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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말씀의 본질을 깨달은 성도의 삶
마가복음 13강

말씀의 본질을 깨달은 성도의 삶

바리새인들은 손 씻지 않는 제자들을 문제 삼으며, 사람의 전통을 하나님의 계명보다 우선시했습니다. 그들은 외적인 정결 의식과 규칙 준수에 집착할 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율법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입술로 공경하되 마음은 멀리하는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예배하는 것은 헛된 경배이며, 진정한 신앙은 형식적인 규례가 아니라 마음의 정결함과 사랑에 있습니다.

고르반이라는 명분으로 부모 부양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력화하는 행위입니다. 신앙은 외적인 행동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며 말씀의 본질을 깨닫는 삶이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9.27
한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
마가복음 12강

한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

수만 명의 무리가 굶주린 빈들에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제자들은 떡과 물고기의 부족함을 계산하며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과 관점을 시험하셨습니다.

한 아이가 드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인간의 눈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헌신을 예수님의 손에 맡겼을 때, 그것은 수천 명을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것을 가진 자가 아니라, 가진 것을 믿음으로 드리는 순수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눈으로 보이는 한계를 넘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함을 채우시고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9.20
사명을 감당한 세례 요한의 죽음
마가복음 11강

사명을 감당한 세례 요한의 죽음

세례 요한은 헤롯의 부도덕함을 책망하다 감옥에 갇혀 참혹하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헌신이 헛되지 않았는지 의구심을 품고 제자를 보내 묻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직접적인 구원을 약속하지 않고, 맹인이 보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등 메시아의 임재를 알리는 표적들을 전하라고 답합니다. 이는 요한의 사명이 이미 완성되었음을 의미하며, 이제 그는 더 이상 외치는 자의 역할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눈에는 요한의 죽음이 허무하고 비참해 보일 수 있으나, 그는 자신의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며 하나님의 궤적을 완성한 자입니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 맡긴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며, 그 결과로 얻는 천국의 소망이 더 중요함을 선포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9.13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마가복음 10강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

세상 사람들은 기적을 호기심으로 보거나 불이익이 생기면 불신하지만, 성도는 말씀으로 중심을 세워야 합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지위와 체면을 버리고 죽어가는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했고, 혈루증 여인은 부정한 몸으로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면 구원받으리라 믿고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시선이나 율법의 정결 규정을 초월하셨습니다. 부정한 여인이 만져도 예수님의 권능은 더럽혀지지 않고 오히려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간절히 매달리는 믿음과 진심을 보시고 응답하시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나 딸이 죽었다는 소식에 야이로는 감사하던 마음이 분노로 바뀌며 믿음을 흔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생명의 주인이심을 보여주기 위해 소녀에게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죽음처럼 보이는 절망의 자리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이 선포되면 생명의 자리로 바뀌고, 두려움 대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8.23
거라사의 광인을 찾아가신 예수님
마가복음 9강마가복음 5:1-20

거라사의 광인을 찾아가신 예수님

예수님과 제자들이 배에서 내리자 귀신 들린 사람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습니다. 쇠사슬도 끊어버릴 만큼 힘이 세어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고, 그는 밤낮 무덤과 산을 뛰어다니며 돌로 제 몸을 상하게 했습니다.

그를 지배한 귀신의 이름은 군대, 레기온이었습니다. 이 많은 귀신은 예수님께 나가라는 명령을 받자 더는 이 사람을 종으로 삼을 수 없다고 여기고, 근처 돼지 떼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것을 허락하셨고, 돼지 떼는 호수로 뛰어들어 몰살했습니다.

돼지를 잃은 사람들은 한 사람의 생명보다 자신의 손실을 더 크게 여겨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청했습니다. 회복된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려 했지만, 예수님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전하라 하셨고, 그는 가족뿐 아니라 데가볼리 전체에 복음을 전하며 살았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8.2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진 자
마가복음 8강마가복음 4:21-41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진 자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지극히 작아 보이는 씨앗이 큰 나무로 자라듯, 제자들의 작고 흔들리던 믿음도 옥토에 심겨 자랄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도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있는지, 예수님이 메시아인지 온전히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땅속에 묻힌 씨앗은 뚫고 나가야 할지 근심하지만, 뿌리를 내리고 나오면 햇빛과 비와 그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두려움과 의심 속에서도 진리는 제자들 안에서 자라났고, 결국 순교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거대한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편견과 비뚤어진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이는 가룟유다처럼 사명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섭니다.

배 안에서 광풍을 만난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며 두려워했고, 예수님은 그 믿음 없음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능력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므로,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령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면 겨자씨 같은 믿음도 반드시 크게 자랄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7.26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
마가복음 7강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

바닷가에 몰려든 무리는 진리보다 기적과 문제 해결을 바라고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이야기로 쉽게 말씀을 전하셨는데, 씨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와 좋은 땅에 각각 떨어졌고, 그중 좋은 땅에서만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길가는 강퍅해져서 말씀을 듣고도 뿌리내릴 마음이 없는 사람이고, 돌밭은 감사와 결단은 빠르지만 고난 앞에서 곧 식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가시떨기는 뿌리는 내렸지만 세상 염려와 욕심에 눌려 더 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썩는 사람인데, 겉으로는 믿음이 있어 보여 스스로도 자신의 한계를 모른다는 점이 가장 위태롭습니다. 함께 이어진 가라지 비유는 심령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밭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어서, 둘이 한 세상에 섞여 자라도 갈라내는 일은 사람이 아니라 추수 때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받은 것이 얼마인지가 아니라 그것으로 얼마나 충성했는지가 문제이며, 좋은 땅이 되는 길은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인내하며 순종하는 데 있다고 전했습니다. 고난은 피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회이며, 그렇게 견뎌낸 삶이 마침내 곳간에 들어가는 열매가 된다는 말씀으로 맺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7.19
성령을 모독하는 자
마가복음 6강

성령을 모독하는 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미쳤다며 강제로 데려가려 했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비난했고, 예수님은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없다고 답하셨습니다.

가족조차 예수님을 메시야로 보지 못하고 함부로 대했고, 그로 인해 진리가 힘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는 사탄이 서기관과 가족까지 동원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한 것이며, 사람이 짓는 죄는 사탄에게 힘을 주는 양식이 됩니다. 두로 왕과 타락한 천사도 하나님께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교만해져 스스로 하나님과 같아지려 하다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목회자를 비방하고 이간질하며 불평하는 것, 교회를 방해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성령을 모독하는 죄입니다. 사람의 모든 죄는 사함을 받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영원히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참된 가족임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7.5
제자들의 사명
마가복음 5강마가복음 3:13-19

제자들의 사명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자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항의합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쳐 주시며,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생명을 구하는 것이 옳다고 물으시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선언하신 것은, 형식적인 안식이 아니라 참된 안식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진리를 듣고도 자기 생각을 바꾸지 않는 완악함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그 길에서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함께 있게 하시고, 전도하게 하시며, 귀신을 쫓는 권능을 주시려고 부르셨습니다. 가룟유다는 회개하지 않아 그 자리를 잃었고, 베드로는 세 번 부인한 뒤 통곡하며 돌이켰습니다. 죄는 잊혀지지 않지만, 그 죄를 회개하느냐 아니냐가 완전히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6.21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마가복음 4강마가복음 2:13-22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중풍병자를 벗들이 지붕을 뜯어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보다 그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죄사함을 선언하셨고, 곁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 말씀을 신성모독으로 여겼습니다. 이어 세리 레위를 부르시자 그는 즉시 따랐고, 자기 집에 세리와 죄인들을 초대해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의사는 병든 자에게 필요하듯 예수님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 손님이 금식하지 않듯, 지금은 예수님과 함께 있으니 슬픔의 형식을 지킬 때가 아니라 말씀을 먹을 때입니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고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담지 않듯, 복음은 율법주의의 낡은 형식에 갇힐 수 없습니다.

죄를 사하시는 것은 사탄에게서 그 무기를 빼앗는 일이며, 그 은혜는 형편과 처지에 상관없이 값없이 주어집니다. 교회는 사람이 만든 법과 형식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그 뜻을 깨달은 사람은 세상을 향해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6.7
더러운 귀신을 꾸짖는 예수님
마가복음 3강마가복음 1:16-28

더러운 귀신을 꾸짖는 예수님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서 그물을 씻던 베드로에게 다시 그물을 내려보라 하십니다. 밤새 한 마리도 못 잡았던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했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습니다. 그 후 가버나움 회당에서는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알아보고 대적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꾸짖어 그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십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어부 경험과 자존심을 버리고 말씀에 의지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반면 귀신은 사탄이 강제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진리와 비진리 중 누구를 섬길지 정하지 않을 때 스스로 자리를 내어준 결과임을 보여줍니다. 사탄은 하와에게 그러했듯 지금도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거짓을 진리처럼 속삭여 사람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타협이 없습니다. 성도는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으로 분별하며, 성령을 의지해 담대히 싸워야 합니다. 선을 행하고 진리를 붙드는 사람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거하게 될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5.24
세례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마가복음 2강마가복음 1:9-13

세례와 시험을 받으신 예수님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기를 계속 만류했지만,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반드시 받아야 하는 세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 후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줌으로써 인류의 모든 죄를 그분께 전가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이후 성령은 예수님을 광야로 보내시고, 사탄은 돌을 떡으로 만들라는 시험과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시험, 천하만국을 주겠다는 시험으로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은 매번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십니다.

사탄은 결국 예수님께 굴복할 것을 알면서도 성도들을 실족시키려 합니다. 성도는 마귀를 스스로 이길 힘이 없지만, 성령을 의지하면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을 높여드릴 수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다 믿지 말고 진리만 의지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6.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