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I, Yahweh, Do Not Change — Expository Sermons on Malachi · Cho Chun-sook
Close
3

Corrupt Priests Who Offer Polluted Bread

Malachi 1:6-9

6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8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 9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성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만 왕의 왕 되신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셨으므로 모든 피조물은 질서가 훼손되지 않도록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자연은 절기를 따라 변화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만 말씀을 거역하고 판단하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 밖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이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고 있기 때문에 진노는 더욱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을 선택하여 백성을 가르칠 권한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자녀로 살 수 있는지 가르치는 거룩한 직분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타락은 아주 심각한 문제인데 만약 제사장들이 법을 어긴다면 그들의 가르침을 받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진리를 배우지 못한 백성들이 도리어 징계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만큼 제사장의 가르침은 백성들의 화와 복 그리고 사후에 갈 천국과 지옥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도 목사들이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성도들은 구원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들의 구원이 달려 있기 때문에 목사는 정직하게 진리만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2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신앙이 바로 제사장과 성도들이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고의적이거나 부지중에 죄를 지을 때마다 제사장에게 속죄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통해 용서를 받았습니다. 제사를 드린 백성들이 용서를 받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기에 제사장의 타락은 아주 큰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예수님께서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신 후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해 주고 계시므로 성도들은 구약의 백성처럼 동물의 피로 속죄제를 드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성령께서 성도 안에 임재하여 거룩한 성전이 되었으므로, 구약의 제사 장처럼 하나님께 직접 예배를 드리고 깊은 교제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재물을 자신의 힘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선한 도구로 사용하여 더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배고픔과 궁핍함에 처했을 때는 비관하거나 하나님을 의심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며 인내해야 합니다. 바울이 어떤 환경에서도 이겨낼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자신 있게 말한 것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것과 성령께서 동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에서 불평할 이유와 조건을 찾는 사람은 불행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하찮은 것으로 만들고, 거룩하신 이름을 높여드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믿음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는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반복되는 세상일에 지나치게 불평하거나 기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다메섹도상에서 그리스도를 직접 만났을 때 성도에게는 인생이 나그네 길이며 사는 동안 그리스도께 죄사함 받아야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과 같다는 생각을 하자 천국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생기자 고난과 핍박도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감사를 깨닫자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개인의 삶을 뒤로 한 채 전도의 길을 떠났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누릴 권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이런 신앙이 선한 청지기의 자세라면 지금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 책망을 듣고 있는 제사장들은 불의한 청지기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제사장으로 불러 주셨는데도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세상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처지에 있든 불평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며, 기도와 찬양으로 힘을 얻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바랍니다.

말라기 1장 6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어떤 행동을 보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다고 하셨을까요.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제사장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모욕하고 조롱할 수 있는지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나를 어떻게 멸시할 수 있느냐고 말씀하신 것은 주의 이름 즉 영광을 멸시했다는 말씀입니다. 진노의 말씀을 들었다면 즉시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했느냐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감히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제사장들이 불경스러운 대답을 한다는 것은 이미 그들 안에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이 채워졌다는 증거입니다.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언약과 예배생활을 가르쳐야 했지만 도리어 제사장들이 더 타락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희망이 없었습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법을 아는 제사장에게 이스라엘의 미래를 맡겨야 하는데 그들이 타락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기대를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레위기 22장 2절에 보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이 내게 드리는 그 성물에 대하여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함이 없게 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이렇게 제사장들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려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대제사장과 제사장으로 세운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온전한 성물을 드림으로 여호와의 성호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시 나답과 아비후처럼 용서받지 못하고 바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반드시 명령에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즉각 심판하시지 않자 제사장들은 더러운 떡을 제단에 드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느냐고 묻고 있는 그들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지금 하고 있는 행동이 화를 자초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막았을 때 자녀가 왜 자유를 속박하느냐고 대든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런 말 대답은 자녀가 여러분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랫 사람이 말끝마다 토를 단다는 것은 여러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입니다. 사람도 이런 대접을 받으면 화가 나는데 감히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는데 내가 어떤 죄를 졌는지 정확하게 말해보라고 한다면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직분이 서열을 정한 것처럼 되어 있지만 하나님 앞에 성도들의 서열은 없습니다. 성도들보다 목사가 높은 것 아니며, 평신도보다 장로나 안수집사 그리고 권사의 직분을 받은 사람들의 위치가 높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신 것처럼 성도들도 낮은 자리에서 서로 섬겨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 교회는 반드시 질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기 위해서 좋은 인격을 가지고 상대를 높이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른을 예의 있게 대하는 것은 교회를 질서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청년들이 어른에게 말대답을 하거나 성도가 목사에게 예의 없는 행동을 하면 말씀과 상관없이 교회 질서는 무너질 것입니다.

예의 없게 행동하는 것은 믿음의 선배가 기도와 헌신으로 세운 교회를 무시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도전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반면에 교회 어른들은 예수님처럼 희생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불만이 있어도 어른들에게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른들 스스로 교회의 질서를 위해서 배려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말라기 1장 7절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너희가 더러운 떡을 드리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했느냐고 말하지만 너희가 나를 무시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식탁을 경멸히 여기는 행동을 할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더러운 떡은 바로 부정한 제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점도 흠도 없는 제물을 드려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자기 마음대로 제물을 정해서 드렸습니다. 제사장들은 속죄제에 관해 하나님께서 정하신 희생의 제물과 예배 법이 있는데도 그 법을 무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혔습니다. 이런 행동은 엄청난 죄이므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해도 마땅한 벌입니다. 여호와께서 제사장들이 눈 먼 희생제물과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린 것이 악하다고 하셨다면 바로 회개해야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었습니다.

레위기 22장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희생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의 흠 없는 수컷입니다. 이렇게 정확하게 알려주셨지만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병든 제물을 드리고도 전혀 죄의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 열납되어야만 속죄제를 드리는 백성이 용서를 받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드려서는 안 되는 더러운 제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건강한 소와 양과 염소의 수컷은 자신의 소유로 삼았고 약하고 병든 것은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처럼 특별히 선택받은 제사 장이라 할지라도 욕심과 정욕에 사로잡히게 되면 하나님께 더러운 희생 제물을 드릴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7장 8-11절

8보라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존하는도다 9너희가 도둑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10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둑의 소굴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유다 사람들이 타락했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6일 동안 거짓말하고 도둑질하고 살인하고 간음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는 더러운 삶을 살고도, 성전에 오면 “하나님 저는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하고 가증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이 하는 말이 역겨워 너희가 새벽부터 부지런히 나를 찾고 찾아도 나는 듣지 않을 것이고 너희가 나를 불러도 대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런 죄 때문에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한 것입니다. 70년의 포로생활로 고통을 당한 후 이들은 이스라엘로 돌아왔지만 전혀 변하지 않았고, 포로로 잡혀가기 전과 동일한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죄를 용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품으려고 하셔도 죄 때문에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말라기 선지자는 하나님의 경고를 제사장들에게 전했지만 그들은 조상들과 동일한 죄를 지으며 악행을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전혀 돌이킬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길 너희가 병든 것을 나에게 주고도 그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하니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주고 그의 반응을 살펴보라고 하셨습니다. 더러운 제물을 받은 총독이 너를 기쁘게 받아줄 것인지 보라는 것입니다. 총독은 너를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도 받지 않는 제물을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리고도 우리가 언제 주를 공경하지 않았으며, 우리가 언제 주를 더럽게 했느냐고 말대답을 했을 때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죄를 짓고도 성전에 나와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는 그들의 가증함을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 이런 죄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제사장들의 타락 때문이므로 말라기는 차라리 모든 성전 예배가 중지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처음과 나중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리스도께서 처음이고 나중이라면 인간에게는 어떤 선택권도 없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이 건강한 짐승을 자신의 소유로 삼기 위해서 하나님을 속이는 행동을 보고 계셨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로 건강한 짐승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의 생명을 거두신다면 그의 소유는 모두 남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들이 진심으로 흠이 없는 제물을 선별하여 드렸다면,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하나님을 섬기는 복을 주셨을 것입니다. 제물을 취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속이려는 거짓말과 도둑질을 할 것이 아니라 정직한 믿음을 가졌다면 제사장들은 보호를 받았을 것이며 강퍅 하지 않아도 넘치는 은혜를 받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점과 흠이 있는 더러운 떡을 드리지 않았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정직하게 구별하여 드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총독에게는 좋은 것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까워 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이런 행위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는 행동이며, 하나님의 제단을 경멸히 여기는 행동입니다.

병이 들거나 가족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리고 고난을 이길 힘이 없을 때는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찾으면서 하나님의 것을 당연히 드려야 할 때는 망설인다면 강퍅한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아실 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이 가지고 온 좋은 제물을 각을 뜨고 태워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막중한 사명을 받은 그들이 백성이 바친 제물을 병든 것으로 몰래 바꾼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조차 받지 않습니다. 제물의 상태는 하나님과 제사장만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악한 제사장을 즉시 심판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죄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점과 흠이 있는 제물을 드려도 바로 징계하시지 않자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작은 죄도 용서하지 않는 분이므로 백성들이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훔친 죄와 거룩한 제사를 더럽힌 죄는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죄를 짓고도 즉시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제사에 따라 제물을 드리는 법을 제정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심판하시지 않는다고 더러운 떡과 제물을 드린다면 그의 인생은 점점 몰락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식탁을 어떻게 더럽힐 수 있느냐’고 책망하시자 그들은 또 다시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힐 수가 있겠느냐고 말대답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드리는 제물이 탐이 나서 점과 흠이 없는 제물을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제사장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백성들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도록 법에 따라 온전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에 기록된 모든 제사는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제사장의 죄를 지금 우리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받으시는 오직 한가지 그리스도를 잘 섬기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섬기지 못하는 제사장들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익을 위해서 세상의 권세자에게 굴복하면서 하나님께는 온전한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면 악한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과 같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3-4절

3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저 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계신 당시에는 헌금의 종류가 많았고 백성들은 헌금을 드릴 때 액수와 용도를 말하면서 드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들이 헌금을 많이 가지고 와서 궤에 넣는 것을 보고 계셨는데 그 때 마침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가지고 와서 궤에 넣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헌금을 훨씬 많이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과부가 부자보다 훨씬 많은 헌금을 하나님께 드렸다고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부자와 과부가 드린 헌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그 돈을 사용하고 있는지, 헌금을 드릴 때 그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 모든 상황을 아시는 예수님이기에 과부를 특별히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직한 헌금을 드리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많은 헌금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진심으로 드리는 믿음을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도는 헌금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하게 되고, 목회자는 축복을 강조하면서 헌금을 강요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물질이 필요하기 때문에 동물의 제사를 원하신 것 아니고, 성도들의 헌금을 원하신 것 아닙니다.

인간은 처음부터 죄인이었기에 구원밖에 있었지만 영혼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 사랑을 제사장들과 성도들이 하찮은 욕심으로 무시하고 멸시하면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기에 진노를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지 말고 가식적인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는 성도로 살면서 더 많은 영혼을 죄에서 구원하는 축복받은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I, Yahweh, Do Not Change · Corrupt Priests Who Offer Polluted Bread
27% · 3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