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 설교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
산상수훈 8강마태복음 5:1-12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에게도 하늘의 상이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세상이 싫어합니다. 감추고 싶은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진리를 전하면 핍박이 따라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은 것처럼 여겨질 정도로 매를 맞았지만, 주님을 영접하지 못한 영혼들을 오히려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 세상 자체가 성도를 정금으로 만드는 용광로이므로, 그 시련을 피해 도망 다니면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훈련의 강도를 높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고서야 자신의 입술이 부정했음을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우리도 지금 회개할 기회가 있을 때 정직한 삶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핍박과 고난은 성도가 혼자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 감당하시며, 그 헌신을 보신 하나님께서 상급으로 평안과 안식을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9.24
화평케 하는자
산상수훈 7강마태복음 5:1-12

화평케 하는자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뺨을 맞으면 다른 뺨도 내주고 겉옷을 빼앗기면 속옷까지 내주라는 말씀이 그 화평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과 화평하시려고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물과 피를 다 쏟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지만, 자기 눈 속의 들보부터 빼내고 상대의 단점을 자기 단점을 고치라는 음성으로 듣고 회개하는 사람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배도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정으로 다듬은 돌처럼 인간의 의와 정성으로 꾸미면 받으실 수 없고, 토단처럼 있는 그대로 드리는 산 제물이라야 받으십니다. 낮은 자리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틀어진 관계를 회복시키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아들이라 하시며 천국에 들어갈 복을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9.17
마음이 청결한 자
산상수훈 6강마태복음 5:1-12

마음이 청결한 자

무너져 가는 집에 거미줄이 걸려 있으면 아무리 좋은 음악도 소음으로 들립니다. 사람의 심령도 그와 같아서, 근심과 욕심의 거미줄이 걸리면 은혜도 충고도 의심하게 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성품이 착하다는 말이 아니라 믿음이 자랐다는 말입니다. 창문이 더러우면 아름다운 풍경도 보이지 않듯, 마음이 깨끗해야 하나님의 은혜와 자기 죄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백성은 올라오지 못했지만 모세는 부름을 받았는데, 그것은 그가 자기 생각과 두려움을 버리고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꽃이 단단한 마음을 녹여 하나로 이을 때, 떼려야 뗄 수 없는 교회가 됩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지 않는 삶으로 마음을 씻어갈 때, 그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뵙는 복을 받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9.10
긍휼히 여기는 자
산상수훈 5강마태복음 5:1-12

긍휼히 여기는 자

에덴동산에서 사람은 하나님의 자리를 욕심 내다가 선악과를 먹고 사망의 굴레에 갇혔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직접 육신을 입어 십자가를 지심으로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제사장과 레위인은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불쌍히 여겨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돌보았습니다. 예루살렘이 교회이고 여리고가 세상이라면, 교회 안에만 머물러 안심하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마음 없이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형식적인 예배와 자신의 구원만 소중히 여기는 신앙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여리고를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사랑을 보시고 넘치는 사랑으로 채워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8.27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산상수훈 4강마태복음 5:1-12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

사마리아가 아람 군대에 포위되자 두 여인이 서로 자식을 잡아먹기로 하는 지경까지 이릅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 말을 듣고 옷을 찢으며 탄식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에 주리고 목마름은 바로 이 여인들이 겪은 것 같은 처절한 영적 기근을 뜻합니다. 세상이 주는 물은 스스로 떠 먹어야만 목을 축이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은 한번 마시면 심령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입니다.

성도라면 말씀을 깨닫는 기쁨이 세상 어떤 좋은 일보다 커야 하고, 예배를 온전히 드리지 못하면 마음이 찢어지듯 아파야 합니다. 그렇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면 배부를 것이며, 그 생명의 물을 나누어 주는 이에게 하나님께서는 땅의 기업을 축복으로 주실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8.20
온유한자
산상수훈 3강마태복음 5:1-12

온유한자

돌로 막아도 곧 바닥을 드러내는 웅덩이가 있고, 돌을 던져도 다 품으며 흔들림 없이 흘러가는 강물이 있습니다. 스데반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다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온유함은 사람 좋다는 평판을 쌓는 것이 아니라, 강물처럼 넓은 마음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고난을 피하지 않고 견디는 것입니다. 감정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은 상처도 쉽게 받고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기 어렵지만, 인격이 선한 사람은 혈기를 참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을 기뻐하던 사울은 훗날 그 기도의 응답으로 부르심을 받아, 스데반을 닮으려 애쓴 사도가 되었습니다.

성전도 신분도 아닌,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그대로 전한 삶이 지경을 넓혔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흩어진 성도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를 세웠듯,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자기 생각과 감정을 넣지 않고 말씀을 그대로 전하며 인내하는 삶, 그것이 온유한 자의 모습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8.6
애통하는자
산상수훈 2강마태복음 5:1-12

애통하는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죽은 곳에서 눈물을 흘리십니다. 마르다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대답하면서도 곧장 마리아를 부르러 갔고, 입으로는 믿는다 하면서도 행동은 그대로였습니다.

산상수훈의 애통은 사람이나 물질로 채워지는 고통이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보며 아파하는 마음이고, 자신이 끝까지 믿어드리지 못한 죄를 보며 아파하는 마음입니다. 예레미야도 백성이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을 보며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으로 눈물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애통하는 자에게는 위로가 있습니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처럼, 영혼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하는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곁으로 오셔서 안아 주시며 큰 위로와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7.30
심령이 가난한자
산상수훈 1강마태복음 5:1-12

심령이 가난한자

예수님께서 산에서 말씀하실 때,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던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세상의 권세와 물질, 인간의 의로 마음을 채우지 않고 비워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 만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자신은 그것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일 뿐임을 받아들일 때, 소유욕에서 벗어나 신실한 믿음으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사탄의 말을 따랐다가 모든 것을 빼앗겼고, 그 죄값을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대신 치르셨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물질을 얻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지만, 그것을 자기 소유로 여기고 마음을 빼앗기면 청지기의 자리를 잃습니다. 받은 것에 만족하며 선한 일에 그것을 나누어 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을 맡기시고, 세상에서 받는 어떤 핍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영원한 천국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