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선 사람들
1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2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3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B.C 450-400년 사이에 활동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말라기라는 이름은 “나의 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말라기의 이름처럼 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자로 보내셨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오바댜 선지자가 에돔에게 경고한 것처럼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심판을 경고했습니다. 성경에는 그에 관한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말라기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느헤미야와 에스라와 동시대 사람이거나 그들이 개혁한 후 사역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선지자가 없는 400년의 암흑기에 들어서기 전에 말라기에게 이스라엘의 심판과 세례요한과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신으로 거룩한 예배와 믿음의 가정을 이루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끊임없이 회개를 촉구하셨지만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심판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당시 70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들은 100년이 지나도록 학개와 스가랴가 예언했던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지 않자 그들의 영적 무지로 인해 하나님을 의심했고 인간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지배했던 다윗과 같은 왕을 원했고, 다윗왕 시대에 누렸던 영광스러운 나라를 원했지만 현실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영광을 누리지 못한 것은 자신들의 죄 때문이었지만 그들은 도리어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의 풍요함을 쫓아 이방신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은 70년의 포로생활 중에 이방인에게 당했던 고통을 잊어버리고 형식주의와 외식주의에 빠져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자 풍요로운 삶을 주지 않는 하나님께 불평하며 십일조와 헌물을 온전히 드리지 않는 죄를 지었습니다. 더구나 제사장들은 백성들이 말씀대로 살아내도록 올바른 신앙을 가르쳐야 하지만 그들 역시 타락하자 백성들은 법을 어기고 아내와 이혼하기도 하고 이방여인과 마음대로 혼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세상 사람처럼 사는 것은 제사장들이 모두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백성과 제사장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만큼 복을 주지 않는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릴 필요를 느끼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잊고 말았습니다. 풍요로운 삶을 허락하지 않는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의 왕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멸시하였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너희들이 지금까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나게 큰 사랑이며, 너희를 선민으로 택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은 절대자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은 점점 소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로 귀환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지만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불평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도 이스라엘처럼 지금 당장, 빨리, 문제를 해결해 주셔서 잘 살게 해 달라고 외치며 응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경험한 사람도 응답이 조금 늦어지면 악한 속내를 드러낸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싶거든 변함없이 인내하며 정직한 믿음을 보여드려야 합니다.
예레미야 16장 12-13절
12너희가 너희 조상보다 더욱 악을 행하였도다 보라 너희가 각기 악한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행하고 나를 순종치 아니하였으므로 13내가 너희를 이 땅에서 쫓아내어 너희와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땅에 이르게 할 것이라 너희가 거기서 주야로 다른 신들을 섬기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지 아니함이라 하셨다 하라
예레미야 당시 유다는 모압과 암몬처럼 강성한 국가 들의 침략이 두려워서 그들의 신을 받아들였고 해와 달과 별들을 믿는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숭배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로 인해 은혜를 거두자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악행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길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에 정복을 당한 후 그 나라로 끌려갈 것이라고 경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돌이키지 않는 한 심판을 받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회개하라고 경고했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백성들의 핍박이었습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에 심판을 전하는 예레미야가 미웠던 것입니다. 잘 된다는 말을 듣기 원했는데 회개하라는 말이 듣기 싫었던 것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어리석음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는 죄를 짓고 있습니다. 만약, 심판의 경고를 들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회개하고 거룩한 믿음의 삶을 살았다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거두셨을 뿐 아니라 강대국을 제압할 수 있는 힘을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무시하였습니다. 그 결과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과 유다는 잔인한 바벨론의 침략을 받았고, 왕과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말았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그들은 한번도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나라로 끌려가서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을 성취하심으로 예레미야가 경고한 심판이 사실이었다는 것을 백성들로 하여금 알게 하셨습니다.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한 이스라엘과 유다를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미리 약속하신 대로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회개의 역사가 있어야 하기에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회개를 강력하게 촉구하셨습니다. 선지자를 통해 회개를 촉구하는 것은 바로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지적하시는 것은 부끄러움을 주고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회복시켜주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물론 사람들은 지금 당장 복을 받고 싶겠 지만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통해 깨끗한 심령을 먼저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돌이킨 깨끗한 심령에 복을 받아야 선하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보다 회개가 먼저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놓고 회개를 선포하는 말라기와 같은 선지자가 없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지도자로 세워 1차 귀환을 허락하셨습니다.

스룹바벨과 함께 1차로 고국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재건 사업에 박차를 가하며 삶에 대한 큰 기대를 갖게 되었습니다.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 역시 백성들에게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백성들이 돌이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에스라를 지도자로 세운 백성들이 2차로 귀환했고, 3차는 느헤미야가 백성들을 이끌고 귀환하였습니다. 이렇게 예언대로 자신들이 이스라엘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어려움을 당하자 하나님께 왜 우리를 돕지 않느냐고 불평하였습니다. 백성들의 영적 무지와 불신앙을 안타까워했던 스가랴는 백성에게 말씀을 전하며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위해서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유다는 귀환한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해서 하나님께 불평하며 이방민족처럼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죄에서 돌이켜야만 복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불평을 했기 때문에 고난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유다와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바벨론은 잔인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함부로 죽여도 괜찮은 짐승처럼 취급했습니다.
에스더에 나오는 모르드개와 하만의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다 백성은 다른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면서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에게 많은 재물을 주고 대신 유다 사람을 하루에 모두 죽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내었습니다. 왕후가 된 에스더가 금식하며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유다인들은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대로 남의 나라에서 고통을 받고 살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고국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는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또 다시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70년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고국으로 돌아가기만 한다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고 서원했을 것입니다. 은혜를 간절히 사모하며 고국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렸던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는 듣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렇게 간절했던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께서 귀환을 허락하시자 감사를 잊고 또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와 이방인의 핍박에서 벗어나자 이번에는 이방인처럼 재물을 풍족히 주지 않는 하나님께 우리가 왜 좋은 짐승을 골라 제사를 드려야 하느냐고 불평을 늘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이스라엘 여인을 본처로 삼기보다는 잘 사는 이방 여인을 아내로 삼는 잡혼을 서슴없이 행했고, 본처를 버리기 위해서 이혼을 쉽게 결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고통스러운 포로생활을 잊고 쾌락과 정욕을 위해서 산 것입니다.
말라기 1장 1절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경고를 하십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잘 섬기면 굳이 심판하실 이유가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죄에서 돌이켜 심판을 받지 않도록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반드시 듣고 돌이켜야 하지만, 목회자나 믿음의 형제, 그리고 가족이 부족한 부분을 권면한다면 그 역시 경고이므로 잘 새겨 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잘 듣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지 못한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잘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의 충고를 잘 듣는다면 실수를 줄일 뿐 아니라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책망도 하고 고난도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여호와께서 언제 우리를 사랑하셨느냐고 반문하였습니다. 우리를 사랑한다면 우리가 풍요롭게 살도록 도와줘야 하는데 물질의 풍요를 주지도 않으면서 자신들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재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죄의 결과로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약속대로 귀환했으며, 성전을 재건하고 이방인의 침략을 받지 않고 살 수 있는 것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그들은 세상의 복만 원하며 하나님께 불평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백성은 환경에 상관하지 않고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포로생활을 끝내는 평안의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고 불평했던 이들은 하나님께 큰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2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셨다는 말씀만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은 무조건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셔서 일방적으로 버리신 것처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에서가 세상에 나오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살아갈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은혜를 사모하는 야곱은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머니 뱃속에 있는 아이들을 하나는 축복하시고 하나는 저주하셨다는 말씀 때문에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가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간에 상관없이 언제나 현재만 있을 뿐입니다. 수천 년이 흘러도 하나님께는 언제나 현재 이기 때문에 뱃속에 있던 야곱과 에서가 어떤 삶을 살지 모두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시간은 살아있는 인간에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자이신 하나님께서는 과거부터 미래까지 모두 오늘처럼 보고 계신 것입니다.
창세기 25장에 보면 밖에서 들어온 에서가 야곱에게 ‘내가 지금 심히 배고프니까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고 하였습니다. 에서의 말을 들은 야곱은 그럼 형이 가지고 있는 장자의 명분을 나에게 팔면 내가 그 값으로 팥죽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에서는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은데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고 하면서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들의 대화를 들어봐도 하나님께서 왜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신다고 했는지 그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에서는 장자로 태어나 하나님의 일방적인 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자권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쉽게 하나님의 은혜를 버린 것입니다. 만약 그 장자권이 자신은 물론 후손까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귀한 은혜라는 것을 알았다면 에서는 장자권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서는 야곱에게 쉽게 장자권을 넘겼고, 야곱은 늘 장자권을 원했던 사람이기에 배고파 하는 에서를 속여서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창세기 27장 3-4절
3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나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다가 먹게 하여 나로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이삭은 에서가 장자로서 축복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에서에게 별미를 만들어 달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의 부탁을 받은 에서는 아버지의 기도만 받는다면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별미를 만들기 위해서 사냥을 나갔습니다. 여기서 에서가 놓치고 있는 것은 이삭은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능력을 주셔야 복이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이미 파는 죄를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별미를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사냥을 나가는 열심을 보인다고 해도 하나님의 법을 범했기 때문에 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진실한 믿음을 버리고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척하는 가짜 성도의 신앙입니다. 에서가 사냥을 한 것은 이삭을 존중하고 공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죽기 전에 많은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교인은 에서처럼 결국에는 자기의 죄로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무지로 행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야곱처럼 힘을 더 얻는 것이 아니라 에서처럼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가져다준 별미를 맛있게 먹은 이삭은 야곱에게 입을 맞추며 마음껏 축복하였습니다. 이삭의 기도에는 사람이 받을 수 있는 복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삭은 간절하게 기도하기를 하늘과 땅의 모든 축복을 야곱이 받을 것이며 그 은혜는 야곱의 자손에게 흐르며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속아서 축복하는 이 장면을 세상적으로 보면 사기에 가깝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 은혜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에서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야곱에게 복을 빼앗긴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홀히 여긴 자신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야곱에게 속아서 복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받은 복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 버렸기 때문에 에서는 복을 받을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고 싶다면 믿음으로 살기 바랍니다. 지금 말라기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은 에서의 장자권처럼 일방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선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은혜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에서처럼 선민의 특권을 쉽게 버렸고 오로지 세상의 복을 위해서 살았던 것입니다.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하던 자신들을 귀환하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다시 의심하고 모욕하는 그들을 보면서 인간은 참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난을 당할 때 간절하게 부르짖었던 기도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 하나님과 심판을 받지 않도록 도와주었던 선지자를 쉽게 버리고 현실에 안주하는 이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끊임없이 감사하며 쉬지 않고 하나님과 깊은 대화를 나누는 성도만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스라엘이 알지도 못하는 땅으로 끌려가서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고, 그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한다고 예언하셨고, 그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어 에서의 후손인 에돔은 심판을 받아 사라졌고 야곱의 후손은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선지자를 통해 먼저 말씀하시고 그 말씀을 성취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믿지 않고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보면 인간의 본성이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얼마나 큰 복을 받은 민족인지 잊었기 때문에 이렇게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평하는 그들을 향해 나는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변함없는 하나님이기에 그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고난을 받을 때 그 고난조차 하나님의 사랑으로 알고 회개하고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바로 거두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삶이 풍요롭지 못하다고 하나님께 불평하거나 불순종한다면 그 고난은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든 환경에서 역사하실 것을 믿고 감사하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처럼 인간의 생각에 매여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죄의 자리에서 즉시 일어난다면 그 고난의 자리가 놀랍게도 축복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축복은 종이의 양면과 같기 때문에 여러분의 결단에 따라 책망을 받을 수도 있고 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늘 은혜 안에 거하기 바랍니다.