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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공의로운 해가 되시는 그리스도
말라기 11강말라기 4:1-6

공의로운 해가 되시는 그리스도

이스라엘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부르짖다가 삶이 편안해지면 다시 형식적인 제사와 흠 있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 제사로는 죄를 용서받을 수 없어,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셨습니다.

말라기는 초림 예수님을 전할 마지막 선지자로 세례요한을 가리켰고, 세례요한은 형식적인 신앙을 책망하며 회개를 외쳤습니다. 그 복음을 듣고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사람은, 엘리야 앞에서 결정을 미루던 이스라엘 백성과 같습니다.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짐승처럼, 선악을 분명히 가르고 말씀을 늘 상고하며 사는 신앙이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성도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이 비추고, 고삐 풀린 송아지처럼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심판과 구원의 완성이므로, 지금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성도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만, 믿지 않은 세상은 진노의 불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1.2
여호와 앞에 펼쳐져 있는 기념 책
말라기 10강말라기 3:16-18

여호와 앞에 펼쳐져 있는 기념 책

이스라엘 백성은 선지자에게 책망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악인이 번성해도 벌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여호와를 경외하는 의인들도 있었고 그들의 말과 결단은 하나님 앞에 있는 기념 책에 낱낱이 기록되었습니다.

다니엘은 심판대 앞에 많은 책이 펼쳐진 환상을 보았고, 훗날 제자 요한도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대로 그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받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악인의 죄와 의인의 선행이 마치 두 바퀴처럼 함께 굴러가지만, 심판의 날에는 하나는 그리스도의 품으로, 하나는 심판으로 갈라집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리기까지 순종했던 것처럼,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라야 기념 책에 새겨집니다.

성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천국과 심판이 없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핍박과 환난이 닥쳐도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첫째 부활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 동안 왕 노릇 하게 됩니다. 기회가 있을 때 죄를 회개하고 진리 안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영원한 축복을 얻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10.26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
말라기 9강말라기 3:13-15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사랑한다, 돌아오라 말씀하셔도 언제 사랑하셨느냐,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여섯 번이나 말대답을 합니다. 유다에서는 요시야 왕이 죽은 뒤 악인이 의인을 핍박해도 심판이 임하지 않자,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을 조롱하며 회개를 헛되다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은 죄를 모르셔서가 아니라 심판의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즉시 벌이 없으면 사람은 화인 맞은 심령처럼 두려움을 잃고 점점 더 대담하게 죄를 짓지만, 손을 드시는 순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이 침묵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 질문을 던지시며 끝까지 인내하고 계셨습니다.

좋은 성품과 진실된 회개 없이 형식만 반복하는 신앙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의인은 고난 중에도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하며, 세상의 형통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심판대 앞에 설 날을 기억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기회를 붙잡아 돌이켜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9.21
나를 시험하라는 하나님
말라기 8강말라기 3:7-12

나를 시험하라는 하나님

제사장들이 세상과 우상에 마음을 빼앗기자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을 잃었고, 백성은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레위인은 살기 위해 밭으로 도망가야 했고, 백성은 이혼과 잡혼을 하며 점을 치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돈이 아니라 말씀대로 살려는 참된 믿음과 삶이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서도 정의와 자비와 신의를 저버렸다면 그 헌금은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한 수단일 뿐, 하나님께서 받으실 공의로운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뒤 자신을 시험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부어 주시고, 메뚜기와 흉작에서 지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돕고 교회가 일할 수 있도록 정직하게 드리는 삶이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8.17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공의로운 제물
말라기 7강말라기 3:1-6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공의로운 제물

제사장이 드리는 짐승 제사로는 죄를 씻을 수 없어, 예수님께서 직접 몸을 입고 오셔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을 구하고 돌아올 때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그를 축복했고, 아브람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렸습니다.

멜기세덱이 가져온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보혈을 가리킵니다. 아브람이 율법이 있기 전에 스스로 십일조를 드린 것은, 자신의 모든 소유와 생명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이미 믿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성도들의 죄를 단번에 사하셨습니다.

성도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흘리신 피 덕분에 죄 사함을 받은 것이니, 헌금과 헌신은 그 은혜를 인정하는 고백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분이므로 그 언약을 붙든 성도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정직한 믿음과 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8.3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라기 6강말라기 2:10-17

정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한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서약하고 한 몸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남자들은 어려서 만나 함께 고생한 아내를 버리고 이방 여인과 혼인했습니다. 솔로몬이 그렇게 이방 여인들의 우상을 성전 곁에 두었고, 그 죄로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아내를 버리는 것은 단지 헤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부부를 맺어 주신 하나님을 배신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드리는 제사와 봉헌물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고, 어찌하여 정의의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으시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죄를 지어도 바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해서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돌이킬 기회를 주시며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 인내를 악용하지 말고 회개해야 합니다. 가정을 맡은 이들이 서로에게 신실한 책임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지켜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7.27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
말라기 5강말라기 2:1-9

레위와 세운 하나님의 언약

제사장은 번제단과 향단에서 백성의 속죄를 위해 일하고, 그 직무의 뿌리에는 레위와 맺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입술이 지식을 지키고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제사장들은 뇌물을 받고 병든 제물을 바치며, 백성에게 진리를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제사장은 여호와의 사자이기에, 그가 전하는 말씀에 따라 한 영혼이 천국과 지옥으로 갈립니다. 백성은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을 통해 말씀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절기 제물의 똥을 제사장의 얼굴에 바르겠다고, 성막 밖으로 버려지듯 그들을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심판은 제사장 한 사람만이 아니라 그 가족과 백성 전체에게 미칩니다. 다른 사람도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은 핑계가 되지 못하며,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기에 죄는 여전히 죄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언약을 지킬 때, 부족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7.13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말라기 4강말라기 1:10-14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제사장들이 건강한 제물은 자신이 갖고 병든 것만 골라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은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탄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조상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위대함을 배우고 그 보호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감사 대신 하나님의 이름과 법을 멸시했고, 인자와 자비가 계속되자 도리어 말대답하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반면 이방민족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겪었기에 오히려 이스라엘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훗날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믿음의 역사로 이어질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사람은 속여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신뢰하며 돌이키는 믿음을 붙들었습니다. 세상 총독에게도 하지 못할 일을 하나님께 거침없이 행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좁은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29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말라기 3강말라기 1:6-9

더러운 떡을 드리는 타락한 제사장들

제사장들이 부정한 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도, 어떻게 주를 더럽게 했느냐고 말대답을 합니다. 건강한 소와 양은 자기 몫으로 챙기고 병들고 눈 먼 것만 골라 제단에 올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사람도 받지 않을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죄인 줄 모르는 것, 그것이 바로 강퍅해진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심판하지 않으신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의 온전한 섬김이 곧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권세자에게는 좋은 것을 바치면서 하나님께 드릴 것은 계산하고 아까워하는 마음을 돌아봐야 합니다. 정직한 예배와 정직한 헌금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이 이 말씀의 결론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5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말라기 2강말라기 1:3-5

너희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에서는 아버지의 유산을 이어받아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쌓은 것을 헐겠다고 경고하셨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있다며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돌로 만든 작품은 오래도록 형태를 지키지만 모래로 만든 작품은 파도 한 번에 무너집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견고히 세운 신앙은 돌처럼 남지만, 겉으로만 충만한 신앙은 모래처럼 쉽게 흩어집니다. 에돔은 스스로 힘을 자랑했지만, 하나님이 보호의 울타리를 거두시자 스스로 무너져 결국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다면 변명하지 말고 돌이켜야 합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갔을 때 환대받은 것처럼, 쌓은 것이 자꾸 무너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다시 가까이 오라 두드리시는 신호입니다. 교만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야곱이 받은 사랑과 축복을 그대로 받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6.1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1강말라기 1:1-3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

말라기 선지자가 활동하기 전, 이스라엘 백성은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지만 100년이 지나도록 기대했던 영광이 오지 않자 하나님을 의심했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온전히 드리지 않았고, 제사장들도 함께 타락하여 이혼과 이방 여인과의 혼인이 이어졌습니다.

풍요를 주지 않는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이 아니었기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심판은 하나님이 갑자기 변덕을 부린 것이 아니라, 예레미야를 통해 오래전부터 경고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버릴 만큼 은혜를 가볍게 여겼기에 복을 스스로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시기 전에 반드시 먼저 경고하십니다. 그 경고는 책망하려는 것이 아니라 회복시키려는 사랑입니다. 지금 형편이 풍요롭지 않다고 불평하지 말고, 고난조차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여 회개하고 감사하면 그 자리가 축복의 자리로 바뀝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5.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