입니다.

세상의 성공만 바라는 부모의 욕심은 자녀의 죄를 덮고 회개의 길을 막습니다. 하나님은 개인의 형통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정직한 믿음을 보시고 때를 따라 축복하시는 분입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지 못하면 미가와 그 어머니, 레위인과 단 지파처럼 떠돌다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8.25
사사로 20년을지낸 삼손
사사기 19강사사기 16:21-28

사사로 20년을지낸 삼손

삼손은 유다 사람들에게 넘겨져 블레셋 앞에 결박된 채 끌려갑니다. 손이 풀리자 다시 천 명을 죽이고, 들릴라에게 결국 자기 힘의 비밀을 털어놓아 두 눈을 잃고 맷돌을 돌리는 노예가 됩니다.

무너진 것은 삼손의 힘이 아니라 그의 신앙이었습니다. 자기 행동의 책임을 늘 상대에게 돌리고 자기 생각이 옳다는 틀에 갇혀 있었기에, 힘을 가지고도 하나님과 함께 일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과 자기만 아는 비밀인 나실인의 서원을 스스로 버렸을 때, 하나님의 권능도 그를 떠났습니다.

사사로 살아야 할 20년을 인간적인 복수와 정욕으로 흘려보낸 삼손처럼, 맡겨진 시간을 허비하고도 핑계 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할 일과 목적과 결과까지 이미 다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자신을 돌아보며 살 때, 부끄럽지 않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8.18
삼손을 잉태한 마노아부부
사사기 17강사사기 13:1-7

삼손을 잉태한 마노아부부

마노아 부부는 아기가 없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내에게 직접 찾아와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하시며, 포도주와 독주를 끊고 부정한 것을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태에서부터 죽는 날까지 나실인으로 살 아이를 위해, 부모가 먼저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아기를 그냥 주실 수도 있었지만, 귀한 것을 담을 그릇을 먼저 정결하게 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모두가 마시는 것을 마시지 않는 삶은 힘들지만,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서 유난스럽다는 말을 듣기 싫어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의 이름을 기묘라 하셨는데, 이는 사람의 이해를 초월한 하나님의 속성이며 구약에서 메시야를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삼손은 그렇게 특별한 은혜와 부모의 헌신 속에 태어났지만, 온전한 인격과 순결한 믿음을 지키지 못해 강한 힘이 오히려 화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사랑을 어떻게 간직하고 사용하느냐는 사람의 몫입니다. 성도 역시 나실인으로 부름받은 존재이니, 부서지고 낮아진 마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께서 맡기시는 영혼을 감당할 준비를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7.28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사사
사사기 16강

백성들에게 신뢰받는 사사

에브라임 사람들이 입다를 찾아와 전쟁에 부르지 않았다고 시비를 걸며 그와 그 집을 불사르겠다고 협박합니다. 입다는 이를 책망했고, 두 편이 맞붙어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에브라임은 기드온 때도 같은 불평을 한 적이 있었고, 그때 좋은 말로 넘어갔던 경험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방식이 통할 줄 알았습니다. 자신은 희생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중심에만 서려는 욕심이 반복된 것이고, 시기와 질투는 억누르지 않으면 결국 사람을 해치는 데까지 자라납니다. 입다 역시 사사로 세워진 6년 동안 상류층으로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딸을 번제로 바치는 서원을 했고, 그 대가로 가장 귀한 것을 잃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알지 못하기에, 오늘을 후회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사들이 하나님보다 자기 집안과 부귀영화를 좇으면서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고, 그 결과 이스라엘은 신앙을 잃고 40년간 블레셋의 압제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든 성도든 하나님께 먼저 인정받는 삶이라야 사람에게도 참된 신뢰를 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5.19
입다의 서원으로 죽어야 하는 딸
사사기 15강사사기 11:29-35

입다의 서원으로 죽어야 하는 딸

전쟁을 앞둔 입다는 암몬을 이기게 해 주시면 집에서 가장 먼저 나와 자신을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물로 드리겠다고 서원합니다.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온 그를 맨 먼저 맞으러 나온 것은 무남독녀 외동딸이었습니다.

이복형제들에게 쫓겨나 하류계층으로 살던 입다는 길르앗의 머리가 되자, 자신을 먼저 맞이하는 사람쯤은 하인일 것이라 여기고 번제로 바쳐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서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딸이 제일 먼저 뛰어나오는 그 순간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허물 때문에 죽어야 하는 딸의 고통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죽으신 예수님의 고통을 떠올리게 합니다.

서원은 욕심이 아니라 받은 은혜에 감사해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억울함과 복수심이 있어도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하며, 순전한 믿음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5.12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사사기 14강사사기 10:6-13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이 다시 우상을 섬기다가 압제를 당하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번에는 다르게 응답하십니다. 애굽과 아모리, 암몬, 블레셋에서 건져 준 일을 낱낱이 상기시키신 뒤, 이제는 너희가 택한 그 신들에게 가서 구해 달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필요할 때만 하나님을 찾고, 평안이 오면 다시 하나님을 버리는 삶을 반복했습니다. 사사들 중에도 백성에게 참된 신앙을 남긴 이와, 부와 자녀의 번성으로 백성이 세상을 부러워하게 만든 이가 나뉘었습니다. 지도자가 무엇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백성이 하나님을 향하기도, 우상을 향하기도 했습니다.

성도가 자신만을 위해 살면 결코 행복할 수 없고, 하나님을 반복해서 버리면 결국 응답받지 못하는 자리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잠깐이라도 진심으로 드린 충성은 잊지 않고 기억하십니다. 불평과 욕심과 자기 의를 내려놓고, 자신을 낮추어 희생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맺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5.5
영광의 자리에서 넘어진 기드온
사사기 12강사사기 8:21-28

영광의 자리에서 넘어진 기드온

기드온은 미디안 왕 세바와 살문나를 잡아 전쟁을 완전히 끝냅니다. 그런데 승리한 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낙타 목에 걸린 초승달 장식을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이어 백성들에게 전리품을 모아 달라 해서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습니다.

고난 중에는 하나님을 붙들다가도 그 고난을 벗으면 자기 판단이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무너지는 것이 사람입니다. 기드온이 에봇을 만든 자리는 예전에 바알 제단을 허물었다가 죽을 뻔했던 그 오브라였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랑과 복수를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기드온이 그 뒤로 사십 년을 평안히 다스렸지만, 그 침묵은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에게 말씀하지 않으신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리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입니다. 최고의 영광의 자리에 서도 넘어지지 않으려면, 그 자리를 주신 이를 잊지 말고 늘 감사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4.7
사사의 인격을 갖추지 못한 기드온
사사기 11강사사기 7:9-16

사사의 인격을 갖추지 못한 기드온

기드온은 하나님께 양털 시험을 두 번이나 요구하며 응답을 확인하고서도, 전쟁 전날 밤 삼백 명만 남은 진영에서 다시 의심하고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에게 부하를 데리고 적진에 내려가 그들의 말을 들어 보라고 하시고, 적진에서는 보리떡 꿈 이야기를 통해 승리를 미리 알려 주십니다.

기드온의 인격은 끝까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보여 주고 알려 줘야만 겨우 한 걸음 옮기는 신앙이었고, 하나님은 그런 그의 수준에 맞춰 계속 응답해 주셨을 뿐입니다. 삼백 명만 남기신 것도, 항아리와 횃불과 나팔로 승리를 주신 것도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백성들이 알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승리를 거두었지만 자신의 인격을 바꾸지 않아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었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담은 항아리를 깨야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횃불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의심 많은 신앙을 버리고 정직한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3.31
기드온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사사기 10강사사기 6:25-32

기드온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밤에 종 열 명을 데리고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상을 찍어 번제를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아침에 이를 보고 분노해 몰려오자 기드온은 담대히 나서지 못하고 아버지 뒤에 숨었고, 요아스가 지혜로운 말로 아들을 살렸습니다.

둘째 수소를 드리라 하신 것은 곧 기드온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예물을 받으시고 죽지 않을 것을 약속하시고 백성의 인정까지 받게 하셨는데도 기드온은 다시 양털 이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더 큰 계획 때문에 그 요구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성전도 신앙의 연륜도 완전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이 온전히 사명을 감당할 때까지 끝까지 참고 기다리십니다. 기드온은 훗날 하나님을 배신하는 자리에 앉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를 향해 보이신 사랑은 조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9.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