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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Yahweh, Do Not Change — Expository Sermons on Malachi · Cho Chun-s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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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 You Build, I Will Throw Down

Malachi 1:3-5

3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5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돌로 조각한 작품은 수천 년이 지나도 그 형태를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각가들은 자기의 생각을 돌에 담아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돌은 다른 재질보다 작품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석상을 만들 때 특히 주의해야 합니다. 힘 조절을 잘못하면 정교한 작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 조심해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래를 가지고 섬세한 작품을 만들기도 합니다. 세계 모래 조각대회에 출품한 작품들을 보면 물과 모래를 결합해서 만든 작품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웅장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모래로 만든 작품은 돌로 만든 작품과는 달리 오래 보관할 수 없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파도가 밀려오거나 사람이 손을 대기만 해도 무너질 수 있으므로 행사기간 동안만 작품을 봐야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작품의 재질에 따라 돌처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모래처럼 사진으로만 남는 작품도 있습니다. 작가들이 말하길 육중한 돌로 만든 작품은 쉽게 깎고 다듬을 수 없지만 수천 번 수만 번 동일한 작업을 하다 보면 그 돌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어떤 작품이든 먼저 작가의 머릿속에서 완성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내면에서 완성된 작품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치밀하고 세밀하게 드러낼 때 비로소 사람들에게 그 작품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의 신앙에도 적용됩니다. 그리스도를 정직하게 섬기는 성도는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진 돌로 만든 작품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삶의 경험을 통해 견고한 신앙이 만들어집니다. 신실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말씀을 중심에 세우고 살아내는 순종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고된 훈련을 통해 단련된 성도의 믿음이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만 신실한 신앙을 갖게 되면 어떤 고난이나 연단에도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석상이 오랜 세월 비바람을 맞으면 더 웅장하고 심오한 깊이가 있어 보이는 것처럼 믿음으로 인내하는 성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므로 영적인 부분과 세상적인 부분을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말씀으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래로 쌓은 믿음은 외식하는 신앙이기 때문에 고난의 파도가 밀려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모래로 만든 작품이 쉽게 무너지는 것처럼 외식적인 신앙은 환경과 감정에 의해 쉽게 무너지므로 깊이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외식하는 신앙은 겉으로는 충만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중심은 늘 흔들리고 있습니다. 모래로 만든 작품이 사진에만 남아 있는 것처럼 자신이 헌신했던 때와 기도했던 때를 회상하며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뿐 성장하지 않습니다. 외식하는 사람도 진심으로 헌신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겠지만 인내가 없어서 신앙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므로 죄의 자리로 쉽게 돌아갑니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와 기회를 주셔도 말씀과 기도 그리고 헌신으로 다져진 시간이 짧기 때문에 교회와 세상을 넘나들고 있습니다. 이런 성도는 교회를 아무리 열심히 다녀도 늘 무거운 짐을 진 것처럼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돌로 만든 작품처럼 화려한 인생을 살지는 못했지만 그를 보면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곁에 남기 위해서 가던 길을 돌이키고 넘어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반면에 에서는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아 편안한 삶을 살았지만 모래성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안타까운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에서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은 사랑하시고 그는 미워하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열국의 아비인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의 장자로 태어나는 특혜를 받았지만 장자권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불신앙을 보였기 때문에 하나님과 상관없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남은 자를 택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은 누구는 특별히 미워하고, 누구는 특별히 사랑하셨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곁에 남기 위해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이 결국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녀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장로교는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는 예정론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을 현재로 보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할 자이고, 하나님을 버릴 자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런 관점에서 예정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태어날 때부터 사탄의 종이었던 사람들이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그리스도를 만나 죽는 순간까지 그 믿음을 지킨다면 그 사람이 바로 예정된 자이고, 택함 받은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을 인간이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전 인류에게 복음을 동일하게 주셨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을 지킨 사람들이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누구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말씀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영접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만약 인간적인 판단으로 영접하지 않는다면 그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결론은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을 구원하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육을 벗는 순간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이 바로 예정된 자이고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성도라는 것입니다.

말라기 1장 4절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면 무조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 때문에 책망하시는 것이므로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아도 좋다는 대답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36편 1절에 보면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야만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데 악인은 지혜와 선행을 그치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조상들이 연단을 받는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성장한 에서이지만 그는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아도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교만한 말을 하며 하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하나님 없이 살 수 있는 나라와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의 물질인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선하신 하나님의 책망을 받으면 자신을 돌아보기 보다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반한 선택의 결과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돌이키라고 책망하셨다면 듣는 즉시 자신의 행동과 말 그리고 생각까지 거듭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책망과 권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라고 하신 것은 인간관계처럼 서로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이 사탄의 꾀임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알려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보다 자신의 방법이 훨씬 좋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순종했을 때 먼 길로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치 앞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바로 뒤에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고 하신다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와 책망을 전해주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들어야만 인생을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은 칭찬을 듣기 원하기 때문에 책망을 들으면 불편할 수 있지만 당장 이해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 수 없어도 일단 말씀에 순종하면 시간이 흐른 후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을 믿고 일단 순종해 보면 왜 회개하라고 하셨는지, 손에 쥔 것을 버리라고 하셨는지 곧 알게 될 것입니다. 구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왕으로 섬기기를 원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없이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을 자신있게 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에돔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면 판단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지금의 삶을 돌이키는 것이 회복하는 지름길입니다. 이런 에돔의 호언 장담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에돔이 인간의 의로 열심히 쌓을지라도 나는 그것을 헐겠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쌓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지 않는다면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쉽게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을 직접 시험하고 공격한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울타리를 거두시면 사람이 사탄의 공격을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에돔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는 말씀입니다.

창세기 11장 4절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사람들의 언어가 하나였을 때 교만했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았지만, 사람들의 악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언어를 흩으심으로 바벨탑 쌓는 것을 단번에 중단시켰습니다. 언어가 하나이면 서로 소통하면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인데 그들은 하나의 언어를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견줄만한 힘을 가졌다고 호언장담했지만 그들의 욕망을 이미 알고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축복으로 주셨던 하나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므로 흩어버렸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소통할 수 없어서 하던 일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에돔을 향해 경고하신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악한 생각으로 뭉쳐서 하나님 없이 자신들의 힘으로 살 수 있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잠깐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면 그들이 가진 모든 것들이 무용 지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에돔은 결국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기회를 받았지만 죄가 관영했기 때문에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에서를 보면 하나님께 기회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가인이 아담의 장자로 태어난 것처럼 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이삭의 장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기회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스스로 그 복을 버렸으므로 나락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에서처럼 하나님께 불신앙을 보이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욕심과 교만 그리고 인간의 의와 자랑을 드러냅니다. 지금까지 쌓은 세상의 지식과 편견, 인간의 이성과 사상으로 말씀을 판단하기 때문에 선하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고 더 큰 죄를 짓게 만들기 때문에 자신을 내려놓고 경고하신 말씀을 되새겨 보면 자신의 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악하다는 것은 도덕적인 것이나 인간적인 착 함과는 다릅니다. 그 기준이 말씀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반한 것이 악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착하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도 그리스도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악하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학문이 있어 견식이 높다고 해도 그것조차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선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무서운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 에돔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서를 미워하셔서 견고하던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부유했던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겨주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에서가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서 작정하시면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에돔은 에서가 시조인데 에서가 야곱에게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고 말했으므로 에서의 별명이 에돔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장자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했을 때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도움으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는 이십년이 넘는 세월을 라반의 집에서 노예처럼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 리브가를 만날 수 없는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리브가 역시 야곱의 믿음을 알기에 그를 도와주었지만 그로 인해 죽을 때까지 아들을 만날 수 없는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죄를 용서하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에서라고 속인 죄를 어머니와 아들이 살아서 만날 수 없는 것으로 대신하게 하셨을지도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행한 작은 죄라도 책망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에서는 마치 준비한 것처럼 동생 야곱에게 고향집을 넘겨주고는 자기의 가족을 이끌고 바위가 많고 험준한 산악지방으로 떠났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러 에서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의 사울 왕과 전쟁을 벌였고, 그 후 다윗 왕이 여러 이민족을 정벌할 때 에돔도 함께 정벌을 당하여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에돔은 기원전 586년경에 유다 왕국이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할 때 에돔도 함께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신약시대에 이르러 에돔 사람 안티파트로스 가 로마제국의 행정관이 되었고, 그의 아들은 훗날 로마제국 하에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리는 헤롯대왕이 되었습니다. 헤롯대왕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역까지 통치했지만 서기 70년 제 1차 유대와 로마간의 전쟁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에돔의 역사도 종결되었습니다.

에돔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교만을 가지고 계속 권세를 잡으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예언하신 것처럼 결국 세상에서 에돔이라는 나라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돔이 쌓을지라도 나는 헐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을 쫓아다니면서 괴롭히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보호자가 되어 주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목표를 정해서 열심히 노력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 수 있는 분이므로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누가복음 15장 18-20절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하나님을 떠난 성도가 고난에 처했을 때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결단을 해야 하는지 가장 잘 가르쳐주고 있는 탕자비유입니다. 에돔처럼 탕자는 돈만 있으면 자기 혼자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곁을 떠나려는 것을 알면서도 아들이 원하는 대로 그의 분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아들이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훗날 아들이 울면서 돌아왔을 때 기꺼이 안아주는 것을 보면 아들의 생각처럼 세상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게 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세상 일이 잘 되거나 재물이 많으면 하나님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나님을 떠나도 두렵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세상으로 혼자 나가면 실패할 것을 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강제로 막지 않고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버지께 분깃을 받은 아들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 멀리 떠났지만 그는 삶의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육신의 정욕과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재물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누구나 죄를 지을 때는 보호자와 멀리 떨어지려고 합니다. 재물이 있을 때는 탕자에게 친절했던 사람들이 돈이 떨어지자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없이 세상에 직면하자 지금까지 자신이 살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버지의 보호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는 믿음의 사람이라도 할 수 있는 실수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능력과 힘과 건강을 믿고 살던 사람이 그 모든 것을 잃었을 때 어떤 결단을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덧입을 수도 있고, 도리어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면 에돔처럼 애써 쌓은 것이 무너지고, 탕자처럼 많은 재물이 모래처럼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노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쌓은 것이 자꾸 무너진 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신 것입니다. 좀 더 하나님 안으로 들어와 올바르게 교제하자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탕자는 아버지께 돌아가겠다는 결단을 하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께 가기까지 많이 망설였겠지만 그가 아버지께 돌아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환대를 받을 수 있었고 아들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는 하나님께서 그가 쌓은 것을 무너뜨리겠다고 경고하셨지만 돌이키기 보다는 불평했고 대적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에서가 열심히 쌓은 모든 것이 죄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시는 기회를 축복으로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판의 조건으로 만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야곱과 에서 중 어느 쪽에 가까이 서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성도를 안아 주시고,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보호의 울타리가 되어 주시므로 망설이지 말고 그 품에 안기면 됩니다. 여러분은 에돔처럼 절대로 교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며,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살기 바랍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야곱이 받은 것처럼 여러분도 받을 것이므로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며 죄의 길에서 벗어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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