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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로마서 23강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은 자기 동족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며, 그들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 동족은 하나님이 직접 선택하고 부르신 민족이었고, 언약과 율법과 약속을 받았으며, 그 혈통으로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리브가의 뱃속에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도 전에, 행위와 상관없이 한쪽은 사랑을 받고 한쪽은 미움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는 개인의 구원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가리킵니다. 은혜를 받은 자궁 안에서도 다시 갈라지듯, 선택받은 백성 안에서도, 이방인 안에서도 남은 자와 아닌 자가 나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빚듯, 하나님은 각 사람을 지으신 용도대로 사랑하시며 그 선택에 불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아니라 남은 자만 구원을 받듯이, 지금도 한 가정과 한 교회 안에서 누가 남은 자로 설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인내하며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남는 자가 마지막 날 의롭다 하심과 영광을 받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3.27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대적하리요
로마서 22강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대적하리요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섭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은 그 체격을 보고 이미 겁을 먹었지만,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세상 무엇도 하나님과 성도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관계를 끊을 수 있는 단 하나는 나 자신입니다. 다윗도 사울을 죽이지 않았지만 밧세바를 선택했을 때 스스로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고난은 도리깨로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듯 내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냅니다. 칼이 목에 닿아도 넉넉히 이길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조건 없이 생명을 내어주신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더욱 단단하게 붙들어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3.13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로마서 21강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바울은 지금 당하는 고난이 장차 나타날 영광과 견줄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을 상속받으려면 그리스도의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피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부자로 살 때나 모든 것을 잃었을 때나 같은 믿음을 가졌고, 친구들의 정죄에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은 것은 그 은혜가 조건 없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연약한 성도를 대신해 탄식하며 기도하고, 손을 붙들어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십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인내하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 영광이 완성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3.6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로마서 20강

영의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예수님이 부활 후 성령을 약속하시고,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불의 혀 같은 것이 임합니다. 겁에 질려 예수님을 버렸던 그들이 성령을 받은 뒤로는 담대하게 각 나라 말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사람과 영을 따르는 사람의 생각이 다르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지혜롭게 판단했다고 여겨도, 실은 그 사람이 어떤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가 그 선택을 결정합니다. 성령이 그 사람 안에 계시지 않으면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니라고 분명히 선을 긋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고 사는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종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셨기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자가 되어 영광도 고난도 함께 나눕니다. 육신대로 살면 죽고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는 것, 그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각자의 몫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2.6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로마서 19강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지만, 사람은 자기 안의 죄를 감추고 결과가 좋으면 용서받으리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조차 원하는 선은 행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며 탄식했습니다.

이것은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문제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뒤 인간이 갖게 된 선과 악의 기준은 결국 자기 중심이므로, 우리가 선하다고 여기는 것조차 악입니다. 그래서 평생을 사명에 헌신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 목사님의 죽음을 두고도, 사람들은 자기 잣대로 그것을 심판처럼 판단하려 합니다.

죽음을 앞두고 그 목사님이 남긴 마지막 글은, 모든 방법이 실패한 순간에도 하나님은 함께 계시며 그 일은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었습니다. 곤고한 이 사망의 몸에서 우리를 건지는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판단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사는 것, 그것이 참된 선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1.30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로마서 18강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왕이 백성을 다스릴 때 헌법이 있고, 남편과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 결혼이 두 사람을 묶습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만 법이 그를 주관하듯, 배우자가 죽으면 그 법적 효력은 끝납니다.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 법에 비추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대속하실 그리스도께 나아가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뜻을 모르고 스스로 행위로 구원을 이루려 했고, 그것이 오히려 은혜를 가로막는 죄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죄를 향해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율법이 주관하지 못합니다. 새벽기도든 헌금이든 스스로 만든 법에 매여 죄의식으로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1.23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성도들
로마서 17강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성도들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서 세 사람이 절하지 않고 섰습니다. 풀무불에 던지겠다는 말 앞에서도, 하나님이 건져주지 않으셔도 절하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

이들은 이미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로 서 있었기 때문에 왕의 협박이 무섭지 않았습니다. 죄가 다스릴 몸이 없으니 굴복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내어주지 않고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결단이 그 순간의 담대함으로 나타났습니다.

용광로에서 나온 세 사람은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았고, 왕은 그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된 사람은 이제 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습니다.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2.19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은 우리
로마서 16강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은 우리

바다가 두 갈래로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걸어서 건넙니다. 뒤쫓던 애굽 군대는 다시 합쳐진 바닷물에 그대로 잠겨 죽습니다.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다는 고백입니다. 하지만 세례는 형식입니다. 형식으로 받은 세례라고 해서 모두 거듭나는 것은 아니고, 거듭나게 하는 것은 개인이 받는 성령의 세례입니다.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다시 죄에 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위의 것을 바라보며 인내로 살아가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지하면 이 세상에서 만나는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2.5
그리스도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15강

그리스도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그 자리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담의 죄는 그 한 사람의 죄로 끝나지 않고 모든 후손에게 전가되어, 죽음을 피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율법은 사람을 구원하지 못합니다. 율법은 다만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 알려주는 담장일 뿐이고, 그 담장 안에 머무는 것은 썩은 동아줄을 붙드는 것과 같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와 사망을 왕 노릇 하게 했다면,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사망의 구덩이에서 사람을 건져내어 의롭다 하심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 은혜는 크고 작은 죄를 가리지 않고 다 덮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열린 문 앞에서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들어서는 것뿐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1.28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로마서 14강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낯선 땅으로 건너갔습니다. 인디언의 습격과 전염병으로 형제들을 절반 넘게 잃고도, 첫 수확을 얻자 자신들을 공격했던 인디언들을 불러 함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연단은 다이아몬드가 깎이는 과정과 같습니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던 것이 깎이고 다듬어져야 빛을 내듯, 환란과 인내를 통과해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님과 화평을 얻은 사람은 세상의 환란보다 그 은혜가 크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겪은 고난은 저주가 아니라 미국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환란을 감사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소망을 품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아픔보다 크기 때문에, 연단을 만나도 소망을 가지고 주의 법을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1.21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로마서 13강로마서 4:13-25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100킬로 제한이 없는 도로에서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율법은 그렇게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것이지, 그것을 지켜서 의롭게 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은 율법보다 사백삼십 년 앞서 있었고, 후에 생긴 율법이 그 언약을 취소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신다는 말씀을 믿었지만, 그 약속이 더디 이루어지자 조급한 마음에 이스마엘을 낳기도 하고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세우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실수를 거치며 그는 생명을 주실 분이 오직 하나님뿐임을 배웠고, 백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 앞에서 인간적인 아픔과 순종 사이의 갈등을 지나 결단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의롭다 하신 것은 행위가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은 그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는다면 아브라함의 믿음도, 이방인의 구원도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도 의로 여겨지는 유일한 길입니다. 못자국 난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하나님께만 집중할 때,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길이 분명해집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1.7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로마서 12강로마서 4:1-12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

천사가 찾아와 아브라함에게 자손이 뭇별처럼 많아질 것이라 약속합니다. 자식이 없던 그로서는 의아했을 법한 말씀이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것은 자손의 번성만이 아닙니다. 그 후손으로 그리스도가 오실 것까지 믿었기에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례나 이삭을 바친 행위가 아니라, 오직 그 믿음이 그를 의롭다 하신 근거였습니다. 일해서 받는 삯은 은혜가 아니라 보수이듯, 구원은 경건하지 않은 자를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지 자신의 헌신에 대한 대가가 아닙니다.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경건하지도 않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로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노력을 자랑거리로 삼으려는 마음은 교만이며, 참된 믿음은 노력 없이도 감사와 순종으로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삶이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고,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의지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