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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무너져야 할 것과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
열왕기하 26강

무너져야 할 것과 절대 무너지지 않는 것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지고 왕은 도망치다 붙잡힙니다.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본 뒤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성전은 불타고 기구는 모두 옮겨졌습니다.

이 심판은 바벨론이 강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전이 있으니 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붙들었지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성전이 아니라 중심에 있는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교회도 직분도 신앙의 연륜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언약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왕이 훗날 풀려나 왕의 식탁에 앉았고,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남았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8.16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열왕기하 25강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요시야 왕이 죽은 뒤 남유다는 23년 만에 무너집니다. 그 사이 왕이 네 번 바뀌고, 나라는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계속 흔들립니다. 왕과 백성은 어느 쪽에 붙어야 살아남을지만 계산합니다.

애굽 편에 섰다가, 바벨론 편에 섰다가 다시 애굽으로 돌아서며 왕들은 매번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입니다. 형편에 따라 자리를 옮겨 다녔을 뿐,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돌이키라고 외쳐도 왕은 듣지 않았고, 평화를 말하는 다른 목소리들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그렇게 무너져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지키고, 그를 돕는 사람들을 곳곳에 남겨 두셨습니다. 나라가 망해도 말씀을 붙든 사람들은 남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묻습니다. 애굽인지 바벨론인지가 아니라, 너는 내 편에 서 있느냐고.

이지현 목사님 · 2026.8.9
요시야의 비극적 죽음과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24강열왕기하 23:25-30

요시야의 비극적 죽음과 하나님의 섭리

요시야는 여덟 살에 왕이 되어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개혁을 이끕니다. 성전을 수리하다 발견한 언약책 앞에 옷을 찢고, 온 나라의 우상과 산당을 무너뜨리고, 백성과 함께 유월절을 지킵니다. 그런 그가 애굽 왕과의 전쟁에 나섰다가 화살에 맞아 허무하게 죽습니다.

인과응보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안다'는 말은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깊이 연합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요시야를 그렇게 아셨고, 그가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리라 하신 약속은 고통 없는 죽음이 아니라 온전함과 완성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요시야의 이른 죽음은 뒤이어 유다를 덮칠 바벨론의 참혹한 멸망과 포로살이로부터 그를 건져낸 자비로운 격리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요셉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렇듯,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우리의 예상을 뒤흔드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7.12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열왕기하 23강열왕기하 22:16-20

하나님의 말씀 앞에 마음을 찢은 요시야

성전 수리 중 율법책이 발견되고, 그 말씀이 읽히는 순간 요시야는 옷을 찢으며 통곡합니다. 그는 조상 탓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켰으며, 이미 심판을 알고도 사람을 보내 하나님의 뜻을 다시 물었습니다.

말씀이 발견된 것은 그만큼 성전 안에서 말씀이 먼지 속에 묻혀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전이 있다는 확신만 붙들고 있었을 뿐, 삶의 중심에 있어야 할 말씀은 없었습니다. 말씀 앞에서 마음이 찔리고 불편해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심령이 반응하는 증거입니다.

여선지자 훌다는 유다 전체를 향한 심판은 거두어지지 않았지만, 요시야 한 사람의 눈물은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찾으십니다. 가정과 교회와 나라 가운데 그렇게 마음을 찢는 한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은 그곳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6.14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열왕기하 22강열왕기하 21:10-17

므낫세의 시대와 마지막 때

므낫세는 열두 살에 왕이 되어 오십오 년을 다스렸습니다. 그 시대 남유다는 앗수르에 충성하며 번영을 누렸고,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며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평안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상의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삶이 편안하고 풍요로우니 백성들이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게 된 것, 그것이 가장 악한 상태였습니다. 오늘날도 기술과 성공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사람을 세뇌하는 것은 같은 미혹입니다.

므낫세는 앗수르에 사로잡혀 쇠사슬에 묶여 끌려간 뒤에야 크게 겸손하여 하나님께 무릎 꿇었고, 하나님은 그를 다시 예루살렘 왕좌로 돌려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누가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순종했느냐입니다. 마지막 때를 이길 힘은 죽도록 충성하는 순종뿐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17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열왕기하 21강열왕기하 20:16-21

은혜의 자리에서 드러난 히스기야의 교만

히스기야는 앗수르를 물리친 뒤, 죽을 병에서도 고침을 받아 생명을 15년 연장받고 나라도 구원받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사신들이 찾아왔을 때,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증거할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재물을 자랑하듯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그에게 왕궁의 모든 것이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을 전합니다.

교만은 특정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의지하려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축복을 받은 직후, 긴장이 풀리는 그 순간이 신앙에서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히스기야는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자기 세대만 평안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넘어갔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회개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 괜찮으면 된다는 이기심이었습니다.

축복의 자리는 신앙의 끝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생명을 연장받았지만 그 시간에 므낫세, 곧 남유다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을 낳았습니다.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 의지하며 사는 것이 진짜 복이며, 겸손히 그 은혜를 붙들 때에만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5.3
하나님의 열심
열왕기하 20강열왕기하 19:29-37

하나님의 열심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이미 막대한 조공을 받고도 다시 협박 편지를 보냅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금까지 벗겨 바쳤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결국 그 편지를 들고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섭니다.

인간적인 방법을 붙들고 있는 동안은 전선이 끊어진 것과 같습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무력함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리로 돌아섰을 때, 비로소 그 전선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회복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구했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 명을 쳤고, 산헤립은 본국으로 돌아가 자기 아들들의 손에 죽었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가 구원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이 흐르는 통로를 연 것뿐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끝까지 이루시는 분이니, 인간적인 방법을 내려놓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4.19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열왕기하 19강열왕기하 18:1-8

신앙의 본질을 회복한 히스기야의 개혁

아하스가 더럽힌 성전과 혼합신앙 위에서 히스기야가 왕이 됩니다. 그는 즉위하자마자 가장 먼저 성전을 정결케 하고, 백성들 삶 깊숙이 자리 잡은 산당을 헐고, 사람들이 섬기던 모세의 놋뱀마저 부수어 느후스단이라 불렀습니다.

산당은 하나님을 버린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다른 것과 함께 둔 자리였습니다. 놋뱀은 본래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그 실체이신 하나님 대신 그것 자체를 섬기게 되면서 우상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도 마음속에서 하나님보다 앞서면 부수어야 할 놋뱀이 됩니다.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 기준에서 정직한가에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그 명령을 지켰고, 그 결과 앗수르 앞에서도 담대히 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는 것,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4.12 (추정)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열왕기하 18강열왕기하 17:1-6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하나님의 섭리

앗수르가 강대국으로 떠오르자 호세아 왕은 조공을 끊고 애굽과 손을 잡습니다. 애굽은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했고, 앗수르는 삼 년을 포위한 끝에 사마리아를 함락시켜 북 이스라엘 백성을 여러 지역으로 흩어 버립니다.

멸망의 원인은 정치적 오판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한 마음이었습니다. 금송아지로 시작된 작은 틀어짐이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길이 되었고, 마음이 굳어지며 진노와 심판으로 이어지는 불신의 악순환을 만들었습니다. 이 악순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을 중심에 세울 때에만 끊어집니다.

멸망은 하나님의 포기가 아니라 회복을 향한 과정이었습니다. 흩어져 살던 자리에서 태어난 사마리아인을 예수님은 몸소 찾아가 만나 주셨고, 끝까지 그들을 향한 구원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육을 입고 있는 한, 하나님 앞에 늦은 때란 없습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22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열왕기하 17강열왕기하 16:10-16

악한 왕으로 기억된 아하스

아람과 북 이스라엘 연합군이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유다는 크게 패합니다. 그런데 아하스는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인신제사까지 드리며 우상숭배에 빠진 왕이었습니다. 위기 앞에서도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말씀을 거절하고, 도리어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합니다.

몰렉 숭배의 인신제사는 겉으로는 극단적 헌신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번영을 지키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마저 내어놓는 철저한 자기중심성입니다. 아하스가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한 말도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피하고 자기가 정한 길을 고수하려는 불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침략자들이 패망할 것을 미리 알려 주셨지만, 아하스는 그 말씀을 믿지 않고 세상의 힘에 자신과 나라의 운명을 맡겼습니다.

세상의 권력은 아무리 강해 보여도 결국 하나님이 잠시 사용하시는 도구일 뿐이며, 그 끝은 심판과 멸망입니다. 반면 하나님 앞에 바로 선 자에게는 어떤 세상의 힘도 함부로 손대지 못합니다. 노아, 모세, 욥, 다윗이 하나님께 받은 이름처럼, 하나님 앞에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한 이름으로 서는 것이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3.8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열왕기하 16강열왕기하 15:32-38

어두운 시대를 견뎌낸 요담의 믿음

북 이스라엘이 30년 사이 왕조가 네 번 바뀌며 무너져 가던 그 시절, 남 유다의 요담은 성전 문을 고치고 성벽을 보강하며 조용히 나라를 지켰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단 몇 절만 남겼고, 백성은 여전히 산당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담 개인은 하나님 앞에 정직했지만 백성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끝까지 바른 길을 걸었기에, 뒤이은 악한 왕의 시대에도 유다는 북 이스라엘처럼 순식간에 무너지지 않았고, 다윗 언약과 신앙의 맥은 히스기야와 요시야에게로 이어졌습니다. 바울의 그늘에 있던 디모데도 기적이나 부흥 없이 소심하고 몸이 약했지만, 그의 순종을 통해 바울의 신앙이 오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세상은 영웅과 1등만 기억하지만, 하나님은 시대를 여는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를 견디며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사람도 귀하게 보십니다. 눈에 띄는 업적이 없어도, 묵묵히 정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삶을 하나님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22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열왕기하 15강열왕기하 15:1-7

받은 은혜를 누리지 못한 웃시야

16세에 왕이 된 웃시야는 하나님을 찾는 동안 형통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성을 건축하고 신식 무기까지 갖추어 나라를 부강하게 세웠습니다. 그런데 강성해지자 마음이 교만해져, 제사장만 드릴 수 있는 분향을 자신이 하겠다며 성전에 들어갔습니다.

제사장이 만류해도 왕은 도리어 화를 냈고, 그 순간 하나님은 그의 이마에 나병을 내리셨습니다. 받은 은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가 더 이상 그 은혜를 누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은 한순간이 아니라, 재물과 권력과 칭찬 속에서 서서히 우선순위가 뒤바뀌며 일어나는 일입니다.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별채에 갇혀 왕의 권세도, 왕의 묘실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악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라보다 세상을 좋아하는 본성이 죄를 이기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를 끝까지 누리게 하는 것은 그 은혜에 감사를 잃지 않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