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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로마서 11강로마서 3:19-31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자신을 건져줄 배는 없습니다. 권력도 재산도 선한 행실도, 몰아치는 파도 앞에서는 그들의 입을 막아 버릴 뿐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사이, 구조선은 이미 사고 현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율법은 사람이 스스로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것이고, 그 깨달음 뒤에야 메시아를 기다리는 믿음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만세전부터 예비된 하나님의 의로, 구약부터 지금까지 믿음으로 살아온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구원하십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기도와 헌금과 헌신을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것조차, 사망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의인이라 칭함받은 그 은혜를 기억하며 범사에 감사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0.24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로마서 10강로마서 3:9-18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사도바울은 은혜를 맛보고도 세상 쾌락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의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들,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거룩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죄가 복수로 쓰일 때는 사람이 짓는 여러 악행을 뜻하지만, 단수로 쓰일 때는 사탄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뜻합니다. 아담이 죄인이 된 이후 모든 사람은 사탄을 아비로 두고 태어났고,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죄는 처음에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지만 반복될수록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사탄을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자신을 살리신 하나님을 만나고 다른 사람의 회복을 바랐던 것처럼, 어둠 속을 헤매는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0.3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로마서 9강로마서 3:1-8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형식만 남은 신앙으로 이방인을 가르치는 것을 혹독하게 책망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이 오히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낸다며, 그렇다면 왜 책망을 받아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율법을 받은 선민이라는 사실이 그들을 교만하게 만들었을 뿐, 참된 믿음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아무리 죄를 지어도 아버지의 선함이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사람의 거짓과 불신실함은 하나님의 참되심을 조금도 흔들지 못합니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의 계획을 멈추게 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했어도 하나님은 그들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고, 같은 유대인 바울을 세워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으며, 회개는 핑계가 아니라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만 가능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9.26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로마서 8강로마서 2:17-29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바로에게 갈 때 모세는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대답해야 하느냐고 여쭤 봅니다. 40년 왕자, 40년 목동으로 훈련받은 그는 정작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에게 율법을 주셨지만, 그들은 그것을 자랑거리로 삼고 이방인을 맹인이라 조롱했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가르치며 도둑질하고, 간음하지 말라 가르치며 간음하고, 신전 물건을 훔치기까지 했습니다. 할례를 구원의 증표로 여겼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그 할례는 무할례와 같습니다.

가르치는 자는 먼저 자신에게 그 말씀대로 사는지 물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은 하나님을 욕되게 할 뿐이고, 참된 할례는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입니다. 받은 은혜가 클수록 언행이 일치해야,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9.19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니
로마서 7강로마서 2:11[설립18주년 예배]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니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은 예배 드릴 장소를 두고 다투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도 그리심산도 아니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알고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 드리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예배 드리는 대상을 온전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므로, 가진 것과 자리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사람의 죄일 뿐입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에게 각각 다른 출발선을 정해 주셔서, 누구나 결승점을 통과해 우승자가 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시절에도 각자의 처소에서 온전히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남과 비교하며 자신을 불행하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이 정해 주신 자리에 서서 감사와 소망만 마음에 담고 나머지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달릴 때 반드시 결승선을 통과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게 될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9.5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로마서 6강로마서 2:1-15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바울은 남을 판단하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남을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을 뿐 실은 자신도 그 죄를 지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회개의 기회로 알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그렇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한다는 사실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정죄할 자격을 주지 않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자랑하는 것이며, 하나님은 겉으로 드러난 선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혼인 잔치에 초청받고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처럼, 은혜를 받고도 그 은혜의 무게를 잊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정하게 갚으십니다. 참고 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를 갚으십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는 육체를 가진 지금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구원의 옷을 입고 오늘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29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로마서 5강로마서 1:23-32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하나님을 알면서도 거부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진노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을 그대로 벌하지도, 회개시키지도 않고 그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로마의 타락, 오늘의 성적 문란이 모두 그 증거입니다.

책망하고 화를 내는 것조차 그 바탕에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무 반응 없이 그대로 두시는 것이 더 무서운 형벌입니다. 회개하도록 도와주시는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사람은 스스로 죄의 자리를 떠날 수 없습니다.

성도는 천국을 알기에 세상 사람들보다 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은 성도가 넘어지도록 끊임없이 일하지만, 성령께 의지하면 그 유혹에 얼마든지 저항할 수 있습니다. 세상과 사람을 보면 넘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그 세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알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22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로마서 4강로마서 1:18-25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천지가 창조될 때 빛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물러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하셨지만,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여 그 말씀을 어겼고, 이후 벗었음을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빛을 거부한 마음은 늘 혼란과 공허와 어둠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사람 속에 이미 있는데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으면 그 자리를 육체의 쾌락과 우상이 차지합니다. 아담이 자기 잘못을 하와 탓으로 돌린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직장과 배우자와 건강을 탓하며 자기 책임을 회피합니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창조하신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분명히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버리지 말고, 진리를 막지 말고, 빛을 더 사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15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3강로마서 1:8-17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노라

전염병이 관계와 삶을 흔들고, 예배당에 마음껏 나올 수 없는 시절이 이어집니다. 그 자리에서, 정말 그리스도와 복음이 절실한 사람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 이미 믿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오래 교회를 다니며 안다고 여기는 순간 마음이 굳어지고 은혜를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세상 사람보다 오히려 그 사람 자신이 먼저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바울처럼,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어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도, 그 믿음이 자라 삶으로 드러나는 것도 다 구원의 과정입니다. 사람과 환경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인내하는 신앙을 붙들라고 전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8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로마서 2강로마서 1:1-7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

바울은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 소개합니다. 노예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던 로마 사회에서, 도망칠 곳도 자기 인생도 없는 그 처지를 스스로 택한 말입니다. 그는 오랜 세월 선지자들이 예언한 메시아가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 그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613가지 법을 지킬수록 오히려 죄가 쌓일 뿐이며, 황소와 염소의 피로도 죄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율법은 가드레일처럼 이 길을 벗어나면 죽는다는 경고일 뿐, 그 경고를 듣고 안전한 길인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구원입니다.

택정함을 입은 성도의 이름은 창세 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그 사람이 필요해서 부르신 것이니, 지금 자유의지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어떤 유혹에도 그리스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믿음이며 순종이며 구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8.1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로마서 1]
로마서사도행전 9:1-9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로마서 1]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 강한 빛에 싸여 땅에 엎드립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들립니다. 네가 박해하는 그 예수라는 음성이었습니다.

그 순간 사울이 지켜 온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유대인의 신분도, 로마 시민권도, 율법의 지식도 더 이상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이단이라 믿고 박해하던 그가, 그 예수가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사실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세상의 특혜를 버리고 복음을 위해 쓴 삶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그를 두려워할 때 바나바가 그를 세워 주었고, 그렇게 세워진 사람이 훗날 목숨을 다해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거저 받은 은혜를 목숨으로 갚은 삶이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