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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설교

하나님의 때와 우리가 정한 때 (설립20주년예배)
창세기

하나님의 때와 우리가 정한 때 (설립20주년예배)

물줄기 교회가 설립 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작은 방 한 칸에서 방석을 놓고 예배드리던 성도들이 저마다 받은 은사로 헌신하며 교회를 단단하게 세워 왔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는 38년 동안 물이 움직이는 그때를 자기 때로 정해 놓고 기다렸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하면서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관심을 두지 않고 이미 정해 놓은 응답만 구하기 때문입니다. 야곱도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하기 전까지는 자기 힘으로 두려움을 피해 도망 다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가장 빠르게 순종하는 길은 하나님의 때에 우리 때를 맞추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을 때 이름이 바뀌고 형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졌듯이, 우리도 기도라는 열쇠로 하나님의 마음과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요셉의 곳간에 나온 사람이 빈손으로 돌아간 적이 없듯이,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사람도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3.9.3
노아를 통해 방주를 만드신 하나님 (헌츠빌제일순복음교회 연합구역예배)
창세기

노아를 통해 방주를 만드신 하나님 (헌츠빌제일순복음교회 연합구역예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아담은 사탄의 유혹을 따라 선악을 자기 중심으로 판단하는 죄를 지었고, 그로 인해 세상은 점점 부패해 심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에 포악함이 가득할 때 유일하게 자신과 동행한 노아를 불러 방주를 지으라 하셨고, 노아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자기 인생을 들여 방주를 완성했습니다.

방주는 교회 건물이나 출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자체입니다. 노아가 심판을 믿고 방주를 지었듯이, 재림과 심판을 믿는다면 지금 그리스도의 방주를 짓고 사람들을 그 안으로 부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방주 밖에서 웃고 즐기던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심판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노아는 방주 안에서도 외로움과 허탈함을 겪었고 홍수 뒤에는 잠시 넘어지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를 책망하지 않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다만 넘어진 아버지를 조롱한 함은 저주를 받았으니, 믿음으로 살다 지친 이를 조롱할 것이 아니라 품어야 합니다. 노아처럼 말씀에 순종해 방주를 짓고 한 생명이라도 더 태우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맡겨진 일입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11.27
삶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 (설립 19주년)
창세기

삶으로 드러내는 그리스도 (설립 19주년)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 그를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을 받습니다. 아들은 죽지 않고, 그 자리에 대신 준비된 제물이 놓입니다. 훗날 그 산에는 성전이 서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십니다.

이삭은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먼저 정해졌고, 기적적으로 태어났고, 아버지의 모든 것을 홀로 물려받았습니다. 자기가 지고 갈 나무를 자기가 지고 산에 올랐고,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태어나셨고,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고, 자기가 질 십자가를 지고 그 산에 오르셨습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서 사람과 가축의 생명을 살린 것처럼, 예수님은 목마른 이들에게 생명수를 값없이 주셨습니다.

성도의 삶은 누군가 지켜보는 발자취입니다. 비틀거리며 걸으면 뒤따르는 이도 그렇게 걸어도 되는 줄 압니다. 19년을 함께 걸어온 교회에, 목사가 있든 없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며 곧게 걸어가라는 말씀이 전해졌습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22.9.4
함과 나답과 아비후의 선택[송구영신]
창세기창세기 9:18-27

함과 나답과 아비후의 선택[송구영신]

방주에서 내린 노아는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은 채 잠이 듭니다. 함은 그 모습을 보고 나가 형제들에게 조롱하듯 알리고, 셈과 야벳은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덮어 드립니다. 노아는 깨어나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종이 되는 저주를 내리고, 셈과 야벳은 복을 받습니다.

함은 아버지가 하나님께 택함받은 이였기에 방주에 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자신이 방주를 도왔고 스스로 믿음으로 탄 것이라는 교만이 자랐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사라졌습니다. 죄는 그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차 있던 것이 그 순간 넘친 것입니다.

같은 일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에게도 있었습니다. 아버지 덕에 제사장이 되었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결국 명하시지 않은 불을 드리다 목숨을 잃었습니다. 방주에 탔다는 것,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은 좋은 환경을 받은 것일 뿐, 그 안에서 겸손하고 정직한 인격으로 서지 않으면 은혜는 진노로 바뀝니다.

조춘숙 목사님 · 2018.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