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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Yahweh, Do Not Change — Expository Sermons on Malachi · Cho Chun-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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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No Pleasure in You

Malachi 1:10-14

10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식탁은 더러워졌고 그 위에 있는 과일 곧 먹을 것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14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소유가 많고 적음에 따라 신앙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은 돈과 권력으로 살 수 없는 아주 큰 은혜인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 거침없이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절대로 기만할 수 없는 거룩한 분입니다. 창조주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왜 나에게 좋은 환경을 주지 않았느냐고 불평하는 것 자체가 죄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였기 때문에 마치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죽은 신인 것처럼 악하게 살았습니다. 은혜를 쓰레기처럼 버린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조롱하며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살았으면 서도 이방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하나님을 세상의 신들 중 하나로 가치 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조상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보호가 사라지면 이방나라로부터 공격을 당하거나 포로가 되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을 잘 섬겼을 때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자신들 역시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동안 포로로 살다가 귀환했기 때문에 말씀의 성취를 직접 삶으로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이름과 법을 무시하고 멸시했으며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제사를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차라리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성전 문을 닫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면 그 죄를 기억하지 않는 자비하신 분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만세전부터 십자가를 계획하셨고 그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제사법을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 법을 무시하며 인자하신 하나님을 조롱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고,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고, 사악한 자에게는 그의 소원을 이루어 주지 않는 분입니다. 이렇게 받은 그대로 돌려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성품을 볼 때 더러운 제물을 드린 제사장들이 받게 될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성문을 닫기를 원하시는 것을 보면 이제 그들은 용서받을 기회조차 없게 된 것입니다.

말라기 1장 1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혹시 백성들이 죄사함을 받지 못할까 봐 마음을 다해 제사 드려야 하는 제사장이 타락했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방 민족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이름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는 이방 민족이 하나님을 섬길 것이고, 각처에서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의 역사를 예언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타락을 안타까워하시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이방인의 구원이 있을 것을 예언해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으로 구원의 역사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희생에 감사하는 이방인들이 온전한 제사를 드리며 구원의 역사에 동참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성령과 진리로 드리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거룩한 믿음으로 6일의 삶을 살아낸 성도들이 성령의 인도하심과 진리안에서 참 된 예배를 드리기 원하고 계십니다. 예배를 실패하면 영적인 것뿐 아니라 세상과 인간관계를 잘 유지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사라지면 목적이 없는 인생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찬양과 기도 그리고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야만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이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지혜롭고 명철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진심으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고 있습니까? 세상의 모든 문제와 사람의 관계를 지혜로 해결하고 있습니까? 상황에 따라 한편으로는 기뻐하고 한편으로는 슬퍼하는 삶을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지 못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감동을 받고 죄를 용서해 주시는 사랑에 감격해야만 죄를 멀리하는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세상과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지혜롭게 그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절대자입니다. 이방 민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기 위해서 자신들을 심판하신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도리어 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일방적으로 보호를 받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얼마나 가식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무한 반복해서 죄를 용서받는 상황이 지속되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무시했고 멸시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잘해 주실 때 더 겸손하게 순종해야 하는데 인자와 자비를 지속적으로 베풀어 주시자 말대답을 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백성들의 교만을 보시고 더 이상 은혜를 줄 수 없다고 판단하셨기에 제사조차 받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그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데 하나님이든 사람이든 더 이상 얻을 이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쉽게 버리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 다윗 왕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기 때문에 사울을 피해 굴에 숨었던 위급한 상황에서도 이렇게 기도드릴 수 있었습니다.

시편 57편 1-2절

1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호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분명히 자신을 돕기 위해서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악한 자에게 내어주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이 쫓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믿음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풀어 구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사울에게 포위되어 도망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어미가 날개를 펴서 비바람으로 부터 새끼를 보호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서 아버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기에 그는 죽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망설이지 않고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강한 믿음을 가진 그는 초자연적인 역사를 통해 자신을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기에 악한 사울을 물리쳐 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살면서 좌우로 흔들릴 때도 분명 있었지만 곧바로 중심을 잡고 돌이키는 믿음과 죄를 회개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윗처럼 자신의 죄를 깨달았을 때 밤을 새워 회개하고 즉시 돌이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과 인격을 갖추었기에 자신을 신뢰하시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었습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자존심 그리고 욕심을 버리지 못해서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의를 버리고 즉시 회개하는 것도 믿음이 있어야 하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만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본성을 아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평생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습니다. 매 순간 문제를 잘 분별하면서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잘못된 결정했을 때 돌이킬 줄 아는 성도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사는 6일의 삶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세상을 우상처럼 숭배한다면 거짓말과 도둑질과 정욕을 버리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이 드리는 예배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합하기 위해서 노력할 때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윗처럼 세상을 심판해 달라는 기도를 할 수 있으며 악한 자들이 스스로 멸망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유혹도 받고 욕심도 가질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그 모든 것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결단하는지 그 믿음을 먼저 보시기 때문에 다윗처럼 언제나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기 위해서 노력할 때 여러분이 간절하게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악한 사울과 같은 자의 손에서 건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은혜를 기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말라기 1장 13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 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법대로 정직하게 봉헌물을 드리는 것이 번거롭다고 생각해서 자기들 마음대로 제물을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구별해서 드릴 수 있는 권한을 받았지만 이 특별한 권한을 이용해서 건강한 제물은 자신들이 갖고 병들고 약한 제물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이 병든 제물을 몰래 드려도 백성들은 이들의 죄를 알 수 없었지만 그런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몰래 하는 이런 행동은 얼마든지 사람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충성하던 사람도 영적으로 타락하면 제일 먼저 자기의 죄를 하나님께서 모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토록 충만했던 믿음도 욕심에 가려지면 제사장처럼 백성들의 죄를 사해 줄 제물을 취하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에서도 타락한 제사장과 같은 신앙을 볼 수 있는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더 많은 재물과 무병 장수와 자손의 번창과 같은 기복신앙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며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도, 자신이 원하는 말만 듣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과 어긋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헌금과 헌신을 드린 자신의 노력과 정성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만큼 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만약 십일조를 정직하게 드렸거나 최선을 다해 헌신했는데도 가난하거나 병에 걸린다면 너무 쉽게 하나님을 버립니다.

지금 변질된 교회의 큰 문제는, 하나님께 성령과 진리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가르치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지 않아도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 복을 받는다는 기복신앙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러운 떡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장들과 동일한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믿음 없이 드리는 속죄제물은 받지 않습니다. 속죄제물이 열납되지 않는다면 죄사함도 없습니다. 제사장들의 타락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에 성전문을 닫는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제사장은 물론 백성들까지 모두 타락했기 때문에 성전문을 닫을 자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제사장의 타락은 나라 전체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므로 하나님의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신앙이 필요한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고여 있는 물처럼 썩어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향해 썩은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영혼들을 구원의 방주로 끌어올려 달라고 부탁하고 계십니다. 죄가 관영한 세상에서 나올 수 있는 길은 오직 한가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어둠에 갇혀 있는 영혼들을 향해 빛 되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병든 제물을 하나님께 드렸던 제사장처럼 하나님을 철저히 멸시하는 행동이므로 돌이켜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사람들은 시대에 맞춰 하나님을 대하는 방식까지 변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들은 신을 죽인 행위를 가치 있게 만들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는 시대에 걸맞게 신을 대하는 개념을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변함없이 그 자리에 계시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과 사상 혹은 교만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큰 문제인데 하나님께 권한을 받은 제사장이 타락하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지식이 많고 유명한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전하면 많은 사람들이 타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거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던 시대와 지금 세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법과 말씀이 변질되었다면 신은 없다고 말해도 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말씀은 성취될 것이므로 성도들은 변치 말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이름을 크게 높일 것이라고 하셨고, 이방인이 하나님께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릴 것이라고 하신 그 말씀이 여러분의 믿음을 증거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경이 그대로 성취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말라기 1장 14절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 겁도 없이 병든 제물을 가져온 것을 보시고 그것을 세상의 총독에게 드려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도 받지 않는 제물을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인지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많은 양들 중에 건강한 수컷이 있었지만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굳이 병든 것을 드리는 마음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혹은 감사한 마음으로 더 좋은 것을 드리기 보다는 건강한 것을 배제하고 약한 양을 굳이 찾는 그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평안을 거저 주신 하나님께 건강한 수컷을 드리지 않고 병들고 연약한 양을 찾고 있는 그에게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여호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너를 축복한 하나님이며 심판주라는 말씀입니다. 내가 축복했기 때문에 지금 네가 풍요로운 것이며, 내가 저주를 내리면 너는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것처럼 서원을 합니다. 그러나 이루어지고 나면 그 서원조차 잊어버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에게 병든 제물을 드리고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는 행동을 총독에게 똑같이 했을 때 그가 너를 어떻게 대하는지 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에게도 하지 않는 행동을 하나님께 거침없이 하고 있는 우리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총독은 때가 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 도 하고 생명이 다하면 세상을 떠나 도움이 되지 못하기 도 합니다. 하지만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처음과 나중까지 모두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에 잠시 스쳐가는 총독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잘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장 8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 겠느냐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그동안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던 성도들의 간절한 소원을 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핍박을 당해도 낙망하지 않고 항상 기도했던 성도들의 억울한 마음을 풀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하신 것은 그만큼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욕심을 이기지 못해서 뿌리 채 뽑힌 사람도 있고, 핍박이 두려워 스스로 믿음 밖으로 나간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 믿음을 버리고 넓은 길로 가기도 하고, 성공을 위해서 악한 자와 타협하는 사람도 있고,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렸지만 그 시간이 길어지자 스스로 등불을 꺼버린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반드시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믿고 구원을 위해서 헌신하는 믿음의 성도들에게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겠다는 약속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난 여러분은 절대로 말씀에서 벗어난 악한 삶을 살지 말고 세상을 바라보는 죄를 짓지 말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더라도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하며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은 구원이 달린 아주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영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천국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경대로 세상의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타락한 제사장들과 정욕에 매인 우리들이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섬기며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낼 때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말씀으로 거듭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뜻을 알고 있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조금 더 갖기 위해서 욕심부리지 말고 성경을 통해 좁은 길을 선택하는 지혜를 갖기 바랍니다.

사람의 욕심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므로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고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신앙을 갖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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