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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겸손의 왕 (성탄감사예배)
빌립보서

겸손의 왕 (성탄감사예배)

아기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마구간, 말구유라는 가장 낮은 자리에 태어나셨습니다. 첫사람 아담의 죄로 어둠에 갇힌 인간을 건지시려고, 죄 없는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사망의 권세를 이기셔야 했습니다.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기에 예수님은 모든 인류를 품으실 수 있었습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은 이제 빛의 자녀가 되어 각자 받은 그 생명의 빛을 등경 위에 두어야 하지만, 사람이 가진 빛은 자기 주위만 비출 수 있기에 믿음의 형제들이 함께 모여 서로의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야 합니다. 힘의 논리로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누르는 것은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의 로마도, 지금 이 세상도 다르지 않지만, 다니엘이 전한 신상의 꿈처럼 그 모든 나라는 무너지고 산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만이 영원히 설 것입니다.

성탄절은 그 죄 사함과 생명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 은혜를 받은 자리에서 가족과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하고, 어두워지는 세상 가운데 생명의 빛을 높이 드는 성숙한 성도로 자라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지현 목사님 · 2024.12.22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빌립보서 9강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름을 거절하며 두려워합니다. 바로왕과 싸워 이겨야 했고, 자기 혼자였다면 견딜 수 있었을 시험도 백성의 믿음까지 책임져야 하니 훨씬 무거웠습니다. 그런데 열 가지 재앙과 홍해의 기적을 지나온 백성들은 그 은혜를 자기 것으로 만들고는, 물 한 모금을 놓고 모세에게 불평합니다.

큰 은혜를 받은 다음이 가장 위험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사람은 계속 무언가를 더 달라고 찔러보게 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그 백성을 마음 밖에 내놓지 못해서 화를 내고, 그 서운함에 넘어져 결국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옥에 갇혀서도 어떠한 형편에서든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자기 고통과 복음 전하는 사명을 섞지 않고, 고통은 마음 밖에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앞에서 넘어지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감정을 스스로 추스르지 못하면 모든 일에 실패합니다. 겸손한 자리에서 사명을 감당하면 하나님께서 능력과 평강을 주시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28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8강

나의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도 십자가 앞에서 두려움에 배신했습니다. 훗날 보좌에 앉으신 그리스도와 생명책을 직접 보고 나서야, 자신의 죄와 그날 다하지 못한 믿음을 깨닫게 됩니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잊히지 않고, 믿음이 자랄수록 오히려 더 또렷하게 보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다툰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각자 자기 판단과 자존심을 앞세우며 "이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라 말했지만, 그 속에는 자기 뜻을 굽히기 싫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지식과 자기주장으로 풀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구원의 문제가 아니라면 양보하고, 성령께 맡기고 잠잠히 참으면 하나님이 때를 따라 해결하십니다. 그렇게 관용하며 산 삶이 그대로 보좌 앞 책에 기록되고, 하나님은 그 삶을 보고 계십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6.2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
빌립보서 7강

하나님 나라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

불법 체류자는 신분증 하나 없이 늘 불안하게 살아갑니다. 붙잡히면 곧바로 쫓겨나고, 일할 때도 무시를 당해도 반격하지 못합니다.

성도도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 잠시 머무는 동안은 세상 법을 그대로 따를 수 없고, 하나님 나라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세상의 시민권을 스스로 내려놓은 것입니다. 바울은 세상이 자랑하는 것들을 이미 가져봤기에 그것을 버리고도 부끄럽지 않았고, 조롱당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천국 시민권을 지키는 길은 어떤 형편에서도 말씀대로 믿음으로 사는 것뿐입니다. 세상과 타협해 자기 뜻대로 살면 그 시민권은 박탈됩니다. 하늘의 시민권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죽음도 두려움도 이기고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4.1.21
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 6강

푯대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자신이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유대인이요 베냐민 지파요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바리새인이었다고 말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난 뒤, 그는 자랑하던 가문과 학벌과 로마 시민권을 스스로 버렸습니다.

버렸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힘으로 삼지 않는 것이 버리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믿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는 뜻이고, 라합이 창문에 붉은 줄을 매단 것처럼 그 은혜를 가진 사람은 삶으로 그것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매를 맞고 옥에 갇히면서도 바울이 멈추지 않은 것은 그 믿음이 참되다는 증거입니다.

표대를 향하여란 뒤에 있는 것을 다 잊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성도가 빛을 비추지 않으면 스스로 바뀌지 않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표대를 향해 달려가면, 성령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시고 잘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8.13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함께 있을 때는 믿음을 잘 지키던 이들이 혼자 있게 되자 서로 높아지려 다투고, 형제에게 대접받으려는 교만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빨리 돌이키라고,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합니다.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다시 구원을 받으라는 뜻이 아니라, 받은 은혜를 지켜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예배가 부담스러워지고, 말씀이 마음을 찌르는 것이 불편해지다가, 결국 스스로 구원 밖으로 걸어 나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미리 배신을 알려주셨는데도 도망친 제자들처럼, 경고를 듣고도 무뎌진 마음이 가장 위험한 자리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잘 자라는 것이 자신의 자랑이자 열매라며,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기는 죽어도 좋다고 고백합니다. 성도가 해야 할 일은 크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구원 앞에서, 있는 자리마다 등불을 밝히듯 믿음을 드러내며 서로 겸손히 섬기는 것, 그것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는 삶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4.30
마음의 할례
빌립보서 5강

마음의 할례

구원받은 감사를 잊으면 세상이 더 커 보이고, 그러면 기쁨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불평과 분쟁이 생기는 것도 교회의 일을 하나님의 일로 여기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삶을 성령께 온전히 맡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믿음 없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 하면 교만해지고, 그 교만이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죄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형제의 중보기도로 어려움을 넘기고도 다시 교만해진다면, 기도한 사람은 축복을 받지만 그 사람은 책망을 받습니다.

성도가 겸손히 성령을 따라 살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광을 받으십니다. 육신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로 완전히 변화되어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진리에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 전한 말씀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6.7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빌립보서 4강빌립보서 2:12-18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

바울과 함께 있을 때는 믿음을 잘 지키던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지켜야 하는 자리에서는 흐트러졌습니다. 서로 높아지려 다투고 대접받으려는 교만이 있었고, 바울은 그것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말로 다잡아 줍니다.

구원은 예수님이 다 이루신 일이지만, 그 전기를 스위치에 연결해 불을 밝히는 수고는 성도의 몫입니다. 세상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시간이 쌓이면 결국 구원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그 순간이 바로 사탄이 파고드는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제자들이 배신을 미리 들었으면서도 설마 하다가 결국 예수님을 버렸듯이, 경고를 듣고도 무뎌진 마음은 스스로 하나님의 울타리를 걷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잘못되어도 돌이키기만 한다면 자신은 죽어도 좋다고 고백합니다. 듣기 힘든 충고를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오히려 축복받고 있다는 증거이니, 그 말을 소중히 여기고 말씀에 순종하며 목숨을 다해 믿음을 지켜내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3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서 3강빌립보서 2:1-11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교회 안에는 소유가 많고 직분이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높이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칭찬으로 편지를 시작했지만 이 분열 앞에서는 책망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돌이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 높고 낮은 자리가 없습니다. 자기가 옳다는 인간의 의를 기준으로 세우면 다툼이 생기고, 오직 말씀이 기준이 되어야 겸손한 권면과 순종이 가능합니다. 성자 하나님이 종의 형체를 입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이 바로 그 낮아짐의 본입니다.

세상은 이기고 올라서야 인정받지만 교회는 전혀 다른 곳입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며 남을 낫게 여기고 겸손히 순종할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높여 주십니다. 인간의 의를 버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 그것이 부끄럽지 않은 삶의 길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24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유익함이라
빌립보서 2강빌립보서 1:12-21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유익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복음 때문에 감옥에 갇혔다는 것을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알기에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기쁘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그로 인해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듣게 된다면 그것으로 기뻐한다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겪으며 성장한 성도가 그 고통의 시간을 다른 사람을 돕는 도구로 쓰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보시고 칭찬하십니다. 사람은 결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과정을 보시기에, 자기 의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는 겸손이 참된 헌신입니다.

바울은 살아서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유익하고,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합니다. 자기를 위해 살고자 하는 자는 죽고 하나님을 위해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이 믿음이, 세상의 조롱과 핍박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당하게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17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빌립보서 1강빌립보서 1:1-11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바울은 옥에 갇힌 채로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생각하며 감사와 기쁨으로 기도합니다. 그 성도들은 루디아의 헌신으로 세워진 이후, 바울이 고난을 당할 때나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변함없이 물질과 기도로 함께했습니다.

바울은 이 사랑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사모한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내어주신 것처럼 생명을 주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한 것이며, 이 사랑은 서로의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진심에서 나온 것입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사랑이 풍성해질 때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혜가 생기고, 그 지혜가 믿음을 그리스도의 날까지 온전하게 세웁니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서로를 섬긴 바울과 빌립보교회 성도들처럼, 의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